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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Oct 19. 2023

‘불혹’ 과 ‘지천명 [知天命]’ 을 논하다.

나이가 차도 ‘미혹’을 벗지못함에..


꾸준한 직장생활로 그나마 (남들보다는)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는 친구한테서 시국이 시국인지라(?) 뜬금없는 낮 전화가 잦아진다.


역시나 항상 같은 주제 같은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 매사 불안하고 답답하고 ‘ 나는 왜 이럴까? ’ 자아성찰에 대한 똑같은 질문과 자탄이다. 내가 해주는 말도 십여년째 똑같은 말이다. 말세기를 살아가면서 고민없는 사람 없을텐데 그래도 병마나 경제적 생존권을 고민하는것 보다는 나은 고민을 하는 계층이다. 어떤 계층이건 나이들수록 인간종 자체가 만족스런 경우는 거의 없다.



똑같은 말이라도 받아들이는 관점들이 다르기에 받아들이는 사람의 그릇에 얼만큼 여유공간이 있는지가 깨달음의 척도가 된다. 똑같은 해골물도 원효가 마시면 깨달음이요 일반인이 마시면 X 밟았다 욕설만 나오는것이다. 그릇을 키울수록 담는양이 달라지는 것으로 같은말도 매번 새롭게 들리게 된다.


받아들일 본인의 자세와 때(나이)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외부에서 문제를 지적하고 해답을 알려줘도 와 닿지 않는다.  본인이 필요한 시기가 와야만 구하게 되고 그전에는 억지로 쥐어줘도 가치를 모른채 버리게 된다. 도박꾼 붙잡고 도박하지 말라는 말 해봤자 패가망신 하고난 이후에나 그 말이 진리였음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 너가 50대가 되도 계속 같은 자리를 돌게되는 이유는 40대 시절 갖춰야 할 기본인  ‘불혹(不惑)’ 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야”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40대 불혹(不惑) : 미혹되지 아니함
50대 지천명(知天命) : 하늘의 뜻을 앎
60대 이순(耳順) : 듣는 대로 이해 할 수 있게 됨

환갑(還甲), 회갑(回甲) : 육십갑자의 갑(甲)으로 되돌아옴


과거에 비해 선택과 미혹 당할 꺼리가 너무 많아졌다. 50대가 돼도 ‘지천명’ 을 알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40대 시기에 갖춰야 하는 ‘불혹’을 얻지 못해서 이다. 순리로 올라가는 순차 계단이 끊긴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자책과 후회를 끌어안고 초라해지고 추락해 갈수밖에 없다. 명성을 얻고 돈을 벌어도 마찬가지다. 고집과 아집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들이 기대고 믿을것이 돈신 밖에 없음으로 돈신은 비대해져 가고 인간은 망조로 간다.



나름 영성에 관심갖고 에헴거리는 사람들 수십년 찾아 다니며 돈도 뜯길만큼 뜯겼음에도 여전히 같은 패턴을 못 벗어난다면 불혹을 얻지못하고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미혹의 상태인것이다.


자나깨나 TV 앞에 앉아서 재벌 드라마 수백편 보고 즐긴다 해서 재벌되는 경우 있나를 생각해 보라. 거지들이 삼성가 집안 이야기 하며 수다꽃 피우는 재미 즐긴다해서 자신들 실체가 달라질게 없다. 책 많이 읽어 지식 많이 안다는 영성 지도자들 행태들이 대부분 그러하다.



“ 너는 나와 같이 어울려 40대를 함께 지나왔는데 왜 너만 아직도 불혹을 얻지 못했는가?. 나는 십여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매번 다르게 와닿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는가?


지인들 역시 항상 나의 말들에 그때마다 깨달았다 하고 공감한다고 하지만 뒤돌아서 시간 지나면 또 다른 재미난 것에 미혹된다. 나의 조언들도 단지 말장난 놀이로 잘 놀았다 마약처럼 그 시간 수다떠는 재미와 당장 심적 위안으로만 삼았기 때문이다. 깨달음에 대한 목마름과 절박함이 없어서 그렇다.



취미 생활이 여유를 즐기기 위해 심심해서 하는것인데 영성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 거의가 친목겸 취미 생활이라 봐도 무방하다. 위안 받음이 마약 투여하듯 그 효과는 얼마가지 못한다. 매주 교회가서 울고 소리치고 간증 방언 난리치는 믿음이란 것이 연예인 쫒아다니는 팬클럽 활동과 유사하다. 그러나 광팬이고 공물 많이 바친다 해서 꼭 스타를 만날수 있는건 아니다.


