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갓집 이면서도 부모님 두분이 이혼 하신데다가 기독교 집안인 어머니 고집으로 우리집엔 수십년전 부터 제사가 폐지 되었다. 교회 다니는 형수님 역시 대 찬성인지라 명절때도 가족예배로 대신한다. 어마어마 하게 대가 쎈 조상들 카르마는 6.25를 거치면서 집안대몰락과 함께 큰 줄기는 종손인 형님이 고스란히 받아내느라 삶이 고달프다.
오래전 알던나보다 나이많은 지인이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곤 십년(?) 정도만에연락이 와서 커피한잔 하자고 한다. 코로나 시국에 방역조치 까지 더해진지라 백신 안맞은 지인과 갈만한 커피숖이 없다. 살림하는아줌마 답게 바리바리먹다남은 케익에 과일을 싸들고온지라 집으로 초대해 핸드메이드 커피를 대접한다.
케익과 함께 들고온 과일은 [배 한알,사과한알] 인데 제사음식이라 한다. 어제 치룬 시부모 제사라는데 말하다 보니 우리집과 같은 종친에 항렬도 같다. 서로가 깜짝 놀란다.
아....
내가 그것을 받아 먹어줘야 한다는것을 알았다.그 배와 사과를 궂이 십년만에 만나는 나에게 왜시골 구석까지 들고 왔는지 본인은 이유도 없고 아무 생각 없을것이다. 이런식으로 귀신들이 사람들을 조정해 꼭두각시로 일을 벌이는것을 보고 격은것이 젊은시절 부터 한두번이 아닌지라 타인의 손을 빌려서라도 연줄을잇기 위한 조상들의 간절한 바램이란걸 쉽게 알수있는 수준은 된다.
상황이 안되는 종가종손인 형님을 제치고 차남인 내가 조상 라인 연줄을 이어야만 하는 상황이 된것같다. 휴...
귀신들도 다급하게 움직여 후손들과 인연줄 대느라 물불 안가리는 중이다.나처럼 눈치가 빠르면 귀신처럼 귀신들 행동을 알아 차릴수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왜 그러는지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꼭두각시 처럼 움직여도 알지 못한다. '귀신에 홀린것 같다' 란 말은 진짜다.귀신에 홀리면 도도한 여자라 해도 처음 만나는 남자임에도 같이 자자고 먼저 붙잡는다. 나중에 그때 왜 그랬을까 본인도 당시 본인의 행동을 이해 못한다.
그저 당연히 죽을줄 알았던 내 소식을 알게되고 갑자기 생각나서만나러 온김에 (자기 생각엔) 시골 산속에서 혼자산다 하니바리바리아줌마 답게 먹을거라도 갖다준다고 집에 어제 치룬 제사 과일이 남아 아무 생각없이 들고나온 것인데 사실은 우리 조상줄의 제사 과일을 나에게 전해주어야 하는것이 그날 지인방문의 실제 목적이다. 궂이 그내막을 알려줄 필요는 없고 신경써 주셔서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하면 된다.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을 일컬어 '식구 [食口]' 라고 한다. 같은 음식을 사람과 귀신이 같이 먹는다는 것은 깐부맺듯 한 식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타인의 손을 빌려서라도 나에게 꼭 제사음식을 먹여 식구의 연을 잇겠다는 조상 귀신들 정성이 대단하다. 제사가 꼭 거창하게 돈 들여 차리거나 고생해서 치뤄야 할 이유는 없다. 무지한 자는 사과 한알, 배 한알에담긴 의미를 몰라 버리거나 안 먹기도 할 것이다. 허나, 그 의미를 알면서 거부하기는 쉽지않다.
말세 팬더믹 세상에선 가족 식구들연줄 잇는것보다 중요한것이 없다. 우리 옛 조상들은 집안의 대가 끊기는것을 가장 두려워했고 후손을 못 보면 조상들에게 씻지못할 큰 죄를 짓는다 여겼다. 요즘 결혼도 안하고 자식도 안 낳고 기존의 가정 개념이 붕괴 되면서 그야말로 대가 끊길 집안 속출중이다. 끈 떨어진 연이 하나 짜리라면 그 연만 날라 가겠지만 줄줄이 연은 가까운 곳에서 줄이 끊어지면 그 뒤로 전부 날라간다. 대대로 이어온 지상과연줄이 끊기는지라 귀신들이 난리난 이유가 그 때문이다.
후손 한명이 수백(?) 조상 귀신들이 매달리는 희망이다.어떻게든 후손 한명이라도 살려 지상과 연줄을 이어야 하기 때문에 귀신들이 인간들 보다 더 애가 탈 비상 상황이 현재의 말세다. 그것을 알기에 귀신이 전해주는 배와 사과, 케익을 겸허하게 받아 먹는다. 배 한알 사과 한알로 (나는 알지 못하는 남에 얼마나 많은 귀신들이 딸려 있는지는 모르지만) 조상 귀신 라인들과 음식을 함께한 식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