-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기적에 대하여
"인간이란 항상 있는 기적에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앙드레 지드, 『새로운 양식』에서
(박웅현, 『문장과 순간』 재인용)
침대 밑 어둑한 구석, 종이 상자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안엔 장모님이 보내주신 고구마들이 웅크리고 있다. 청소기를 밀다 상자 모서리를 툭, 하고 건드릴 때면 그 닫힌 어둠 속의 깊은 고요를 상상하곤 한다.
상자 안에선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빛과 소음이 차단된 그 공간에서 고구마가 하는 일이라곤, 시간을 머금는 것뿐이다.
나는 가끔 진심으로 그 고구마가 되고 싶다. 세상의 자극에서 격리된 채 ‘무(無)의 상태’를 견디는 게 아니라, 기꺼이 만끽하는 존재.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을 일도, 타인의 시선에 휘청거릴 필요 없이 그 고요함을 온전히 소유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우리는 왜 끊임없이 무언가 ‘일어나야만 한다’고 생각할까? 왜 별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를 ‘지루함’이나 ‘정체’라 치부하며, 잔잔한 호수에 기어코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켜야만 안심하는 것일까.
해마다 1월이면, 더 나은 내가 되겠다는 비장한 선언들이 아우성을 친다. 세상은 마치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오르는 것만이 유일한 행복의 증명서인 양 강변(强辯)한다.
나는 이 현상을 ‘행복의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 부르고 싶다. 행복의 기준치가 끝없이 치솟아, 무탈함만으로는 명함조차 내밀기 민망해진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물론 성장을 위한 노력을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어제보다 나아지려는 마음은 인간의 건강한 본능이다. 다만 내가 우려하는 건, 그 질주의 동력이 ‘설렘’이 아니라 ‘두려움’일 때다. 멈추면 도태된다는 강박에 가려, 오늘의 안온함을 보지 못하는 것만큼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이쯤에서 냉정하게 따져보자.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 거창한 목표를 이룬다 한들, 행복이 제 발로 찾아올까. 성취의 기쁨은 불꽃 같은 찰나지만, 그것을 지키려는 불안은 그림자처럼 길다. 성공이라는 화려한 빛을 좇느라, 정작 평온한 하루가 주는 위안을 얕보고 사는 건 아닌지.
내가 생각하는 복(福)은, 얇은 유리잔 같은 일상이 어떠한 충격 없이 보존되는 상태다. 어제처럼 문을 닫고, 특별한 사건 없이 하루를 마감하는 것. 그 평범한 유지가 얼마나 위대한 기적인지는 폭풍우를 통과해 본 사람만이 안다.
세상에 행복을 정의하는 수만 가지 말이 있지만,
나는 딱 한 줄로 적고 싶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아픈 가족이 없고, 누구와도 껄끄러운 마음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날.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오후. 너무 평온해서 볕을 타고 내려앉는 먼지조차 유난히 또렷해 보이는 순간. 이런 시간은 노력의 전리품이 아니라, 수많은 불행의 변수가 아슬아슬하게 비껴가 준 ‘운 좋은 여백’에 가깝다. 화려한 성취는 높이 오른 만큼 지켜야 할 것도, 감당해야 할 몫도 늘어나는 법이다. 하지만 이 소박한 '무사(無事)'는 누리는 것 외에 따로 치러야 할 대가가 없다.
글을 맺으며 고개를 들어 거실을 둘러본다. 저무는 저녁, 회색빛 그림자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시계 초침 소리만이 정적을 깨운다. 불길한 전화도, 마음을 할퀴는 사건도 없었다. 이 심심한 적막이야말로, 오늘 내 삶에 허락된 최고의 사치이자 축복이다.
어둠 속 고구마들은 조급해하지 않고 제 안의 단맛을 묵묵히 채우고 있을 것이다.
억지로 볕을 쬐려 몸을 비틀지 않는 저 초연함.
행복의 인플레이션 시대,
나는 기꺼이 어둠 속 한 알의 고구마가 되어 이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려 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그래서 더 오롯한, 지금의 이 행복을 찬찬히 음미해 본다.
매주 목요일 아침, 인사드리겠습니다.
독자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할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지 출처 : 노란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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