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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Feb 01. 2023

말세기 '중용[中庸]' 이란 무엇인가?


한국어 사전에서 중용의 뜻은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떳떳하며 한쪽으로 치우침이.없는 상태나 정도>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용 (中庸)'이란 마음이 고요한 중심자리 'Home (Hum+Ohm)' 의 자리에 고정돼 있음을 말합니다.


Q: 사람들은 바뀌지 않을 테고 생각이 많으면 머리만 터지고 뛰어들지 않고 산속으로 숨은 옛고승들의 심정 진짜로 이해가요. 외면하지 않으면 나를 내놓아야 하니까요.


외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던 휘말리지 않음은 눈앞의 사태를 남의일 보듯 외면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중용'이 아닌 '방관' 이라고 표현 합니다.


흔히들 무위이화를  아무것도 안하는것이라 오해하고 중용을 문제제기에 있어서 무조건 시비와 대립에 관여하지 않는것으로 착각 합니다. 무능을 도라 치장하고 방관을 중용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별하지 못하는 '무지' 나 '비겁'을  뜻 입니다.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처럼 이미 인류는 말세기 고래 뱃속에 들어와 있음을 알아야 겠습니다. 세기말 이상기후가 말하는것이 그것 입니다. 소화 되기전에 각자도생 스스로 탈출구를 찾아야만 합니다.


https://youtu.be/zCR88eiMaG4


시험장에 들어서 판단을 회피 하는거나 TV 와 언론이 대신 생각을 해 주고 선동 하는대로 따르는 상태나 수준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오답을 적는것과 문제를 안푸는것 모두 낙제란 점에선 같습니다.



Q: 무아님 말씀 정확히 중용 이해는 하지만 잘못된걸 알면서 행동하지 않음엔 방관의 요소가 있다봐요~


휘둘리지 않는것과 행동하지 않는것과는 전혀 다른말 입니다. 오해하기 쉽습니다. 행동은 해도 쓸려 다니진 않는다는 말은 해야할 일이고 필요한 경우엔 행동하는 것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데 집단의식 이나 동물적 감정의 소모적 개입이 불필요 하다는 말입니다.  관우 이순신 같은 장수들은 중용속에서 전투를 치룹니다. 격렬한 스포츠 경기에서도 정상급이 되려면 경기중엔 잡생각을 멈추고 정신 집중 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 감정의 휘둘림에 사로 잡히면 무모한 행동으로 일을 망치거나 반대로 저항을 포기한채 스스로의 무력함과 비겁함이 주는 한탄과 자괴감속에 빠지게 됩니다.


대결 구도에서는 상대를 중용의 자리에서 밀어내기 위해 감정을 공략합니다. 힘의 논리로 강자가 약자를 공격하는 부분이 바로 겁을 줘서 두려움 이라는 감정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짜뉴스들의 목적도 감정의 선동에 있습니다. 행동이 감정에 좌우된다면 그것은 중용의 자리에서 밀려난 것입니다. 그릇됨에 분노할때도 감정의 흔들림 없이 합리적 이성에 근거한 합당하고 정당한 분노가 되어야 하고 논리적으로 정확한 항의나 질책을 해야 니다. 단지 자신의 기분에 거슬린다 해서 발끈하는 식의 감정적 화나 분노는 중용이 아닌 동물적 본능으로 그저 싸우자는 치우친 감정의 발산일 뿐입니다.


감정의 개입이 아닌 냉철한 시각과 안목, 올바른 판결을 내리고 행동할수 있는 능력이 중용이라 하겠습니다. 기준을 정하고 같은 현상 안에서도 맞는 요소와 틀린요소, 거짓 정보와 선동을 정확히 가려낼줄 알아야 해요. 가짜뉴스 라고 반발 하는것이 사실은 적반하장인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에 근거해 잘못을 정확히 지적하고 말할수 있어야 하고 바로 잡으려는 용기와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개인 감정이 들어갈 필요는 없어요. 전쟁 외교 비지니스 같은 중요한 일일수록 감정적으로 처리해선 안됩니다.  감정이 개입되면 판단이 흐려지고 감정에 치우치면 무모한 일들에 쓸려 다니게 되거나 거짓 선동에 끌려가고 편가르기에 이용 당하기 쉽습니다.


