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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Apr 17. 2017

최후 종착지의 마지막 카드..

지구위에서 나에게 남은 시간은 ...


작년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병원 시스템에서 나에게 제시하는 유일한 선택지라는 것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선택하고 싶어도 선택할수가 없다.


종양의 크기는 내가 생각한대로 작년보다는 약간 줄어들었다. 14cm에서 10cm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의사는 단칼에 크기가 중요한게 아니라고 한다. 주변 장기에 침범한 정도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데 일리있는 말이다.


메인 종양 크기는 줄었지만 다른 장기들에 침범 정도는 더 퍼진듯 하다. 한마디로 크기는 줄었지만 주변으로는 더 퍼져버린 셈이다. 손에 잡히는 크기만 신경썼지 퍼지는거에 대해선 미처 생각을 못했다.


그나마 작년엔 이리저리 딴데가라는 의사들과 항암으로 6개월 정도 버티다 죽는것 이란 카드였지만 최후 종착역에서 막바지에 만나게 된 젊은 미모의 여의사는 마지막 막다른길에 몰린 내 상황을 파악하고 최후의 카드를 제시한다. 비겁하게 수술 못한다고 다른데 떠넘기기만 하는 남자의사들 보단 낫다.


아직 경험이 더 필요한 젊은 의사만이 도전할수있는 당찬 제안이다.그 얌전한 얼굴에서 내가 여지껏 들어본 중에 가장 끔찍한 고어 적인 내용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겁도없이 당장 장기를 전부 잘라내는길만이 내가 기대볼수 있는 유일한 조금이나마 더 살수있는 확율이라고 한다.


비장은 부분 절제가 아닌 그냥 잘라내 버리자는거 같고 췌장은 절반정도 위도 절반정도 대장은 40cm 정도를 자기가 직접 잘라낼거라고 한다. 대장을 비롯, 비장, 췌장, 위, 아예 종양부근의 뱃속 장기들을 다 비워내자란 말인데 그러고나서도 최소 6개월은 항암치료 해야하고 계속 재발될 각오는 해야 한단다. 하란 말인지 말란 말인지.. 죽기전에 장기들은 다 잘라줄테니 재주껏 살아보라는 말로 강요는 하지 않은채 당장 입원하고 나보고 결정하란다.


"얼마 안 남으셨어요"


수술을 해도 고통속에 죽을 확율은 많지만 어차피 가만있어도 몇달안에 엄청난 고통속에 죽게 될테니 이왕이면 단 몇프로라도 살수있는 확율로 고통받는게 낫지 않냐란 말이다. 수술을 안할경우 겪게되는 막바지 고통과 치료는 말만 들어도 끔찍하다.


의사 말로는 더 끔찍한 최후를 맞게될거란다. 장을 뱃속에서 끄집어내 배로 변을 받아내다 죽어야 한다는거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끔찍한 말이다. 장을 끄집어낸 모형까지 갖다논거로 보아 나같이 최후에 몰린 말기암 환자 전문의가 확실한듯..



핑퐁의 마지막 주자라 젊은 여의사일거라는 내 예상대로 겉보기 삼십초반대 (?) 나이로 보아 몇명의 배를 갈라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차고 패기있는것만은 인정할수밖에 없다. 험난한 대장암 파트에서 남자 의사들 사이에서 당당히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거보면 보통내기가 아닌 의사가 확실하다. 앞으로 험난한 남자 의사들과 환자들 사회에서 부디 선입견을 넘어서 여의사로서 한끗발 날리게되길... 남여를 떠나 의사와 환자라지만 나부터 항문을 드러내고 내시경을 들이밀고 때론 손가락으로 쑤시기도 해야하는 대장암 파트에서 젊은 여의사에게 그런 수치감을 느끼고 싶진 않다. 아마 며칠전처럼 손가락으로 후벼볼테니 항문을 까보라고 젊은 여의사가 주문했다면 거부했을 확율이 크다.


여자로서 젊은 나이에 당차게 대장암을 선택했지만 얼마나 큰 일반 편견과 싸워야 할지가 보인다. 어쨋건 갈곳없는 막바지 환자를 유일하게 받아주는 최후의 의사이므로 나에게 선택권은 없다.


뱃속 장기를 다 도려내고도 사람이 살수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각 장기마다 전문의사가 달라붙어 네명의 의사가 참가해 차례대로 장기들을 도려내는 대수술이 된다고 하는데 내가 아직 젊으니 시도해볼만 하지 않냐고 한다. 나이가 조금만 더 있었어도 권하지 않았을거라는데.. 한마디로 나보고 장기를 다 도려내도 환자분은 젊으니 조금 더 살수도 있겠죠 ? 라고 물어보는거 같다. 장기를 다 도려내고 텅빈 뱃속은 뭐로 채우리? 그말이 속에서 터져 나오는걸 참는다.


다른 베테랑 의사들은 전부 안하겠다는 수술을 해보자는게 어차피 조만간 죽을 사람이니 마치 경험이 별로없는 젊은 의사들의 실습용 재료가 될것 같은 느낌도 든다. "어차피 죽을몸이니 죽기전에 장기들 전부 잘라나 봅시다." 가 의사가 한 말의 실제 의미이다.


