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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Feb 27. 2017

환자 한명으로 인해 붕괴되는 가정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집안에 희귀성 질환이나 불치환자가 한명이라도 있는경우,왼만한 중산층 가정도 경제적으로 버티기 힘들다는것을 어제 친구를 만나면서 새삼 알게됐다.


예전엔 암도 집안에 암환자가 한명 나오면 집안이 흔들거릴 정도로 경제적 타격이 큰 질병 이었지만 워낙 암이 대중화 되다보니 요즘은 보험도 많고 나라에서 지원도 산정특례로 지정해 옛날만큼 큰 부담이 되는 질병은 아니게 됐다. 수술하고 함암받고 해봤자 산정특례로 몇백만원 정도면 왼만한 병원치료비는 해결된다. 보험도 없이 궂이 보험적용이 안되는 최신 치료만 받겠다던지 한달에 수백만원 요양원을 가겠다면 집도팔고 해야할 정도로 억대의 막대한 비용이 들겠지만 그런것은 각자 개개인의 선택인지라 절대적으로 모든 암환자들이 꼭 들여야 하는 비용은 아니다. 암은 현재로선 환자 개개인 선택에 따라 치료비는 수백에서 억대까지 선택의 폭이 큰 선택형 질병이라고 볼수있다. 돈을 많이 쓴다고 사는것도 아니고 돈이 없다고 죽는병은 아니란 이야기 이다.


어쨋든, 집안에 불치환자가 한명이 있으면 그야말로 왼만한 집안은 보험이 없으면 그 막대한 치료비 부담을 견뎌내기가 쉽지않다.  가족 입장에서는 가족의 생명보다 소중한것은 없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경제적 붕괴도 순순히 받아들이는것이 일반적인 가정들이다.


오전내내 아버지 심부름을 하며 생각해보니 우리집안의 몰락 역시 십여년전 아버지의 뇌경색이 직접적 원인이었다. 남부럽지 않게 살던 집안이었는데 어느날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셧고 천신만고 끝에 생명을 건진것은 실로 다행한 일이었다. 문제는 육체는 정상적으로 활동이 가능하게 됐지만 사고 인지능력이 어린아이와 같아지시는 바람에 매일같이 돌아다니며 벌리는 사고들이 문제이다.


식구들 모르게 불법 다단계에 넘어가 들어보지도 못한 이상한 상표의 라면을 2천만원 어치 카드로 결제하고 들킬까봐 몰래 한박스씩 집에 가져오는건 그냥 애교 수준이다. 몇년간 정상인처럼 돌아다니며 식구들 모르게 벌려논 일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자 그 내막들을 비로서 식구들이 알게됐는데 온갖 사기꾼들의 먹이가 돼서 여기저기 도장찍어 주신 바람에 순식간에 수십억 재산이 날라가고 살던 집까지 경매에 넘어가 집안을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었던 것이다.


내 몫으로 있던 중형 아파트도 나는 살아보지도 못한채 허공으로 날라가 버렸다. 꽁돈 몇십만원 준다고 꼬시면 아무데나 도장을 찍어준 바람에 멀쩡한 땅도 빼앗기고 쓰러지기 전에 재건축 조합장이라는 타이틀도 있었기에 거대 건설 사기에 휘말려 독박까지 쓰면서 몇년간 온갖 수십가지 소송에 휘말려 들었다. 절대 식구들한테는 무슨짓을 벌렸는지 이야기를 하지 않으셧기에 언제 어디서 무슨일이 또 터져나올지 몇년간을 마음 졸이며 지냈다.


당시, 나는 사업하느라 바빠 집에 한달에 한번도 들어오지 못할때여서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신경쓰지를 못했다. 사업도 어처구니 없이 순식간에 사고가 터지며 몰락했지만 동시에 집안까지 생각지도 못하게 바닥으로 내몰린 것이다. 나는 자살을 생각했고 모든걸 내팽개치고 이태리로 도망가 버렸다.



이태리로 도망갔다 돌아와서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된 어머니와 내 거처마련과 아버지가 벌려논 뒷수습을 하느라 아버지 지난 행각들을 조사하러 일년간을 소비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한참 사경을 해매고 병원에 계실때 고모가 무당을 찾아 갔었나 보다. 무당이 아버지가 살면 그 대신 재산이 나간다 라고 했다는데 그말이 딱 맞았다. 그야말로 아버지의 뇌경색 이후 아버지의 목숨과 집안 전재산을 바꾼셈이 됐다. 비록 지금까지도 자잘한 뒤치닥거리를 해야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살아계시다는것에 위안을 삼는다. 아마 같은 상황이 닥치고 아버지의 목숨이냐 전재산이냐 신이 선택하라고 한다면 식구들은 망설임 없이 아버지의 생명을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다..


내가 암이라는 것을 알게되자 부모님과 형, 집안이 내린 결정도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목숨과 집안의 안정을 바꾸기를 원치 않는다. 나로인해 집안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는것을 결코 원하지 않기에 간병이 필요한 환자 코스프레는 절대 않기로 했다.내  병에대한 앞가림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족들에게 부담 주지 않고 나혼자 스스로 해결한다..가 암 진단 당시의 나의 신념이었고 그 신념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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