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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May 03. 2024

말 안듣는 너 때문에 내가 웃어


성묘들의 지능은 대략 4-5세 인간 어린아이 정도 되는것 같다. 인간과 같이 사는 집냥이들의 경우 사람말을 눈치로 기막히게 알아듣는다. 심도깊은 대화는 못 나눠도 소통은 4-5세 어린아이 대하듯 하면 된다.


새끼는 재롱과 귀여움으로 사랑받지만 성묘는 다르다. 처음 왔을때 나이도 지긋한데다 (잠복닌자로)하도 내성적이고 점잖아서 도통했는지 알았는데 지금보니 완전 애다. 말썽 부리는게 속이 다 보이니 자기는 심통 부리고 화내는게 진짜 웃겨서 웃는거다. 성묘는 훈련 시킨다고 야단 칠 필요가 없다. 삐뚤어지고 사람을 피하는 역효과를 낸다. 못하게 하면서도 양양 대는거 받아주고 달래주는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영역을 정해주고 못하게 하면 심통은 부려도 순응은 한다. (치사하고 더러우면 고양이 하지 말던가.)


한번 고양이가 사람과 소통의 문을 닫으면 정말 말 인듣고 미운짓만 하거나 고분고분해도 주눅들고 우울한 고양이 된다. 생존을 위해 사람들 눈치만 보는 길양이들 비굴한 습성이 그렇게 형성 되는거다. 고분고분 말잘듣는 고양이가 얼마나 비활기차고 맥아리가 없는지 아이는 아이 다운게 좋은거다. 착한 아이보다는 말썽부려도 구김살 없는 아이가 더 사랑 받는다.



녀석이 심통을 부리면 화장실 모래를 일부러 바깥에 흩뿌린다. ‘아이 화나 너 골탕좀 먹어랏!’ 이거다. 그만 놀고 집안에 들어갓! 저녁때 녀석의 눈이 초롱초롱 해지면 울타리가 오기전이라 집안에 들여놓게 되는데 안 들어가려는 녀석의 반항이 피노키오가 따로 없다. 나 또 제페토 할아버지 하는거냐.


길거리 암컷한테 들이댔다가 까이고 나면 나한테 화풀이 하고 지금은 길냥이들 안 오는거를 나한테 양양댄다. ‘왜 애들 안오냐옹? ’  다들 잡혀간것 같다는 심도깊은 대화는 안되니 머리나 쓰다듬으며 상심한 녀석을 위로해준다.



어린 아이에게 너가 싼 기저귀 정도는 혼자 갈라고 훈련 시킨다고 해서 아이가 네 어머님 안그런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녀석은 내가 빗자루질 하는거 보면 자기때문인줄 알아서 열심히 눈치보고 발닦고 한다.


청소기라도 돌려주고 싶어도 몸뚱아리가 그래서 어찌할 도리가 없겠지. 잡히지가 않아. 내 말인즉, 안되는걸 기대하지 말란 말이다. 털 날리고 모래 뿌리고 밉다고 괜히 꼬랑지 자르고 털밀고 장애묘 만들려면 키우지 않는것이 낫다고 본다. 반려동물은 남에게 보이려고 장만하는 가구나 갖고노는 장난감이 아니다.


꼭 지저분한 바닥에 뒹굴고 신경써서 마련해준것들은 야속하게도 쌩까고.. 녀석이 말썽부리고 말 안듣고 도망다니고 해도 난 녀석이 눈치보고 피하는것 보다는 양양 불평 말하고 아이처럼 투정 부리는것이 좋다.


밤에 마당을 못 나가게 하면 녀석은 심통을 부리고 삐졌다는  것을 알리려 시위를 한다.


서로 눈치 안봐야만 둘다 편한게 동거의 법칙이다. 힘의 관계에선 강자의 배려만이 약자와 소통의 문을 연다. 강압에 의해 주눅든게 철든것이 아니란것, 인간이 강자로서 약자인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 배려할때 동물도 마음을 연다. 녀석도 내가 배려해줌을 알기에 자기 주장을 요구한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 그래서 고양이를 요물 또는 영물이라 하는것이다.


보호 하려면 자유의 범위를 정해주고 울타리 안에서 자율을 부여해야 한다. 인간과 같이 살려면 그만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집냥이들은 인간과 같이 살기위한 그런 규칙을 안다.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한다. 저녁땐 (가출 못하게) 마당에 묶여서 있는것 보다 순응하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야행성 동물이지만 집냥이들은 길양이들과 달리 인간 규칙을 따라서 낮에 놀고 밤엔 잔다.


흙바닥에서 뒹굴고는 싶지민 목욕은 정말 싫다옹 내 참아보노라..
녀석은 흙장난이냐 안락한 실내냐 공존이 불가능한 갈림길에서 선택을 한다


 약육강식의 룰에대해 동물들은 선택의 권한이 없다. 오직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 각자의 선택이다. 약육강식의 룰을 따르라 함은 곧 인간도 동물이다 주장함이다. 말 잘듣고 착한 동물이 과연 인간을 좋아해 그러는것인지 어쩔수 없이 환경에 순응하는것인지. 인간이 잡아먹기 좋게 길들여 얌전히 말 잘듣는 닭 돼지지만인간과 정을 나누는 반려동물은 되기 힘들다. 애초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며 죽고 죽여야 하는 약육강식의 관계에서 소통해봤자 고기맛 좋게 하는것 이외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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