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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Nov 21. 2021

'선행' 을 구분하는 인간이 된다.


르마는 지은바에 따라 그 결과물을 수용할때 한 사이클이 지나간다. 잘못 행한 악도 선업도 인과에 따라 돌고돌아 제자리로 찾아 온다.  


을 지혜롭게 운영 다는 것은 복이 들어오고 나감을 조율함에 있어 가계 살림을 적절히 운영해 나가는것과 같다.


생활속 소소한 행동들엔 그 인과가 바로 드러난다. (층간소음, 주차 시비 같은 문제들) 잘못에 대한 카르마가 돌아와 응보를 치루고 나면 숙제를 마친듯 후련한 마음이 들며 선업이 보답으로 돌아오면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더 뻗어나가야 하는 선업이 사이클을 돌아 결산되기 때문이다. 영혼 입장에선 악한 카르마는 치루면 빚을 갚으니 후련하고 선업은 보답 받은만큼 왠지 저축한 복 내준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래서 빈듯해  다시 선업이라는 저축을 계속 하게된다. 그렇게 덕업이 쌓일수록 인간은 보다 신성한 종으로 성장과 진화의 계단을 위로 밟아 나간다. 반면, 악업은 쌓여갈수록 인간을 동물적 존재로 퇴보 추락 시킨다. 깨달은 에고는 선행은 행하면 행할수록 마음이 하늘과 가까워짐에  더욱 부족하게 느껴지고 악행은 티끌떨어져(담배꽁초 하나 길거리에 버리려 해도) 오염됨이 신경쓰이찝집해 포기하게 된다.


나쁜 이 돌아올 경우를 대비해 그것을 호연지기로 이겨낼만큼 선업으로 체력축해 놓을수도 있다. 선업은 내세의 보험들듯 꾸준히 쟁겨 놓는것이 좋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당장의  눈앞의 작은 보답에 연연해 하지 말고 복덕이 돌고돌아 새끼를 칠만큼 (남 모르게) 풀어 놓으면 그만큼 덕업은 내생까지   싸이클로 돌면서 불어나게 된다. 주식처럼 갑자기 가치가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일은 없다. 현세에서 물질적 보상이 없을지라도 의식은 그만큼 경치좋은 성인의 눈 높이에 다가서고 보다 성숙의식으로 살아갈수 있다. 


넷플릭스 '지옥' 한장면, 지옥을 만든것이 신인가 인간인가..


스스로는 선행을 했다고 믿지만 도리어 칼이되어 돌아오는 경우는 그 선행이 악행을 키우도록 도왔을 경우다. 적과 악인에 대한 어설픈 관용은 대부분이 비극으로 돌아옴을 인간 역사가 되풀이로 증명하고 있다. 유방을 관용으로 대한 항우가 그러했고 적들을 사면했던 카이사르도 비극을 맞았으며 우리의 근래 역사속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비극을 맞았다. 상대방 자신의 눈 높이로 오판했기 때문이다.


죄에 대한 뉘우침을 동반하지 않는 용서는 만용으로 도리어 더 의 힘을 키우게 만든다. 악행에 있어선 대부분의 피해자들 역시도 가해자와 마찬가지로 안 좋은 카르마의 영향을 받게된다. 타인을 돕는다고 해서 악을 도와서는 안된다. 종교에 선행이라 생각해 기부를 해도 죄가 되기도 하는 이유는 기부행위가 범죄자와 괴물 집단을 키워주후원 행위가 될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가 만들어내는 지옥에 힘을 실어주고 수많은 피해자들이 생겨 나는데 그돈이 어떻게 쓰여 졌는지 몰랐다고 울하다고 한다면 무지를 탓할수 밖에 없다.


 독립을 갈망해 무작정 몰려서 집단 만세를 부르는것 밖에 할수 없었던 ..


선행에 있어서도 무지로 인한 방편의 부족은 무모한 희생을 낳기도 한다. 평화주의가 정의라고 착각하고 왼쪽뺨 맞고 악인에게 오른쪽 뺨을 내밀면 악인이 뭔가 깨우치고 반성 할거라는 간디스런 생각은 인간을 모르는 어리석은 짓이다. 허락한만큼 레프트 라이트 정신없이 두둘겨 맞는다.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성인의 말은 마음속에 원망이나 증오를 품지 말고 카르마의 되풀이를 끊어내라는 뜻으로 악인의 악행을 계속 허용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평화적 방식도 상대의 수준을 판단해 효율적 전략을 택할수 있어야 한다. 전쟁에서 양심과 도덕 평화주의를 설파한다고 적군이 감동해 물러나는 경우는 없다. 나라를 빼앗겼다 해서 무조건 쪽수로 총칼 앞에서 태극기 흔들고 만세 부른다고 일본이 독립을 내어주진 않았다. 그 마음만은 선행으로 숭고 하겠지만 실익 보다 더 큰 무고한 민중들의 집단 희생이 이어졌음을 지도층은 냉철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본군 자동소총 앞에 수만명이 무작정 뛰어들어 희생당한 동학운동도 마찬가지다. 장수가 자신이 옳다고 하늘만 믿고 저지른 선행(?)의 결과로 수많은 선량한 민중들의 목숨을 허망하게 잃게 했다면 그 자책감이 한의 카르마로 남지 않을수가 없다.


