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을 바꾼 수돗가 진학 상담
“8분이에요. 따-악 8분.”
부부 모임을 끝내고 돌아서던 후배가 한 번 더 당부했다. 살림 야무지기로 소문난 그녀가 달걀을 반숙하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을 일러준 것이다. 내가 아침마다 낫토에 달걀을 비벼 먹는 걸 알고 하는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알아들었다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고는 확인 도장을 찍듯 그 숫자를 머릿속에 꾹 눌러 담았다. 물이 끓기 시작할 때 달걀을 넣고 8분. 그러면 노른자가 촉촉한 반숙이 된단다. 이번에도 틀림없을 것이다. 그녀가 일러준 살림의 지혜는 어긋난 적이 없었으니까.
시간을 정확히 맞춰야 완성되는 반숙 달걀처럼 우리네 인생에도 기막히게 들어맞아야 하는 '타이밍'이 존재한다. 하지만 냄비 속 달걀과 달리, 인생에는 정해진 조리법도,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알람도 없다. 시간과 상황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 신비한 힘에 이끌리듯 한 점에서 만나는 순간, 뜻밖에 한 사람의 인생 항로를 바꿔놓기도 한다.
학력고사를 두 달여 앞둔 어느 날, 청소 시간이었다. 대걸레를 빨아다가 복도를 빡빡 닦는 것이 내 몫이었다. 복도 청소는 언제나 두 명이 해야 했지만, 우리는 잔꾀를 부려 하루씩 번갈아 가며 했다. 그날은 내 차례였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책상을 교실 뒤쪽으로 밀어 놓고, 청소함 곁에 멀뚱히 서 있는 대걸레를 들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 건물 뒤편 출입문을 밀고 나서면 바로 수돗가였다. 시멘트로 길쭉하게 만든 낮은 물받이 위로 수도꼭지가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었다. 청소 시간이 되면 대걸레와 양동이를 든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쏟아지는 물소리,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 양동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뒤섞여 그곳은 늘 소란스러웠다.
나는 여느 때처럼 수도꼭지를 틀어 걸레를 적셨다. 그런 다음 물받이 안에서 그것을 휘저으며 묵은 땟국을 빼내는 참이었다. 그때였다. 수돗가 왼편 좁은 공터에서 담배 연기가 흘러들었다. 그 시절에는 교사들이 학교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예사였다. 교무실 창가나 복도 끝, 혹은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베란다에서 으레 담배를 태웠다. 수돗가는 그들의 단골 흡연 구역이었다. 나는 대걸레 자루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위로 들어 올린 뒤 물받이 가장자리에 걸쳐 놓고는 힘껏 걸레를 짜내는 중이었다.
인생의 절묘한 타이밍이란 바로 이런 순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흡연 구역에 서 있던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쳤다. 거리가 가까워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독일어 선생이었다. 일주일에 고작 한두 시간 수업을 들은 것이 전부였던 데다, 낯가림도 심했던 터라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 리 없었다. 성적이 좋은 축에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두각을 나타낼 만큼은 아니었다. 게다가 독일어를 특별히 잘한 것도 아니니 눈에 띌 까닭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입에 물었던 담배를 떼며 내 쪽을 향해 손짓을 했다. ‘설마 나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이번엔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도무지 알 리 없는 내 이름을.
젖은 손을 황급히 바지에 대충 문질러 닦고는 얼른 달려가 그 앞에 섰다. 그의 주변엔 꽤 흥미로운 조합의 선생들이 원을 그리고 서 있었다. 예술적인 판서 탓에 정작 수업 내용은 뒷전이게 만들었던 화학 선생, 바람 불면 날아갈 듯했으나 여학생들의 연서를 독차지했던 국어 선생, 그리고 피아노 건반은 기가 막히게 두드리면서도 정작 노래 솜씨는 영 아니었던 음악 선생까지. 저마다 담배를 입에 물거나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로 나를 훑고 있었다.
독일어 선생이 다짜고짜 물었다.
“야, 너 어디 갈지 정했냐?”
입시가 코앞이니 대학과 전공을 묻는 것이었다. 잔뜩 주눅이 든 나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채 “아직요….” 하고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답했다. 그러자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 단박에 다시 치고 들어왔다.
“너 선생 해라. 너하고 꼭 맞는 것 같다.”
어리둥절할 틈도 주지 않고 곁에 있던 선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 “그래, 그래.” 하며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움큼의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국어 선생이 이 느닷없는 수돗가 진학 상담에 결정타를 날렸다.
“국어 선생 해라. 너 글 잘 쓰잖아.”
교내 백일장에서 몇 번 상을 탔던 것을 기억해 낸 모양이었다. 국어 선생이니 심사위원으로서 내 글을 눈여겨보았을지 모른다. 이 말에도 빙 둘러선 이들이 “그래, 그래.” 하며 다시 장단을 맞추었다.
학력고사 성적은 초라했다. 마음 한편에 국어 선생의 꿈을 품게 되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이 발목을 잡았다. 학비를 아끼고 빨리 돈을 벌어보자는 속셈으로 지척에 있는 국립해양대학에 원서를 디밀었다. 그러나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 길로 재수생이 됐다. 강사들의 수업 준비를 돕는 학원 청강생으로 일 년을 보냈다. 그러는 내내 수돗가에서 들었던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환청인 듯 귓가를 맴돌았다. 이듬해 나는 국어교육과에 들어갔다.
아직도 나를 불러준 이유를 알 길 없는 독어 선생님은 여러 해 전 돌아가셨다.
가끔 그날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국어 교사로 걸었던 33년은, 시간과 상황 그리고 마음이 빚어낸 기막힌 타이밍의 결과였다고. 내 차례였던 그날의 청소 시간과 선생님들이 수돗가에 모여 있던 상황, 그리고 제자의 앞길을 걱정해 준 그들의 마음과 그 진심을 받아들인 나의 마음이 한 점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길이었다.
담배 연기 자욱했던 그 조붓한 공터에서 내 운명은 가장 완벽한 반숙으로 익어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것은 8분이라는 시간, 끓는 물이라는 상황,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불 앞에 서는 마음이 만나 반숙 달걀을 빚어내는 이치와 똑 닮지 않았나. 인생은 치밀하게 설계된 듯 참으로 신비한 여정이다.
이미지 출처 : 노란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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