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또다시 ‘나’ 를 부르다.
작년 여름에 주문했다가 가을에 받는 바람에 못 입은 마징가 티를 올해는 입었고 옥탑 마당과 집안에 중국산 싸구려 태양광 조명등을 ( 미친 중국의 섬머세일 덕에) 잔뜩 달아서 여름밤 캠핑분위기 에 선물받은 와인까지 있고..
밤에도 전기불을 켜지 않아도 되고.. 벌레소리 새소리 들리는 시골마을 구석탱이에서 이만함 유유자적 평화로운 밤이라 해도 될만하다.
그럼에도 뭔가 아쉬운듯.. 찌꺼기가 남아있는 이 기분은 ..
지난 추억을 몽땅 가져가 버리려는 미래의 나와 버티려 하는 현재의 나가 한여름밤 와인을 즐기느라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노년이 아른거리는 나이 먹기 싫은 노땅들 공통된 심리다. 현재의 찌꺼기가 남아있는 그 기분은 ‘아쉬움’ 인데 말랑꼴이 감성이 와인맛을 한 등급 업시켜주는 작용을 한다.
(경제적 사정으로 2만원 넘어가는 와인은 마시지 않는다. 맛은 둘째치고 분수에 안맞는건 선물을 받아도 마시려면 맘이 안 편하다. 지금의 내 수준에 딱 맞는 최상의 와인은 1만원 수준에서 2만원 안 넘어가는 와인이다. 마실때마다 맛있어 맛있어 부담없이 혀끝에서 해피가 메아리쳐 퍼져 나간다.)
언제나 6월과 7월은 나에게 생일이 다가옴과 함께 변화의 교차점이 되는 달이다. 브런치 기록이 오래되니 생일을 맞는 기록도 계속 쌓여간다.
그동안 익숙해진 과거들과 현재를 떠나보내기 싫은 미련앞에서 미래의 나가 개소리 잡소리 말라며 최후 종전 협상을 벌인다.
얼마전 핸드폰이 박살나더니 며칠전에는 거의 20년만에 애지중지 하던 이쁜 파란 가죽 장지갑을 통째 쓰리 당했다. 생애 두번째다.
소매치기가 한국에선 사라진줄 알고 시골 생활인지라 항상 가방을 열고 다니는게 습관이었는데 대형 식자재 마트에서 쇼핑하다 벌어진 일이다. 눈에 확띄는 커다란 지갑을 열린 가방안에 대충 구겨넣고 다녔으니 도둑에게 가져가 주세요 한셈이다. 운전면허 신분증 포함 카드까지 모조리 새로 발급신청 했고 이태리 밀라노에서 배낭 잃어버렸을때 처럼 기존의 모든 집착들을 떠나 보내야 함을 알았다. 말로해서는 안 들어 쳐먹고 안가려고 버티는 원숭스런 내가 문제다.
오드리 햅번이 죽었다고 [티파니에서 아침을][로마의 휴일] 영화를 볼수 없는건 아니다.
“추억과 기억은 없어지거나 사라지는것이 아니야. 단지 데이터로 저장 보관해 두는것이고 언제든 원할땐 꺼내볼수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단지 더이상 감상에 젖는 장난질 하며 보낼 시간이 없기 때문이야. 생존을 위해 더 어른이 되고 더 성장하고 진 사람이 되야 할때인거야.”
그게 국가공인 고독사 1 순위에 내장들까지 없는 오십중반 솔로남 에게 할 소리인가.. 그렇다. 외롭다는 핑계로 죽음의 강물속으로 집단으로 몰려가는 개돼지 되는것 보단 낫다. 바나나도 못 먹는데 당장 원숭이 놀이좀 안하면 어떠하리.. 전진하고자 할때 감성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전투에선 살고자 한다면 감성을 가두고 냉동고처럼 냉철한 이지체 의식이 전면에 나서야만 한다.
먼 훗날 다시 지금을 추억으로 와인과 함께 에고의
나약한 말랑꼴이를 다시한번 즐기리. 그 순간, 추억속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정말 좋을것 같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만함 미래의 나와 종전으론 괜찮은 타협점을 찾아낸것도 같다.
“준비 됐습니까?”
“OK 그놈의 미래.. 가봅시다. 와인 한잔 마실 동안만 기다리시오.. ”
원래 인간은 감성 충족을 위해 흔쾌히 육체적 수명과 건강을 댓가로 지불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음주 흡연이 그러하고 식탐이 그러하다. 흡연과 커피 와인 한잔을 마시는 시간만큼은 에고 감성의 나약함이 허용되는 소중한 시간이다. 감성충만을 위해 기꺼이 육체의 희생을 받아 들인다.
살아오며 겪었던 수많은 실패의 근본 원인이 더욱 또렷히 검증되는 날들이다. 모든 실패에는 한가지 공통적인 실수가 있다. '내 기준점을 남에게 들이대선 안된다.' 가 바로 그것이다. (하루에 나만큼 흡연하고 커피를 마셔대면 일반적으론 대부분 죽을것이다. 아마도.. 그러니 나를 기준삼아 절대 따라할 생각 말라. 특히나 환자분들..)
중년쯤 되면 남들과 어울리기 위해 바보같은 짓을 따라하는것도 한계가 온다. 철부지 애들 선동에 따를일이 없고 니들이 똥맛을 아냐고 주장한들 따라 먹어볼 맘이 생길리 없다. 외롭다고 뭉쳐서 잡소리들 해가며 덤앤더머 짓을 반복하느니 차라리 홀로가 낫다.
파리가 몸에 달라붙어도 파리채를 잡기 귀찮아 하는 나의 게으름은 오로지 타고난 천성인데 파리가 못돼서 날 괴롭히는것이 아니다. 그냥 날라다니다 아무데나 앉고 그럴뿐 못됐다 화낼일 없고 파리님 기분 맞춰 주느라 신경쓸것도 없다. 지구가 운명이 파리채를 손에 쥔들 인간들 역시 아무 생각이 없는것이 그저 다들 생긴대로 행동하며 사는거라 탓할것도 없다.
스스로의 게으름을 합리화 하려는 몸부림과 온갖 핑계중 가장 수긍이 가는 이유를 꼽는다면 늘어지는 폭염 한 여름 이니까. 그리고 나에겐 또다시 전환점을 시사하는 생일이 다가오니까… 싫어도 먹어야 되는것이 나이 아닌가. 말세 시대에 전환점이란 해결봐야할 숙제들이 곧 쏟아져 나올것을 의미한다. 중년 입장에선 세월의 떠밀림 현상을 체감 하는것이 마냥 좋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