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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age Speak

Tune The <SAFE ZONE> Frequency

나 또는 누군가를 위하여..

by MooAh


죽느냐 사느냐 전쟁중에 누구 주장이 맞냐 말장난 해대는 각 종교들 어리석은 취미생활로 시간낭비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지금은 그런 한가한 시간대가 아니다. 물이 점차 차오르고 구시대 인류 역사가 통째로 가라 앉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식에 물든 사람과 대화를 나누려면 단어마다 컨버팅이 필요해서 단어 개념 맞추다보면 핵심은 논할 시간도 없이 시간낭비만 이어진다. 소중한 시간대에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줄이려면 몇가지 기본 사항들을 규격화 해야 교류에 있어 소통이 원활하게 된다. 차후 나와 교류하고자 하는 인연되는 분들은 앞으로 내가 말하는 <SAFE ZONE>의 존재와 개념을 인식하고 있어야 나와 대화가 수월할 것이다.


<SAFE ZONE>에 들어가는 법을 터득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개념부터 이해 해야 한다. 자격을 따져보고 시도함에 있어 개요에 대한 설명이 필요함을 느낀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SAFE ZONE 은 일반적으로 종교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기독교 식으로는 하나님(or 예수님)의 품안, 성령의 충만함, 천국 등으로 표현할수 있겠고 불교식으로는 아미타 붓다의 정토 개념이라고 보면 딱 맞겠다. 각 종파마다 다른 표현으로 헷갈리는 용어를 쓰느니 나는 개인적으로 <Safe Zone> 이라는 실용적이고 심플한 용어를 쓴다.


어떤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더라도 나에겐 그 주파수대에서 항상 Safe 라는 느낌이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접속과 충전 시간이 많고 깊어질수록 육체의 생명력은 살아나고 죽음의 기운은 점차 소멸된다. 스마트폰 밧데리 충전하듯 매일 충전을 습관화 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물론, 이 세이프존에 도달하기 위해선 그 전에 불교에서 말하는 견성 이라던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 세례등 거쳐야할 준비 과정들이 있어야 하는것이 일반론 이다. 지식이 전무하면 기초과정을 먼저 설명하고 과정을 밟아가야 할수도 있는데 마음만 급해서 보충 수업은 각자 시간내서 자율에 맡길수 밖에 없겠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꼭 단계를 밟고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는 법칙은 없다. 확률이 좀 거칠어 지겠지만 동시에 다 경험하며 목적지에 도달하기만 해도 된다. 학습 방법론에 있어 시행착오도 각오하며 가장 효율적인 소통 방식을 상호 고민하고 연구 하려는 중이다.



대다수 에고들은 이 세이프존 입구까지 안내를 해도 문앞에서 이리저리 핑계와 변명 자기위안을 끄집어내며 뒤돌아 선다.


자격이 안될수록 세이프 존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편안해 지는것이 아닌 도리어 마음이 더 불편해 지고 괴로워 지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위대한 생명의 빛과 신성앞에 스스로 자격이 안됨을 알고 두려움에 도망치려 한다. 양심이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남은 속여도 블랙박스 기록처럼 자신은 속일수 없음을 본인이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양심이 '찔린다' 라는 표현대로 평안이 아닌 (누더기를 걸친채 파티장에 들어서는 것처럼) 불안과 초조 분노같은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올라온다. 치유되지 못한 트라우마도 마찬가지다. 감춰져 있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는것을 느낄때 불편함과 거부하고 싶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영악한 에고는 이때 항상 "저곳은 안전한 구역이 아닐거야 저곳에 들어가면 나는 죽을것같다." 어설픈 호기심으로의 접근은 어김없이 두리번 거리다 옆으로 도망가고 만다. 자신안의 악마가 얼마나 교활한지 알게되며 졸부들이 가난한 선비들을 돈으로 멸시하며 자신의 입지를 내세우듯 스스로 면죄부를 부여하고 자신의 행복 기준을 내세워 독단적 평가를 합리화 하려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위안을 주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다른 장소를 찾게 되는데 죄인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장소는 절간과 교회같은 사람들 몰리는 곳이다. 온갖 죄인들 다 받아 준다는 그곳으로 가서 열심히 기도하며 위안과 자가만족을 한다. 군중들 모여드는 그곳이 더 편하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다.


지금 현시대 상황의 혼잡함은 그런자들이 점령한 말세다. 실제로는 돈신을 추종하는 온갖 다단계 물귀신들이 영성인 코스프레 하고 도인 행세하는 세상이다. 온 나라 사방이 몇집건너 교회에 산마다 절간에 보따리 장사들까지 설쳐대는데 세상은 더더욱 혼란의 극치를 달리는 꼴을 보면 알것이다.


에고가 마음껏 욕망을 추구 하면서 가끔 양심이 찔리면 절간과 교회에서 셀프사면을 취하고 천국 같은건 '다음생에 가면 되지' 현실적 안락함과 즐거움에 육체를 던져 버리고 배부른 동물로서 안주해 버리곤 하는데 바램대로 다음생에 다시 도전할 기회가 주어질지는 말세인지라 장담 못한다.



자연이 무작위 어쩌다보니 생겨났고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신성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식한 에고성 지능으로는 결코 발견할수 없는것이 세이프 존의 입구이다.


인간에 대한 단편적 동물적 지식으로는 신의 세계가 존재함을 인정하지 않게된다. 똑똑한척 용감하고 씩씩한 원숭이의 삶이 그들의 것이다. 동물들은 인간의 컴퓨터 프로그램과 디지털 공식들을 알리 만무하고 인간들의 디지털 문명이 자연적으로 생겨났다고 믿는다.


인간역시 마찬가지로 왜 자연이 피보나치 규율을 따르는지 설명할 길이 없으니 무조건 안보이니까 설계자에 대해 몰라 없어 우기기로 밀어 부치고 '자연은 위대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다' 식이 돼 버린다. 그러니 삶의 터전인 지구를 망가뜨리면서 스스로 생명들을 파먹는 짓들을 꺼리낌 없이 하는 것이다. 설계자의 공식을 아는자는 자연과 순리를 역행하면서 스스로를 해하는 미련한 동물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확실한 참수가 아닌이상 치사율 100% 질병이 있다라는 말은 아직까지 들어 본적이 없다. 모든 생명의 생사 사이클은 자연사 또는 병사 라고 하지만 관점에 따라 자살 일수도 타살 일수도 있다.


내가 2월달부터 화초, 야채, 온갖 식물들을 집에서 키워 보려고 시도했으나 전부 말라죽어 포기했다. 물도 주고 했으므로 나는 걔들이 자살 했다고 주장 하는데 다른 이들은 한결같이 타살 이라고 주장한다. 육체 관리를 떠안은 에고들이 풀어야할 문제이다. 차라리 자연에 내맡김 하면 식물은 저절로 더 잘 자라난다. 화분에 가둔채 물도 햇살도 에고의 어설픈 간섭은 안하니만 못해서 도리어 식물을 죽음으로 향하게 만든다는걸 알게 된다. 자신의 육체도 마찬가지다. 에고의식의 한계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내맡김에 대한 인정을 빨리 할수록 신성과의 만남은 빠르게 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