인간인간 다운짓을 해야 마음이 편하다. 개들은 개같은 짓을 하기 때문에 개다. 개가 개같은 짓을 하는것은 당연한 행위다. 개를 지배하는 인간이 개보다는 우월한 종임이 분명한데 세상이 뒤집히려다 보니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즐비한 세상이다.


수천년전에 쓰여진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있어 어찌보면 가장 기본룰 체계 '6가지(6바라밀)  지키자' 라는 불교의 '화엄경' 이 아직도 인간들에게 실생활에 적용되지 않고 계속 불자 수행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아직 현 세대 인간종이 초등학생 윤리도덕 시간에 가르쳐도 충분한 내용들인 '양심을 지키고 올바르게 살아가라'단순한 원칙마저 습득하못했 때문이다. 가르친지 수천년이 흘렀는데 인간에게 있어서 보살행이 아직도 편안하지 않고 행할려면 힘이 들고 인.의.예.지  몇가지 안되는 규격에도 노력을 하고 수련을 해야만 간신히 맞출수 있다고 한다면 그만큼 도의 원칙에서 인간 세상이 많이 어긋나 있다고 보면 된다.


대다수 인간을 그렇게 비양심 적인 종으로 만든것이 사회 때문이라면 그런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배들의 문제이고 그것에 힘을 실어주는 구성원들의 책임이고 결국은 종이가진 자율의식의 한계점이다.



인간이 동물들처럼 엎드려 기어 다니는것이 쉽지않듯 인간에겐 편한 문명이 동물들에겐 도리어 불편하다. 흉내 내는것이 아닌  각자 에게 편하게 생긴대로 살수있는 방법을 찾는것이 질서를 잡아가는 길이다. 양심과 인간의 도리를 지키면서 사는것이 힘든 인종과 반대로 어기는 것이 힘든 인종분리해야 서로가 편하다. 각자의 천국이 전부 다른것을 한 공간에서 구현 하려다 보니 세상이 이토록 잡스럽고 지옥같은 모양을 갖추게 다.


에고들은 무조건 허용하고 타인의 의견에 반박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행동을 '착하고 선하다' 라고 오인한다. 잘못된 싹은 애초 허용하지 말것이며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작은 악행에 대해선 무관용이 더 큰 사고를 막을수 있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맺고 끊는 선을 명확히 그어 주어야 상대도 그 룰을 인지하고 받아들인다. 가족, 친구, 부부사이라 할지라도 허용 되어선 안되는 말이나 행동들은 바로바로 지적하고 풀어내야 오해가 생기지 않고 더 큰 불화가 쌓이지 않는다. 상대가 잘못된 행동으로 자신을 대한다면 벗어나는 일정 선 이상은 허용하지 않음을 단호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 예를 들자면 새벽에 전화로 술주정 하는 습관 계속 받아주는것이 부담될때 ) 상대도 그것이 상식적으로 올바르다고 판단한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지켜주게 된다.


현세대 인류가 저질러논 이 난장판 지옥 터널을 통과해 살아남는 차세대 인류는 최소 인간의 도리에서 옳고 그름과 선악을 구분해 행동할줄 아는 종으로 업그래이드 진화해 나가야 할것으로 믿는다. 터널끝까지 가보면 알게 될것이다. 온갖 마구니 들이 설쳐대는 지옥같은 난장판이 지긋지긋 해지고 지옥놀이를 그만 하자고 외치는 세대가 온다.


올바른 선악을 구분할줄 알며 용기있게 선행에 나서는 자들이 인류가 처한 말세의 위협속에서도 묵묵히 진화의 길을 걷는다. 올바른 선행을 하는것이 자연스럽고 편하고 본능적으로 악행 하기가 힘들고 악이 뿌리를 감춰도 가릴줄 아는 그들을 불교식 용어로는 '보살' 이라고 한다. 나이 인종 성별을 떠나 차세대 주역이 되야할 미래 인종의 씨앗들이다.


Someday:

https://youtu.be/sYlFHZtuJ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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