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가방이 눈을 맞고 있다

- 우리는 결코 빈손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by 노란 잠수함

재활용 수거장 구석, 바퀴 하나가 닳아빠진 여행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한때는 누군가의 설렘을 싣고 낯선 도시의 골목을 누볐을 몸이다. 이제 제 소임을 다하고 입을 굳게 다문 빈 가방을 보고 있자니, 마치 오래된 족자를 펼치듯 옛말 하나가 사락, 떠오른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

흔히 인생의 덧없음을 얘기할 때 이 말을 꺼내곤 한다. 하지만 저 낡은 가방 앞에 서서 나는 고개를 젓는다. 이 문장은 어딘가 반쪽짜리처럼 느껴진다. 겉으로 보기엔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떠나는 듯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우리는 정말 빈손으로 세상에 왔을까? 엄밀히 따지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보이지 않는 가방 하나씩을 등 뒤에 메고 온다.

어떤 이의 가방은 질긴 가죽처럼 튼튼하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려한 외모, 비상한 두뇌, 혹은 태어날 때부터 쥐어진 '금수저'라는 이름의 든든한 프리패스 티켓까지. 그 가방은 웬만한 인생의 비바람쯤은 거뜬히 막아준다.

반면 누군가는 세상의 냉기가 그대로 스며드는 얇은 비닐 가방을 메고 온다. 조금만 욕심을 내도 손잡이가 찢어질 듯 위태롭고, 안에 담은 것들은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결국 스스로 떨어져 나간다.

우리는 모두 '운명'이라 불리는, 반품 불가능한 각자의 수하물을 들고 생의 입국 심사대를 통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떠나는 길은 어떨까. 물리적으로는 빈손이 맞다. 명품 가방도, 평생 모은 통장도 관 뚜껑이 닫히는 순간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영혼의 차원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올 때는 가방의 '재질'이 중요했다. 누구는 가죽이었고, 누구는 비닐이었다. 그러나 떠날 때는 가방의 재질이 아니라, 그 속을 채운 '내용물'이 우리를 증명한다.


죽음이라는 출국 게이트 앞에서 신(神)은 단 한 가지를 확인할 것이다. 그 가방에 무엇을 꾹꾹 눌러 담아왔는지. 그래서 '영혼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지.

어떤 이의 가방은 깃털처럼 가볍다. 그 안에는 삶을 전쟁으로 착각하지 않으려 애쓴 흔적 같은 여유가 담겨 있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순간조차 '배움'이라는 이름으로 압축해 부피를 줄였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며 미움이라는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그 빈자리에 '조건 없는 사랑'과 '따스한 추억'을 채웠다. 미련도 후회도 없이 툭툭 털어낸 가방은 얼마나 가뿐한가. 그들은 "참 잘 놀다 갑니다"라는 가벼운 인사 한마디를 남기고 훌쩍 떠난다.


반면, 쇳덩이처럼 무거운 가방을 힘겹게 끌고 가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가방은 닫히지 않을 만큼 미어터진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라는 후회, "두고 봐라" 하는 복수심, 그리고 끝내 내려놓지 못한 집착들로 가득 차 있다.

자신이 이룬 성취를 곧 자기 자신이라 착각한 이들은, 그것을 놓고 가는 것을 '자신의 소멸'로 여겨 마지막 순간까지 발을 떼지 못한다. 원망과 미련으로 꽉 찬 가방을 멘 영혼은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가라앉을 뿐이다.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가벼운 눈송이는 허공을 유영하지만, 습기를 머금어 무거워진 눈은 툭 하고 곧장 떨어진다.

주인 잃은 여행 가방 위로 흰 눈이 소복이 쌓인다. 이제 텅 빈 그 가방의 침묵이 내게 묻는다. 지금 당신의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불평과 미움으로 가방을 무겁게 채우고 있느냐, 아니면 사랑과 용서로 가방을 가볍게 만들고 있느냐고.

인생을 그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여정이라 부르기엔, 우리는 너무 많은 순간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무엇을 담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떠나는 날까지 끝내 완성되지 않을 가방 하나를 들고서.


눈 내리는 수거장에서,

나는 내 마음의 가방을 가만히 열어본다.






이미지 출처 : 노란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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