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본능적으로 영역권을 최우선시 하는 동물이다.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자신만의 밀폐된 공간에 숨는것을 즐긴다. 외부에 대한 호기심은 항상 가지고 있으나 겁이 많아 기본적으로 식량과 안식처가 확보되면 안전범위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외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면 조금씩 자신이 활동해도 무방한 안전지대를 넓혀가려 하는데 시골에서 야외에 내놓고 자율에 맡기다가는 결국 본능을 쫒아 길양이 따라 다니게 된다. 이성친구가 없을 경우는 100% 가깝다고 본다. 중성화 해도 마찬가지다.
모범수라 해서 교도소 안을 벗어나지 말라는 규칙을 자율에만 맏길때 나가면 안된다는걸 알아도 담장이 없으면 매일 매순간 나가고 싶은 욕망에 갈등하게 된다.차라리 닫힌벽과 문을 보는것이 생활에 훨씬 안정감을 준다.
녀석이 바라는 욕망과 자유는 녀석을 위험에 빠뜨리고 거지꼴로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함을 의미한다. 안전한 에덴 동산 마당을 벗어나 가출했다 돌아오려면 목욕 고문을 당해야 한다는것을 안다. 가까스로 참아내지만 오매불망 하루종일 관심이 온통 바깥세상에 꽃혀있다. 기다리던 암컷 길양이 보이면 욕망이 폭발해 바로 쫒아나간다. 그리고 머드팩을 하고 돌아오면 목욕 난리를 쳐야하는 상황 반복 반복..
당근에 조언을 올려 여러 조언들을 듣고 결국 울타리를 세워야 한다는 결론이 난다. 울타리 안에서 같이 놀아줄 친구를 구해주는것은 그 다음이다. 사람이 계속 놀아줄수는 없을테니..
새끼때부터 아파트 집안에서만 자란 녀석에게 마당을 개방하고 햇살을 쬐게 해주면 만족하고 행복할거란 나의 생각은 짧았다.. 그 만족은 며칠 가지 않는다.
마당에 나와 다른 길양이들을 보는순간 녀석의 관심은 이제 햇살이 아니라 동종의 친구 이성이다. 어릴때 하게되는 자연스런 사춘기적 행동들을 다 자란 성묘가 되서야 비로서 알게되고 행동도 회춘을 하는거다. 연어 통조림도 관심없고 새벽부터 틈만나면 오로지 마당에 나가게 문열라는 조름만 하루종일 이다. 밤에 못나가게 하면 삐짐에 빠진다.
알리 태무에 적당한 용품들이 보여 일단 주문해 놓고 임시로 갈대 벽을 울타리로 세워보고 녀석의 반응을 살핀다. 갈대 울타리가 보기는 좋은데 시골 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사람이 다니기 불편해 임시 방편일 뿐이다.
’ 줬다 뺏으면 안되는거 잖아요‘ 하녀의 표정이다. 미안하구나. 그러나 확실히 실망감과 함께 안정감도 생기는듯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녀석은 벤자민 처럼 어릴때부터 8년간 방안에서 얌전히 사료먹고 잠만자다 말년쯤 와서 사춘기를 겪는다. 무생물처럼 어딘가에 숨어 며칠 꼼짝않는 잠복닌자 기술을 가진 녀석이 노년 앞두고 점점 활동적이 되간다. 겁이 많아 방구석에 숨어 20시간 잠만자고 얌전했던 것이 기회가 없어서 였을뿐 녀석의 본래 성격은 아니란것이다. 다른 길양이와 싸워보기도 하고 암컷도 쫒아가 가출해 보고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녀석의 감춰진 야생 본능들이 뒤늦게 살아난다.
햇살아래서 낮잠자며 안정된 중노년을 맞이할것이란 예상과는 딴판으로 새벽 5시면 방문앞에서 마당 나가게 해달라고 아이처럼 조른다. 새끼때부터 한번도 보지 못했던 녀석의 행동과 용맹함(?)에 ‘우리 애 살아있네 회춘했네’ 전 주인의 말이다. 지금의 녀석을 전혀 예상치 못했을것이고 나 또한 사전정보와 처음 나에게 왔을때와는 전혀 다른 고양이를 보고 있다.
그래 부디 회춘해서 오래 살거라. 형아가 너 여름에 친구하나 만들어 줄께.. 내건 아니지만 누구나 쓸수있으니 행복한 여름날 햇살 듬뿍 만끽하게 해주마. 해줄수 있는건 해주고 무리한건 못해주는거다. 너가 나에게 온것도 인연이 있어서 일테니 너에게도 인연이 있다면 자연스레 친구가 생길것이다.
벽을 막으니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갈대벽을 두고 이쁜이 냥이와 녀석이 양쪽으로 갈라져 서로 눈치를 본다. 그리고 녀석이 위험하게도 난간위에 올라가서 월담을 시도한다. 전주인과 의논한 결과 떨어져서 다치는것 보다는 당장은 개방 하는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낸다. 콘크리트 담장에 울타리를 치는것은 기둥을 세워야 하므로 대공사다. 당장은 무리다.
쫒아가 보렴 문을 여니 녀석 쫒다가 금세 놏친다. 가만보니 야생 길양이들에 비하면 여전히 둔탱이다. 이쁜이는 차밑에 숨다 반대쪽으로 슬쩍 빠져 나갔는데 여전히 차밑만 보다 어? 어디갔어? 두리번 대다 터덜터덜 점잖게 돌아온다. 마술쑈가 그런거란다.
녀석은 자율에 맏겨도 동종 친구 사귀는 법을 모른다. 영역 지키고 싸우자고 문앞에서 길양이들 오매불망 기다리다 쫒아 나가는건 아닐테고 같이 놀자고 하는건데 방법이 직진뿐이라.. 찾아오는 길양이들을 쫒아내고 쫒을뿐이다. (촌놈이 나이트 가서 까이는 꼴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고양이처럼 행동하며 놀아줄수도 없으니.. 옛 어른들이 그래서 중매란걸 해주던거다.
벽을 세워야 할지 담벼락을 높여야 할지.. 당분간 녀석의 행동을 더 지켜보고 또 고민해 봐야겠다. 결국 문제는 친구 같은데 말이다. ‘한마리나 두 마리나 키우는데 드는 노력은 마찬가지다’ 라는 경험자들의 조언도 맞는말 같다. 새끼가 아닌 성묘의 경우는 한마리 뒤치닥 거리가 우울증 안 걸리게 하려면 더 신경 쓰이는 것도 같다. 유대인들 동화책보면 하나님이 지점토 놀이로 남자인 아담만 만들었다가 (아마도 자위하는걸 보고?) 갈비뼈를 추려내 이브를 또 만든다. 널 보니 알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