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인으로 신다는것의 스트래스
오늘이 공과금과 카드대금 내는 마지막 날인거 같다. 노환으로 병원에 계시는 아버지에겐 이것저것 공과금 고지서를 들고 한달에 한번 은행을 찾아가 직원들에게 대접받으며 공과금과 카드대금 내는것이 한달중에 가장 큰 행사이다.
아버지가 십몇년전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나신후 살아난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정신연령은 어린아이로 돌아가 타인을 배려하거나 주변상황을 파악못해 가족들은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게 아니다.몸도 불편하시면서 매일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면서 움직이시는게 다행이긴 한데 자잘한 사건의 연속인지라 그 뒷치닥 거리들이 만만치가 않다. 다른 사람들에겐 아무것도 아닌일들 이지만 아버지에게는 엄청 큰일들이기에 가급적 아버지 신경을 안쓰게 하는 방향으로 식구들이 맞춰주는게 우리집안의 일상 생활이다. 자발적으로 식구들과 떨어져 시골에 혼자 사신지도 이십년 가까이 넘으셔서 수시로 전화올때마다 찾아가야만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그 뒤처리 할 사람은 집안에 나밖에는 없다.
덕분에 나는 오늘 하루 스케쥴이 강제로 정해져 버렸다.어제 친구만나고 자정넘게 들어와 속상한 상태에서 기록을 작성하고 아침 다돼서야 잠들었는데 세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더니 아침부터 엄마가 아버지의 심부름을 해야한다고 성화가 시작됐다. 아버지 집에들러 공과금 고지서를 찾아오고 병원의 아버지에게 들러 통장을 전해받고 은행에 가서 공과금 수납을 한후 다시 통장을 아버지에게 돌려주러 병원을 가야하는 일이다. 젊은 사람 입장에서는 스마트폰 몇번이면 몇분만에 다 해결할수 있는 문제가 노인들은 하루가 꼬박 걸리는 중대행사가 된다. 그 장단에 맞춰야 하는것이 때로는 고역이 된다. 그까짓 공과금 납부와 날짜 며칠 밀리는게 무슨 큰일이라고 내가 하루종일 그일을 처리해야 하는지 짜증이 났다.
며칠전에는 통장에 공과금 낼 돈이 있는지 확인한다며 통장을 갖다달라고 하도 성화를 하셔서 그 심부름으로 반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치솔 필요하다고 부르시기도 하고 어쨋든 병원에 입원하신후론 거의 매일같이 자잘한일들로 호출해 식구들의 일상을 자신을 위한 봉사로 때우게 만드신다.
"아버지 머리속에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은 아예 지워져 버렸나봐. 아예 나를 비서로 부리시려는거 같네"
어머니가 바로 쏘아 부친다.
"암환자가 자랑은 아니거든? 움직이기 싫으면 드러눕던가. 멀쩡하게 돌아다니면서 아버지 위해 그정도 심부름도 안하려고 하면 어떡하냐 하기 싫으면 하지마 억지로 강요 안한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깟 공과금 제날짜에 내는일이 엄청난 큰일로 오늘내 처리못하면 마치 세상이 뒤집어 지는듯 쓰러진다는 흉내를 내시므로 안할수가 없다. 십년을 그렇게 집안 식구들이 정신연령이 퇴화한 어린아이 같은 아버지의 성화에 맞춰주며 살아왔다.
일주일전부터 전화로 공과금 문제 처리하라고 엄마를 매일같이 들들 복았다고 한다. 어머니도 거동이 불편하므로 나에게 시키라는 의미이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내 입장에서는 오늘의 쓰잘데없는 스케줄에 한숨이 나온다.
아무리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려 해도 자잘한 스트래스의 연속이 정상인의 일상생활 이다. 암환자에게 스트래스는 가장 큰 위협요소중 하나이다. 외출하면 격게되는 교통체증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고 집안에서도 식구들과 소소한 일들로 부딫치게 된다. 당장 죽게 생겼을때는 모든것을 나에게 맞춰줬지만 내가 멀쩡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한달이상 보이니 그것에 익숙해져 어느새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 주변에서 나를 신경쓰고 배려하는 불편함은 사라져 버렸다.
시골에서의 운전은 하루에 몇백킬로도 드라이브를 즐길수 있는일이지만 도시에서는 단 몇십킬로도 몇시간에 걸친 스트래스의 연속이 된다. 스트래스는 나에겐 필연적으로 줄담배로 이어지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의 줄담배 여파가 아직 다 정화되지 않은지라 폐에서 뻐근한 느낌이 왔다. 암환자인데 스스로 생각해도 한숨이 나온다. 아침부터 다시 한숨과 줄담배가 시작된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계속 이어지는 자잘한 스트래스에 다시 내 보금자리인 시골로 하루빨리 내려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데 아직까지 음식해결에 대해 솔직히 자신과 확신이 들지않아 머뭇거리고 있다.
식당도 없는 시골에서 나 혼자 음식해결을 잘할수 있을까.. 이전에 경험한 철저한 실패를 생각하면 망설여 지는것이 당연하다. 또다시 암환자가 매일같이 하루한끼로 때우며 라면이나 뜯어먹고 끓여먹는 생활이 될수도 있다. 일단 오늘은 그렇게 아버지의 뒤치닥거리로 하루를 보내야 하는것이 정해진만큼 불평은 나에게 도움이 안된다. 움직일수 있는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하루종일 운전으로 인한 스트래스를 감수하며 보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