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돼서야 떠올린 사회 초년생 시절의 향수
회사 일로 숨 쉴 틈 없이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다.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잠시 사색을 하던 중 어디선가 맡아본 향이 내 코를 자극했다. 무슨 냄새지?
첫 사회에 발을 딛은 지 어느덧 10년 차. PPT하나 다루지 못해 첫 기획안을 스케치북에 그려 냈던 내가 수십 명의 직원들의 선임, 선배, 상사가 되어 있는 나를 보며 시간이 언제 이렇게 흘렀나 감탄할 뿐이다.
어떤 향이 나를 향수에 젖게 만들었고, 나의 패기 넘치던 초년생 시절 그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봐주던 첫 사수가 떠올랐다.
어느덧 내가 그 사수의 나이가 되었다. 모든 기억이 좋을 리 만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좋은 기억만 남기 마련 아닌가. 회사에서 '일잘러'로 인정받던 나의 사수와 함께 했던 나의 초년생시절. 그때 그 향을 옅게나마 회고해 본다.
학교에서 현실에 쓸모없는 학문만 배우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회사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하루 13시간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것이 기본이었던, 첫 직장. 그럼에도 일이 너무 재밌었고, 내 일이 성과로 나타나는 짜릿함에 취해 버렸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나의 첫 사수는 해병대 출신의 과거 호텔리어였다고 한다. 호텔에서의 비즈니스 매너를 그대로 담아 국내·외 비즈니스를 총 담당했다. 그의 삶은 '해병대' 그 자체였다. 그의 책상은 물론, 모든 물건들은 각을 잡고 줄 서있었고, 회사에 그가 키우는 식물들도 그를 닮아 각 잡혀 자라고 있었다. (지극정성을 다해도 식물들은 죽어나가기 마련이었고,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떠난 후에서야 노하우가 쌓여 요즘은 잘 자란다는 후문이.)
우린 서로에게 첫선임-첫 후임이었고 회사에서 알아주는 '일 잘하는' 짝꿍으로 통했다.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명함 건네는 법, 주도 예의, 식사 매너 등도 하나 빼놓지 않고 그의 일잘러 DNA를 나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젓가락질 잘 못해도 밥 잘 먹는다고 노래를 부르던 내게 비즈니스에서만은 안 된다며 잘 못된 젓가락질도 고치게 만들었다.
이런 DNA를 주고받기 위해서는 마음이 통했으니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고는 누구 하나 나가거나, 사이비교라고 신고당했을지 모른다. 그는 틀에 갇히지 않은 나의 생각을 존중해주기 위해 노력했고, 난 밤낮없이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달리는 그의 열정과 실무 능력을 배우기 위해 힘썼다.
우리가 빠르게 일잘러 메이트로 맞춰 나가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함께 하던 중 그는 나에게 영상 하나를 추천해주었다. <인간극장 - 해병대 이정구 교관 편> 다큐멘터리, 아직도 전철에서 그 영상을 시청하던 내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20대 초중반 여학생이 해병대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그저 내 선임의 모든 생각을 이해하고 싶었다. 영상을 다 본 내게 선임은 감동스럽지 않냐며 자신이 느낀 바를 구구절절 설명해 주었다. 아무리 그의 생각과 동기화가 되어보려 노력해도 도저히 그 감동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 다큐멘터리를 나에게 추천한 건 성공적이었다. 내가 그의 이해할 수 없던 행동들을 이해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치열하게 5년 같은 5~6개월을 함께 했다. 회사가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각자 다른 사업부를 맡아 일을 하게 되었다. 고작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았는지, 그 시간은 내게 큰 성장과 동시에 꽤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가 흉터가 되고, 추억이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해병대 선임 향수'
아이를 낳아 봐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했던가. 우리 팀원들의 성장이 내 회사생활 동기가 되는 요즘, 팀원들과 함께면 힘들어도 웃게 되는 내 모습에서 나의 첫 선임이 나를 보고 흐뭇하게 웃던 그 웃음이 떠오르고는 한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그 해는 유독 추웠던 겨울이었다. 현재와 미래만을 사는 나에게 과거의 향이 남아있다는 것은 참 큰 의미다. 하루하루 견뎌내기 버거웠던 그날의 기억들이 그리운 향으로 생각나다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 내가 해병대선임의 무게를 내가 짊어지고 나서야 그 시간들이 상처도 흉터도 아닌 추억으로 다가왔다.
이젠 출근하면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동자와 날 부르는 목소리에서 다시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낀다. 현실의 무게에 숨이 찰 때면 잠시나마 그 신입시절 '해병대선임 향수'에 기대 지금의 무게를 위로받고는 한다.
삶의 무게는 그때의 수백 배 무거워졌지만, 나는 올해 성인이 된 이후 가장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역시 시간이 약이라는 옛 어르신 말은 틀린 게 하나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 시간이 지나 하나의 향으로 기억된다면, 어떤 향이 되어 있을까. 마냥 달콤한 향은 아닐지라도 인생의 한 시기를 돌아볼 수 있는 향으로 기억되고 싶다. 시간이 지나 지금의 팀원들과 웃으며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꼭 묻고 싶다. 여러분에게 저는 어떤 향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