장기들을 다 잘라 영구 회복불능의 반 식물인간 만들어놓고 병을 치료해 낫게 한다는게 말이 안된다는걸 의사 본인도 알고 환자인 나도 안다. "그냥 죽으세요" 란 말을 차마 의사가 못할뿐이다.


작년에 찍은 나의 내시경 사진이 내가 태어나서 본 가장 끔찍한 사진인데 오늘은 그 사진을 앞에두고 태어나서 가장 끔찍한 이야기들을 들어 충격에 어질어질 그냥 병원을 빨리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만이 간절해진다.


몇달안에 의사가 말한 그런 끔찍한 결말이 온다라는 말을 들으니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한방에 깔끔하게 먹고 죽을수 있는 독약이라도 소지하고 다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의사입장에선 이리저리 쫒겨 다니는 의료난민 상황에 처한 나에겐 자신이 마지막 희망이고 내가 조금이나마 더 살수있는 희박하지만 유일한 확율이라는 생각에서 한말일테니 고맙게 받아들여야 할것같은데.. 내 생각엔 차라리 수술은 못한다 그냥 죽어라 라는 말이 더 깔끔하고 나았을거 같은 생각이다.



비도 주루룩 쏟아지고 사형선고를 다시한번 받은 기분에 에라 먹고죽자.. 암환자들은 절대 피해야할 숯불구이, 그나마 고기는 아닌 풍천 민물장어를 배터지게 먹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먹고싶은거나 먹다 죽자? 뭐 이런 배짱...


한시가 급하니 어떡할지 결정돼면 자신이 외래보는날 예약잡고 방문하라는데 나에겐 죽을 준비 돼면 오라는말 처럼 들린다..그렇게 강하게 권하지 않는걸로 보아 수술하겠다는 의사 자신도 내가 살아날수 있을지는 장담 못하는것이 확실하다. 어차피 고통속에서 죽어갈 환자이니 자신이 도움줄수 있는건 이런 모험뿐이다.. 라는 생각인듯 하다. 젊은 의사니까 그런 생각이라도 할수있다.



모든건 작년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럴때 보통 인간은 두가지 갈림길에서 선택을 하게된다. 한가지 길은 의사가 제시한 길을 따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길을 조금이나마 더 살수있다는 실날같은 희망에 기대 따르는것이고 다른길은 죽더라도 깔끔하게 아예 무시해 버리는거다.  작년에 내가 선택한 길이 깔끔하게 무시하고 시골로 내려간것이고 지금도 상황은 변한게 없다.


나는 의료계에서 제시한 최후의 카드를 집어들 맘이 없고 그렇게해서 살아날 자신도 없다. 뱃속의 장기를 다 잘라내고 숨만쉬는 장애인으로 남에게 기대며 조금 더 비참하게 살아봤자 인간으로서의 존엄감만 훼손될뿐이다. 그런 마음으로는 절대 의사가 제시한 수술과 항암 재수술을 버티며 살아날수 없다. 스스로 이렇게 사느니 죽음을 더 원할게 확실하다. 가족력으로 그런 죽음들을 이미 몇번 지켜본지라 내가 그길을 똑같이 따라 갈수는 없다. 의사도 최후의 카드는 제시했지만 내가 원하는대로 진행할뿐 강요는 하지 않는다.


이미 작년에 한번 같은 상황을 지나왔기에..설령, 의사가 말한 죽음의 상황이 몇달안에 닥친다해도 전혀 겁나지 않다. 내가 안따를것이기 때문에...작년부터 기존 의료계에서 내놓는 카드는 모조리 조만간 내가 죽는다란 말들뿐이라 도저히 따르고 싶어도 따를수가 없는데 어쩌라고.. 의사들의 말을 무시하는길 외에는 내가 살아날길이 안보이기에 나는 의료체계에서 마지막으로 제시한 카드를 집어들수가 없다.


워낙 끔찍한 말들을 들어 쇼크는 오늘 잠시 있겠지만 잊자.. 무시하자.. 일년전에도 똑같은 말 들었고 내년에도 죽는다라고 또 들으면 그냥 똑같은말 지겹다고 생각해 버리자..내가 살기위해선 의사들의 말이 틀렸다는것을 내가 증명해야만 한다. 의사들의 말이 틀려서 내가 사는게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선 의사들말을 틀리게 만들어야 하는것이다. 나를 살릴수 있는것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라는것을 잊지말자...종양 크기가 조금 줄어들었다는것에 위안을 삼자. 작년에도 곧 죽는다 했는데 어쨋든 나는 아직 살아있으니까..앞으로도 계속 누군가 도움없이 스스로 움직이고 활동하면서 즐겁게 살아갈수 있을것이다.


곧 죽는다고 얘길 들으니 더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나는 원래 청개구리 체질이라...내가 조만간 곧 죽을거라는 의사의 말이 전혀 실감이 나질 않는다..정말 그렇게 될까?...지켜보면 알게 되겠다. 비가 멈추는듯.. 에잉..못들을 말을 들은듯 맘이 심란한게 책이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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