그 순간의 위안을 즐기는것 무료한 시간을 때우는 엔터테인먼트 취미를 수십년 반복해도 실체에 접근할수 있을리가 없다. 애초 문이 어딘지 모른채 벽만 두들긴다고 해서 벽이 열리진 않는다.



그것이 에고가 태생적으로 지닌 의식의 틀이고 매트릭스 라고 하는것이다. 실체가 아닌 껍데기가 취미생활을 즐기는 행위로 진리를 얻을수가 없으며 지식을 얻어낸들 육체와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쓸데가 없으니 허망할 따름이다. 단순한 이론적 지식은 에고가 가지고 노는 말장난 놀이고 아무리 흉내를 내도 아마추어 인것이다.


프로의 실전 스킬은 다른 문제다. 영화 좋아하고 많이 봤다해서 영화감독 할수 있는건 아니다. (일반인이 미국 프로 레슬링 보는거 좋아한다고 해서 실제 링에 오르면 뼈도 못 추린다.)


스스로를 안다고 하는것은 자신이 가진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정확히 안다는 것이다. 무엇을 찾아야할지 알아야만 길을 정할수 있다.


지천명을 논하는 자들이 과연 지천명을 따르고 이해하는가? 불혹의 강을 지나 도와 진리를 따라 순리를 행하고 있는가?  영생을 말하는 자들이 추구하는 길로 가장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신천지나 통일교 JMS 등 각 수백 종파 교주들과 따르는 신도들 보면 알수있을 것이다. 진리도 찾아야겠고  존경도 받고싶고 돈도 벌어야 겠고 도인 코스프레라도 해야 먹히니 제각각 말잔치만 벌어진다.


쏟아져 나오는 사회문제 범죄들 사건사고 속에서 그들의 어디에 영생이 있고 구원이 있는가? 교주가 늙고 죽으면서 실체가 드러나고 거짓이 다 밝혀짐에도 끝까지 안 무너지는 이유는 돈으로 쌓아올린 껍데기 재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돈탑에 눈독 들이는 탐욕들만 남았는데 이제 그것도 종장 다 와간다. 본전생각에 미련갖는 자들만이 난파선 붙잡고 운명을 함께 한다.



“말세니깐요. ”


모든 어긋난 현상들에 대한 총괄적 답이된다.


모든 혼란이 무지와 가난의 잣대로 보면 ’다들 먹고 살만하니 하는 지랄들‘ 이고 정치적 프래임 짜서 세상을 바라보는 갇힌자들의 논리도 그처럼 단순하다. 쓰는 단어들을 따라 기운이 얽히고 얽혀 세력들을 형성한다. 전쟁도 났겠다. 뭉태기로 쓸려다니기 딱 좋다.



지천명을 따르기 원한다면 그 전에 불혹이란 키를 얻어야만 미혹에 휘둘리지 않음이라.. 그것이 꼭 나이를 따라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예수를 비롯해 역사속 기록된 의인 열사들 활동 연령대를 보라. 피끓는 청년세대들이다.


60갑자를 한 사이클이라 보고 다 돌고 갑부터 다시 돌아야 한다는 의미가 환갑이다. 코스는 다 돌아도 불혹과 지천명을 모른채 60대 환갑을 맞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고집으로 무장한 아집들을 불혹으로 믿을뿐이라 지천명에 닿을수가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것이 꼭 현명해짐을 의미하지 않는다.. 철 모르는 철부지 들이 나에게 손가락질하고 때지어 반대한다 해서 그들의 무지를 따를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지한 자들이 민주주의랍시고 투표로 만드는 나라꼴을 보라. 같은짓들 루핑처럼 뺑뺑이 돈다. 나쁜(연)놈인거 알지만 끌리고 사랑 한다는데 어쩌겠나 다.


불혹을 얻지 못한자들은 항상 사람들 많이 몰리는쪽이 맞을거라고 판단을 의지해 따라간다. 그러나 지구촌 인구 모두가 때지어 머리를 쥐어짜도 아인쉬타인 한명의 지식을 넘을수는 없다. 스티브 잡스 한 사람의 생각에 전 인류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었듯이 한놈이 간길이 진정 ‘지천명’ 뜻에 맞다면 모두가 그 길을 따라가게 되리라..  영화 ‘혹성탈출’ 프리퀄 3부작이 그런 얘기다. 껍데기들의 말잔치 시간이 지나면 실체가 곧 드러난다.


https://youtu.be/bJ3p2VrFEvY?si=621tzT4ABi9Xvz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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