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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Apr 06. 2024

고양이는 환경에 따라 성향이 변한다.


보통 인간을 환경의 동물 이라 말하는데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인간과 똑같이 환경에 의해 성향이 지배 받는다.


이전에 집안에서만 얌전히 8년지낸 녀석이 내 공간에들어와 동거한지 두달만에 성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집안에서 혼자 잠만자며 생활하던 얌전이가 마당에서 뛰노니 성격이 활동적 외향적으로 바뀌고 (전주인이 보기엔) 완전히 다른 고양이가 됐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자포식으로 얌전했던것이 자리 깔아주니 감춰진 원래모습이 살아난 것이다. 다시 집안에 가두면 원래의 우울증 얌전모드로 바뀐다.


그런데 야생 본능을 맛본 고양이와 애초 거세당해 그것이 무엇인지 경험해보지 못한 고양이는 같은 상황에서도 행복감에서 차이를 보인다. 제재를 당한후에 먹이에도 관심없고 장난에도 관심이 없이 집안에서 잠만 자는건 성격이 얌전해서가 아니라 놀기를 포기해서 우울하다는 신호다. 풀이 죽었다고 표현한다.


* 환경 변화나 이유없이 잘놀다 그러면 병에 걸렸거나 노쇠현상인데 고양이 병원비는 보험이 안되 사람보다 많이 나온다. 진찰한번 40만원에 고양이가 아파서 병원비 천만원 들었다는 옛여친의 소식도 며칠전 친구통해 들었다. 그런 상황은 나로선 감당불가다.


길양이들은 먹이와 안락에 관심이 있지만 반대로 안락한 집냥이는 혼자서는 아무리 안락하고 편안하고 일광욕을 즐겨도 충분치가 않다. 다른 동종을 본순간 관심이 그쪽으로 이동한다.


”당분간 마당에 나가는것 금지야!“


자유를 주마 그냥 멋대로 하라고 풀어주는것이 녀석을 위한것은 아니다. 가출한 청소년에게 부모가 속상해 하고 체벌을 하는 심정. 이전 방식이 더이상 해당사항이 아닌지라 전주인의 조언이 통하지 않는다. 이전처럼 단순히 집안에서 먹이고 재우고 하던것으로는 녀석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전 주인은 현재 녀석의 오매불망 상태와 자세한 현장상황을 모르니 무시하고 집밖에 내보내지 말라는 조언을 한다.) 나가고 싶은걸 가두는건 강금인데 현재 녀석이 열병을 포기 한다해서 행복할리가 없다.


이미 녀석은 햇살과 야외 생활의 본능적 자유로움 맛을 알아버려 못하게 하면 먹는것 자는것 싸는것 모든것에 관심없고 우울해 한다. 아무리 애정을 쏟아부어도 순응은 하되 행복해 하진 않는다. 자유를 경험하고 나면 예전으로 돌아가진 못하는 것이다. 한국영화 하녀의 명대사가 있다. ‘줬다 뺏으면 안되는거 잖아요’ 그런거다.



집냥이를 집밖에 내보내 다른 고양이들과 만나게 하는것이 인간 부모 관점에선 공부 잘하던 범생이가 불량아들과 어울리고 물들어 길거리를 배회한다고 볼수도 있다. 청소년기 행동이 아이의 장래와 연관되기에 인간사회 규격에선 분명한 잘못된 길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대학을 가야 하는것도 아니고 취직을 할것도 아니다. 현재의 고생을 참아가며 저축을 할 이유가 없고 오늘을 희생하는것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현재 어떤것이 더 행복하고 안락한가 하는것이 고양이들에겐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녀석은 이미 고양이로서는 중장년을 넘어 이제 서서히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다.) 고상한 냥이의 생활이 진정고양이를 위한것인지 인간의 자기만족을 위한것 인지를 따져본다.


길양이들 성향으로 물들지 않도록 야외에 내놓아선 안된다는 판단은 인간의 관점이고 고양이의 선택은 다르다. 마당에 내어 놓느냐 집안에 가두느냐 규율로 통제할때 사람과 고양이 그 룰이 둘중 누구를 위한것인가 하는것이 핵심이다.


문명국 사람이 길양이들처럼 집안에서 흙묻히며 살수는 없는법이다. 녀석이 인간의 집안에서 안락함을 누리려면 포기해야만 하는것도 있는것이고 인간도 마찬가지다. 한쪽의 만족을 위해 한쪽이 불만을 감당해야 하거나 둘다 불만인 상황이 되거나 보다는 양쪽다 만족하는 상황을 찾아내야 생활에 무리가 없다. 동거란게 그런것 아닌가.


고양이들은 환경의 변화를 좋아하지 않고 보수적이다. 한번 고착화된 상황에 변화를 주려면 자연스럽게 조금씩 상황을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집단에선 리더의 역활이다. 고양이들 세계에선 자율적으로 그것이 안되므로 인간의 개입이 있어야만 고착화된 엉킨 상황에 대해 해결이 난다.


이기적인 한마리가 덩치까지 크고 성격도 포악해 공동의 먹이 그릇을 차지해 버리면 인간이 아무리 많은 사료를 어린 길양이들에게 내주어도 힘없는 어린 냥이들은 사료를 먹지 못한다. 외부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 (주로 집냥이에서 길양이로 버려진 덩치큰 녀석들이 그러하다.) 인간 사회도 자본주의가 행하는 횡포가 그러해서 조율하는것이 곧 정치다.


다른 길양이들이 녀석을 피해 달아나자 녀석이 바깥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금단의 선 앞에서 밍부석처럼 지키고 앉아 기다리다 슬금슬금 선을 넘어간다.


