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마다의 겨울을 건너고 있다

- "퇴직하면 뭘 할 거야?"

by 노란 잠수함

해가 바뀌었다는 것은 핑계였고, 사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싶어 모인 자리였다. 굴비의 짭조름한 살을 발라 흰쌀밥 위에 얹으며 우리는 서로의 무탈함을 확인했다. 식사를 마친 뒤 위층 카페로 자리를 옮겨 둥근 탁자에 둘러앉았다. 우리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쌍화차가 한 잔씩 놓였다.


따뜻한 찻잔을 만지작거리다 무심코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오십의 끝자락이다. 방금 식탁에서 젓가락으로 헤집었던 굴비의 눈처럼, 탁한 눈으로 앉아 있는 그들이 낯설고 서글펐다. 그 흐릿한 눈동자에 비친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식 투자 성공과 실패, 캠핑 업체 몰락, 해외여행 등 다양한 화제가 탁자 위를 어지럽게 오갔다. 주제는 널뛰듯 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곳은 비슷했다. 돈 이야기, 그리고 그 돈으로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퇴직’ 이야기로 흘렀다.


“퇴직하면 뭘 할 거야?”


임금피크제라는 동아줄을 붙잡고 간신히 ‘현직’ 꼬리표를 달고 있는 친구에게 누군가 물었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딴청을 부리듯 말했다.


“글쎄, 지금보다 아내한테 더 구박받으며 살지 않겠어.”


농담 섞인 자조에 모두 “그렇지, 뭐” 하며 크게 웃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서로 굳이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불안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크게 웃고 있었는지 모른다.


퇴직자에게 통과의례처럼 날아드는 그 질문은 무엇을 확인하려는 것일까? 얼핏 들으면 ‘앞으로의 삶’을 묻는 말 같지만, 듣는 당사자에겐 돈을 벌 수 있는지, 아직 쓸모가 남아 있는지, 명함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번듯한 사람인지를 묻는 것처럼 들릴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방어한다. 진심이든 아니든 ‘계획’이라는 말을 꺼내며 아직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려 애쓴다. 친구의 농담도 아마 그런 순간의 방패였을 것이다.


사실 나 역시 이 년 전 교단을 내려오며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그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뭘 하지 않으려고. 이제까지는 뭘 해야만 했으니까, 이제는 그냥 살아보려고.”


그들은 멀쩡한 직장을 오 년이나 일찍 그만두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정말 해야만 하는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남은 건강 수명이 길어야 십여 년. 약봉지를 들고 오래 사느니 하루라도 더 나로 살고 싶었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그때 나는 절실했다.


오늘 모임에서 내게 새해 계획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만약 술잔이 돌듯 질문이 내게까지 왔다면 꽤 곤란했을 것이다. 내세울 만한 계획도 없었고, 그들이 관심 있어하는 돈벌이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냥 책 읽고 글 쓰며 살려고.’


아마도 이 말은 마음속에만 담아두었을 것이다. 백세 시대에 별다른 대책 없이 글이나 쓰겠다는 말이 그들 눈에는 철없는 객기로 보일 것이 분명하다. 이 모임에서 내가 글을 쓴다는 아는 사람은 한 명뿐이고, 그마저도 내 글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나는 ‘글 쓰는 나’를 자꾸 등 뒤로 숨기게 된다.


식어가는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다시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탁한 눈동자에는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의 불안, 뒤처질 수 없다는 조바심,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다짐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쓸모를 확인하려 애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득 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한 구절이 떠올랐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파전에 막걸리 마시며 정의로운 세상을 노래하던 얼굴들이

이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저마다의 겨울을 건너고 있었다.





매주 목요일 아침, 인사드리겠습니다.

독자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할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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