할수 없는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행위를 객기 부린다 라고 표현합니다. 자신의 능력 한계안에서 할수 있는것과 할수 없는것을 냉철히 구분할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의 가치와 능력을 평가절하 하거나 과대포장 하지 않는것이 중요합니다. 도전도 앞을보고 단계별로 발전 성장해 나가야 하며 인생을 무리한 확률에 매달려 매번 불확실한 도박하듯 살아갈순 없는법입니다.


전쟁 자연재해 팬더믹과 경제몰락. 동시 다발적으로 조여오는 말세기 위기앞에서 올바른 정답을 찾아내는 것은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전쟁에서 리더가 중용을 갖추지 못하고 감정에 휘말리게 되면 병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지로 내몰게 됩니다. 동학 운동처럼 일본군의 자동 소총앞에 무작정 주문외며 맨몸으로 뛰어드는 행동이 옳은 선택 이었다고 할수는 없을것 입니다. 외세에 맞선다는 대의는 옳을지 몰라 감정만 앞세운 (총알 한발과 사람목숨 한명을 맞바꾸는) 동학 지도층의 돌진 명령과 행동은 그저 자살을 택한 무모한 짓을 알아야 니다. 십자군 전쟁처럼 시천주 주문을 외우면 총알이 피해간다는 지도층의 종교적 무지 수만명의 민중이 그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Q: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이니, 나중에 지금의 시간이 어찌 기록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그 시기를 지나온 이들만이 아는시간그들도 서로의 입장이 다르니 다 다른 모양으로..


그걸 볼수잇는 안목이 중용입니다. 답을 모른다는것이 답이 없다는 말은 아니예요.


복잡한 수학문제를 본인이 풀지 못한다고 해서 답이 없다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기위해선 확률을 바라고 찍는것이 아닌 문제를 풀 수학적 능력을 배양하는 공부를 꾸준히 해야만 합니다. 문제를 풀 능력이 없는데 무작정 찍기만으로 합격하길 바래봤자 결과는 보나마나 입니다. 계산을 잘못해 오답을 내는것과 그저 남들 따라 찍는것, 운이 좋아 맞는답을 찍는다해도 답을 모르는것은 마찬가지 입니다. 공부를 했나 안했나 차이죠.


중용이라 함은 삿된 흐름에 끌리지 않고 정확하게 중심 자리에서 옳고 그름, 매사에 사리분별을 할수 있다는 뜻입니다. 치우친 아집이 없이 문제를 바로보고 풀어낼 솔로몬의 지혜와 능력을 갖추었음을 뜻하는 말이 '중용' 입니다.



수학도 문제해결 능력에 따라 어떤 학급 레벨에 속하는지 나눠집니다. 말세기는 개개인 감춰뒀던 카르마와 욕망들을 다 끄집어 냅니다. 망국열차를 탄 시점에서 시국에 대한 문제는 각자가 원하는 답을 선택함으로써 수준의 레벨을 가리는 것입니다. 자기 수준에서는 다 맞는 답들이예요. 시대적 흐름에 맞는가가 관건이죠. 망하는 와중에도 향에 따라 독재를 원하는 계층과 민주주의를 원하는 계층으로 점점 더 확고하게 선이 갈립니다. 다들 자기 입장에선 정답이지만 채점관인 시대가 정한 정답을 맞춰야 합니다.


중용은 찍는것이 아닌 시대가 요구하는 정답을 제대로 풀수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부분은 감정에 의지해 행동을 결정하고 편을 갈라 옳고 그른것 상관없이 승패 결과에만 몰두 합니다. 중용에서 벗어난 기교와 힘싸움으로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중용을 갖추지 못한 에고는 항상 극단적 갈림길에서 선택에 있어 모순에 봉착하고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어거지로 맞추기 거봐 다 들어간다고 했지?


말세기답게 온갖 해괴한 사건들과 어처구니 없는 억지 정치(?)가 당당히 기세를 부리고 있습니다. 언론과 정치보도가 국민들 평균 IQ 날리면 테스트를 하는것 같습니다. 평균치 이상인 사람들에겐 하는짓이 유치원 생 수준의 코메디나 다름없죠. 국민들의 수준에 맞는 투표결과가 그렇습니다.  


https://v.daum.net/v/20230130152509141

https://v.daum.net/v/20230201114320214


연산군의 '갑자사화' 를 정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검찰식 통치란 이런것이다 고소 고발 압수수색이 정쟁의 유일한 해법이고 아예 정치를 몰살하 흐름으로 갑니다. 정치를 해야 잘한다 못한다 평가라도 하겠는데 현 시대 상황은 시스템 붕괴에 정치는 실종 되고 그저 권력과 돈신이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 라고 정의 내리게 됩니다.


