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정 욕구를 뽑아낸 진짜 글쓰기
‘읽지 않음’
연초, 브런치에 올린 글 하나가 뜻밖에 조회 수 팔천을 넘겼다. 며칠 뒤, 한 NGO 단체로부터 홈페이지에 싣고 싶다는 메일 한 통이 날아들었다. 원 세상에, 진열장 속 보석 같은 글이 수두룩한데 길섶의 돌멩이 같은 글을 집어 들다니. 황송했다.
군말 없이 원고를 보냈어야 했다. 내 브런치 주소를 남겨달라는 꼬리를 매달다니. 더구나 홈페이지에 올린 후 메일을 부탁한다는 사족까지 덧대다니. 분명 그의 심기를 거슬렀을 것이다. 아니면 답신이 짧았거나 감사 표현이 허술했던 탓이겠지.
부질없는 짐작들로 속을 끓이다가 이내 무릎을 쳤다. 하루를 지체한 게 빌미가 됐음이다. 하필이면 그날, 내가 갯바위에 서 있을 게 뭐란 말인가. 후다닥 낚싯대를 접어 집으로 내달리고 싶었지만, 오래전부터 벼르던 것인 데다 친구 녀석 차에 얹혀 온 터라 끙끙 냉가슴만 앓았다. 하루쯤 늦는다고 뭔 일 나겠냐는 안일함도 일을 그르치는 데 한몫 거들었다. 결국 외부 일정이란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 내일 오후에 보내겠노라 물색없는 답장을 보내고 말았다.
짐작했겠지만 마음은 이미 콩밭에 있었다. 그러니 제아무리 초릿대가 요동친들 감흥이 일 턱이 있었겠는가. 제발 입질 한 번 해달라 사정할 땐 꿈쩍 않던 낚싯대가, 마음을 비워내니 되레 바르르 떨며 나를 흔들어 댔다. 친구 녀석은 연신 콧바람을 불어대며 신이 났지만, 눈치 없이 올라오는 고기들에 난 그저 애가 탔다. 낚시해 본 사람은 알 테다. ‘딱 한 마리만 더’ 그 미련에 눈머는 것이 낚시꾼이다. 하물며 은비늘 감성돔이 줄지어 올라오는 마당에 자리를 떠야 하니 클라이맥스를 코앞에 두고 영화관을 나서는 꼴 아니겠나.
이런 내 속도 모르고 몇 수만 더 하자는 꾼을 요리조리 구슬려 집으로 돌아오니 그새 해거름이었다. 낚시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부리나케 컴퓨터를 켰다. 원고를 한글 문서로 옮겨 문단을 고치고, 제목을 매만진 뒤 재빨리 전송 버튼을 눌렀다. 벼락불에 콩 볶듯 했으나 어찌 됐든 약속을 지킨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이튿날부터 수신 확인 창에 눈을 잡아맸다. 하루 이틀은 다른 업무에 치여 미처 못 보았겠거니 넘겼다. 그러나 한 이레가 지나고 다음 이레가 지나도록, ‘읽지 않음’이 장승처럼 떡 하니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주제넘게 굴었나. 그사이 변심이라도 한 걸까. 그래도 보낸 성의가 있는데 열어는 봐야 하지 않나. 등단하고 책을 낸 번듯한 작가였어도 이리 홀대했을까. 오만 가지 생각이 알감자마냥 줄줄이 딸려 나오는 바람에 밤잠마저 설쳤다.
우편함을 들여다볼 때마다 기대는 삭정이처럼 말라붙고, 실망은 봇물 터지듯 불어났다. 게다가 술김에 ‘내 글이 이런 곳에 실린다’며 지인들에게 떠벌린 입방정까지 떠올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벽장 안으로 숨어들고 싶었다. 빈 상자를 선물 받고 호들갑을 떤 격이랄까. 무심한 그를 향한 서운함과 경솔했던 나에 대한 자괴감이 칡넝쿨처럼 뒤엉켜, 한동안은 아예 메일함을 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달포 남짓 지났을까. 칭칭 감겨 있던 마음의 덩굴이 시나브로 느슨해진 무렵, 슬며시 창을 열었다. 이게 웬일인가. 수신 날짜가 또렷했다. 드디어 그가 내 글을 본 것이다. '그래, 연초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겠지.' 그제야 켜켜이 쌓여 있던 응어리가 곰발 딱지 떨어지듯 시원스레 풀렸다.
그날부터 다시 편지함 지킴이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그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져 보지만 내 글은 어디에도 걸려 있지 않다.
컴퓨터 화면에서 시선을 거둬 커피를 홀짝이며 묻는다. 나는 왜 이토록 그의 답장에 목을 매고 있을까. 되짚어보니 그 집요한 기다림의 뿌리는 '불신'에 닿아 있었다. 문장의 힘을 믿지 못하니 바깥 시선에 기대 글재주를 저울질한 것이다. 그 밑을 더덕 캐듯 파 내려가니, ‘인정 욕구’라는 알맹이가 쑥 뽑혀 올라왔다. 인정을 빌려 볼품없는 글솜씨를 그럴싸하게 꾸미고픈 속내였다. 물론 그것으로 세상에서의 쓸모를 가늠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치면, 글은 제맛을 잃는다. 남의 입맛에 맞추려다 이도 저도 아닌 맹탕이 될 뿐이다. 그러니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안달복달할 일이 아니다.
오늘도 답장은 없다. 하지만 더는 애면글면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내 글이 비록 진열장에 놓이지 못하는, 길섶에 굴러다니는 돌멩일망정 그 볼품없는 것들도 하나둘 모이면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는 징검다리가 되리라 믿는다.
식어버린 커피를 비우고 자판 위에 두 손을 올린다. 타닥 타다닥, 경쾌한 타자 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인정(認定)에 매달리지 않는, 진짜 글쓰기를 시작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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