지금 마당을 둘러싼 길양이들과 녀석의 뒤엉킴도 그러하다. 길양이들은 사료때문에 오고싶어도 녀석 때문에 오지를 못하고 녀석은 친해지고 싶어도 안되니 길양이들 따라 바깥으로 나가는 비행(?)을 저지르고 싶어한다. 사료도 충분하고 마당안에서 같이 햇살쬐고 놀면 좋은데 자기들끼리는 상황 해결이 안된다.


고양이의 행복에 있어 최소 조건은 세가지다. 먹이 주거 그리고 애정 누리고 같이 놀수있는 동료다.


단순한데 녀석에겐 마지막 동료 만들어 주기가 남은것이다. 녀석과의 동거도 생각지도 않다가 갑자기 지인 사정에 의해 이뤄진것이라 준비할 시간도 없이 그냥 닥쳤다. 나로선 뭔가 운명이 무작정 들이민거라 보는데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지는 뻔하다. 무척 다양하다.


둘다 아직 바뀐 공간과 생활에 적응중이라 현재로선 답을 못내릴거 같고 이대로 계속 고착화 되기엔 서로 불만족 스럽고 행복하지 않다. 물론 녀석이 우울해 하거나 말거나 조용히 지내니 무시하고 먹이나 주면서 신경끄고 지내도 되지만 그건 인간의 편의를 위한 일방적 폭력이나 다름없다.


동물도 사람처럼 감정이 있는 생물체다. 불만에 항의를 못하는만큼 생탈권을 가진 강자로서 인간이 배려해줘야 한다. 잘못된게 아니면 해주고 싶은것이 부모맘이다. 녀석을 당장 마당에 못 나가게 막는건 녀석의 기본 본능에서 아직 못채운 부분이 녀석을 위험하게 만들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녀석을 지켜주려 하는것이고 눈치백단 녀석도 그것을 이해하고 자기가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안다.


목욕깉은 큰일(?)을 당한 고양이 에게는 안심을 주는 말과 행동으로 달래줘야 큰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는다. 소파에서 잠드는걸 좋아하는 녀석때문에 밤에 TV볼때 불을 켜지 않는다.


흙바닥 뒹군 댓가로 이틀연속 목욕을 당한 녀석이 심오한 자가성찰에 빠져 눈치를 본다. 문을 열어도 나가길 겁내고 연어 사료도 관심없고 변도 딱딱한 돌덩이 변비성 변을 본다. 처음 왔을때 잠복닌자처럼 숨어 있던때와 동일하다. 다시 어두운 박스안에 수도승 모드로 돌아가 없는듯 하다.


숨소리도 안낼만큼 얌전해서 신경 안쓰게 안보이는건데 빗질하고 애정을 표시해주고 목욕으로 당한 충격을 위로해주면 그르릉 골골송은 해도 인형처럼 맥아리가 없다. 다시 활기차게 만들려면 동종의 친구가 답인지라 일단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번 여름이 어찌될지에 따라 답이 나올텐데 한여름엔 야외 마당 텐트가 녀석에겐 집안보다 좋을수 있다. 여름엔 그것이 가능하다. 사람도 그러해서 나 역시 여름엔 낮엔 일광욕하고 밤엔 밤바람 쐬느라 집안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텐트까지 쳐놓고 캠핑분위기 낸다. 녀석도 그러하면 문제가 해결 될수도 있다. 마당만 안 벗어나면 궂이 목욕시키지 않아도 된다. 자기가 핣아 먹는것보다 나아서 물티슈 정도는 녀석도 좋아한다. 길양이들과도 무탈히 어울리는 계기가 될수도 있을지도 모르고 호기심이 충족되거나 안정된 동료가 생기면 드디어 깨달음을 얻고 이탈을 멈출수도 있다.


길양이들 휴게소를 둘러보는 녀석 이런데서도 고양이가 산단 말이지? 그런 생각 하는거 아닐까..


집안을 좋아할지 마당 휴게소를 더 좋아할지는 녀석의 선택이다. (물론 녀석이 실내보다 마당거주를 고집하면 다른 고양이들 체취는 없애줘야 한다.) 텐트에는 항상 관심을 보이는데 다른 고양이 냄새가 영 맘에 들지않는듯 하다. 내것이 아님을 아쉬워 하는것 같기도 하다. 녀석이 마당을 더 좋아해도 마당에서 키우는건 전 주인도 동의해야 인간 관계에서도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8년키운 모정이 안보인다 해서 어디 그리 쉽게 사라지겠는가.


마당에 내보내 주시와용 수도승 시위가 안먹히니 다음은 애원모드다. 눈치보며 살살 다가와 깨물고 눈을 맞춘후 조른다. 아무리 졸라도 나는 본능의 선택을 못 믿는단당


녀석에겐 수많은 가능성과 갈래길이 있으므로 함께 잠시 고민해 보자꾸나. 너가 우울하면 너에게 친구 동료를 만들어 주는것이 나의 책무인듯 느껴진다. 반려동물을 키우려 하시는분들은 꼭 새끼때만 보지말고 성묘가 돼서 혼자일때 생기는 우울증 문제들을 고려해봐야 한다. 중성화 시키는것만으론 답이라 할수없다. 두마리 이상 키우는것을 권장할수 밖에 없다. 역시 도심지에선 만만치 않은 주거 공간확보가 우선이다.


https://youtu.be/5gBFrDXVLYQ?si=XIFATkk9mHY3ZtSI


살아있는 동물들 감정에 배려가 없다면 인형을 사서 집안장식으로 쓰는게 나을수 있다. 배터리 가는것 귀찮으면 충전식으로 움직이는 장난감도 많다. 사료 내주고 잠자리 제공만으로도 생존은 허락되지만 나머지한가지가 채워지지 않으면 고양이의 행복은 지속되지 않는다. 행복을 찾으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사람도 고양이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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