https://v.daum.net/v/20230129090029018

https://v.daum.net/v/20230128200914465


빈자들을 벼랑끝으로 내몰면서 가진자들은 그동안 억눌렸던 갑질과 사치를 자랑으로 삼는 천박함이 극도로 치닫는중 입니다. IMF 외환위기때도 그랬습니다. 국민들이 고통 받을수록 누군가 에게는 큰소리치고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투표 결과로 인해 약자를 비웃고 조롱하는 파시즘 단체 속칭 '극우 (일베) 사상' 이 한 나라의 정식 국정 방향으로 채택되어 실행되고 있는 중이죠. 외교는 노골적인 친일 정책으로 한일합방 시절의 굴욕적 그리움(?)을 다시 회복 시키는 중입니다.


 국민들 성향도 외제차와 명품에 미친듯 몰려 다니는 계층과 반대로 주거 난방비와 물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계층으극명하게 갈립니다.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며 사치에 더 매달리는 국민들 도덕과 의식 수준의 천박함은 우간다나 아프리카 빈민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것을 지켜보는 중입니다. 부자와 재벌 우대정책으로 빈부간 간극은 더욱 심해질것입니다. 부자들 종부세 덜 내게 하겠다고 국민들이 선택한 댓가입니다. 경제대국 이라지만 서민들이 살만한 세상이 아니란 지표로 젊은층의 저출산 행렬에 인구소멸이 진행중입니다. 해법이 없는것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구조 안에서 해법을 거부하는것 입니다. 


Q: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인생에 정답은 없어도, 해답은 있다라고 했듯이 지금의 시국이 정답이든 해답이든 빨리 찾아가길 바랄뿐 입니다.


시험 문제는 계속 난이도를 높이며 출제되고 있습니다. 아주 소수만이 답을 찾을것이고 대다수는 앞으로도 죽 오답 행렬에 줄을 서고 있을것 입니다. 수가 정답을 안다면 시국이 이렇게 망조로만 내리 흘러갈리가 없을테니 말이죠.



 제를 풀어가는 능력에 따라 신구 세대 인종이 갈리워져 가는것을 지켜 봅니다. 무엇보다 망하는 구세대 인종들의 행렬에 줄서서 따라가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모든 문제해결이 '돈' 이라는 단순한 지식으로는 절대 말세기 인류에게 닥친 생존의 궁극적 질문들에 답을 찾지 못합니다. 모든 문제에 대해 돈이 정답이라고 이미 답을 정한 상태에서 대다수가 (찾는)답이 없다고만 합니다. 그것이 문제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지금은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라도 새롭게 출시되는 문제나마 풀수있는 중용의 능력을 (늦었지만) 더욱 강화 시키고 길러야 할때 입니다.  채점 결과들이 드러날테니 말이죠.  


중용은 앞으로 신인류가 갖춰야할 필수 과목이 되야할것 입니다. 스스로를 알려면 '중용'의 자리에 가 있어야 합니다. 경기를 치루기전 잡생각 없이 맑은 정신 상태를 유지 시켜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출제되건 오직 중용의 자리에서 흐름이 보이고 채점관이 바라는 정답과 오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수만가지 주장들 해답 이랍시고 널려있지만 대다수가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는 결이 다른 오답일것 입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도 그때는 맞았어도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당대엔 모함으로 역모죄로 고초를 당했어도 누가 진정 역적이었는지 역사적 평가는 결코 양분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결과가 명확히 드러났고 인간에겐 보편적 상식과 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악인들이 부르짖는 <법과 정의 원칙 양심> 전부 맞는 말이라도 시대와 대상이 다르면 모두 다른 의미가 됩니다. 도적들끼리 도적질 하면서 자기들끼리 양심을 지킨다고 주장해 봤자 일반인에게 통용되는 정의가 될순 없습니다. 중용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순진하면 다단계처럼 그런 주장들에 속아 넘어가기 딱 좋습니다. 조선말기서 부터 지나온 카르마가 그대로 역주행을 따라 <Ctrl+C+V> 리메이크중 이란걸 볼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이들이 망국 조선 카르마에 휘둘려 낙제할것이 뻔하므로 풍랑에 라가 민족이 어디로 흘러갈지 올 한해 냉철한 중용의 자리에서 지켜봐야 할것입니다.


Russell Watson ... Bridge Over Troubled Water(가사):

https://youtu.be/fBHsC7pK_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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