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작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운 좋게 꽤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다. 게스트워크를 다니는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은 일을 하면서 짬짬이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직업이다.
그 당시의 나는 독기로 가득 차서 쉬는 날 없이 매일 일하고 싶어 했지만, 여행하고 싶은 욕심도 그에 못지않게 컸기에 일주일에 하루씩은 꼭 그 나라를 알차게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 이거 블로그든 유튜브든 뭔가 기록을 남기면 좋을 텐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사진과 동영상 이외에는 남긴 게 아무것도 없다. 10년 가까이 기록하는 행위를 ‘항상’, ‘꾸준하게’ 해내지 못해 왔다. 다이어리를 사는 건 좋아하지만,
한 권도 완성하지 못한 관성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 지독하게 긴 죄책감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던 와중에 하루키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뭔가 마음속에서 짧게 반짝였다.
“20여 년 전, 내가 초보 러너였을 때를 하나하나 떠올리며 기억을 더듬거나, 그 무렵에 써놓았던 간단한 일지를 다시 읽고 글로 정리하고 있다.
내가 걸어온 발자취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며, 그 시절의 내 심정을 기억해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나 자신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격려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 깊은 잠에 빠져버린 일종의 동기를 흔들어 깨우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문장들을 읽고 문득 발리 짱구 한식당에서 김치볶음밥을 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호주에서의 긴 여정을 끝마치고 휴가차 발리에 갔던 3월 말, 4월 초쯤의 일이다.
왜 그 많고 많은 날들 중에 김치볶음밥을 먹던 때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우리는 ‘고아가자’라는 사원에서 시간을 보낸 뒤, 오랜만에 저녁으로 한식을 먹기로 했다.
한식당 세 곳 정도를 비교하다가 짱구에서 김치볶음밥을 제일 잘한다는 구글 후기를 믿고 그곳에 찾아갔다. (그리고 실제로 그 후기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가파르고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 좌식 식탁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았다.
태양이 우리가 앉은자리 맞은편에서 강렬하게 열기와 빛을 뿜어내며 지고 있었다. 곧이어 먹음직스러운 김치볶음밥과 떡볶이, 양념치킨이 나왔다.
눈이 부셨던 건 아마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때문이었겠지만,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돌아가는 낙후된 식당에서 더위 대신 따뜻함을 느꼈던 것은,
사실 그동안 그렇게 그립지 않았던 한국이 그 순간에는 그리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엄마가 스팸을 잔뜩 넣고 만들어주셨던 김치볶음밥이.
둘이서 메뉴 세 개를 흡입하고 터질 듯한 배를 동동 두드리며 나오는 순간까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냥 복합적으로 참 좋았던 것 같다.
(표현할 때 ‘좋다’를 좀 더 구체적인 단어로 바꾸면 문장이 풍부해진다고 알고 있지만, 이때의 심정을 표현하기에 ‘좋다’보다 더 ‘좋은’ 단어는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좋았던 순간을, 그리고 열정적으로 작업하고, 여행하고, 먹고, 걷고, 사랑하던 그때의 나를 잊고 있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일기 따위에는 쓸 시간이 없었다지만, 사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닐까 한다.
결국엔 그렇게 앞만 보고 맹렬히 달리던 날들은 정신과 육체로 번져 염증이 되었고, 일을 그만둔 지(퇴사와 같은 상태가 된 지) 벌써 5개월이 흘렀다.
적신호가 켜진 나의 건강과 상황을 방패 삼아, 이렇게 좀 쉬어도 된다는 명분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하고 있었던 건 독서인데, 어쩌면 그것도 내가 뭔가 다시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인한 도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정작 내가 진짜 해야 할 것은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 같은 창작의 행위인데,
시간과 품을 들여 깊고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이유로,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책을 읽어댔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읽은 것보다 사모은 데에 더 열심이었다. 아마 급발진적인 성향과 끝없는 욕심도 한몫했으리라. 계속 굴러가며 불어나는 눈덩이처럼 이 책을 읽다 보면 또 저 책이 읽고 싶어졌다. 그 굴레를 거의 무한에 가깝게 반복하며 책 열 권 정도를 병렬 독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중에 다행히(?) 마포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은 반납 기한이 있기 때문에 빠르게 읽어냈지만, 물론 그것도 빌려온 네 권 중 한 권이다.)
‘언젠가는 도움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찍고, 용량이 부족하다는 알림이 뜨면 ‘내가 이걸 언제 저장했지’ 하고 까먹을, 핸드폰 용량의 1/2을 차지하는 스크린샷들처럼 책도 끊임없이 모아댔다.
이제는 ‘상상으로 실행하고 상상으로 실패하고 결국에는 후회하는’ 짓거리를 좀 끊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철저한 계획 후에 그 정해진 길을 따라 실행하는 게 물론 효율적이겠지만, 나는 그런 방식을 해내는 인간이 못 되는 것 같다.
그냥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앞뒤 재지 않고 해야, 내 방대한 상상을 조금이라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이제 다시 걸어야 할 때인 것 같다.
나는 지금부터라도 이 시절의 나를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흩어져 버리고 있던 기억들을 따라 기록해보려고 한다.
삶에 치어 지쳐 있을 훗날(그런 날은 반드시 오기에) 천천히 다시 읽어 내려가며 그때의 나의 심정을 더듬어보고 다시 나아가기 위해 구심점을 만들어낼 것이다.
하루키에게 달리기가 있다면, 나에게는 걷기가 있다.
천천히 다시 걸어가 보자. 오늘 하루를 충만하게 살아내고 충분히 기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