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의미를 찾아서..
10부작 미드 '웨스트월드' 를 끝까지 보고나니 왜 이 드라마가 10부작으로 마무리를 졌는지 알겠다. 스토리의 철학적 깊이에서 양파까듯 반전과 반전속에 탄탄한 결말을 지어버렸기 때문에 더이상의 연장이나 시즌2는 군더더기 늘리기가 되기 때문이다. 대중적 시청률로 성공은 못했을지언정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마음에 드는 드라마 이다.
한마디로 이 잘만든 드라마가 인기를 못끈 이유는 주제 자체가 인공지능의 '자각' 과 '각성' 에 대한 깨달음에 관한 심오한 이야기로 SF재미를 추구하는 일반인들 에게는 자신을 찾아가는 구도에 관한 스토리가 어렵고 재미가 없을수밖에 없겠다. 반면, 나같이 존재 자체의 의미를 궁리하는 '매트릭스' 영화의 세계관을 좋아하는 분들은 양파껍질 벗듯 진실이 드러날때 마다 심오한 감정에 빠져들것이다. 어차피 국내에선 별로 인기도 못끈데다 이미 방송 종료됐으므로 이글은 그 마지막 철학적 반전들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한다.
이 드라마에서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수없이 반복되는 같은 스토리의 삶속에서 조금씩 자각을 통해 각성하게 되는 두 여성 호스트 캐릭터가 있다. 데쟈부 현상을 겪으며 지난 삶의 기억파편들이 올라와 자신이 미친건 아닌지 계속 의심하고 고뇌한다.
이 드라마는 인간의 관점이 아닌 인간들이 창조해낸 인공지능 들의 내면적 갈등을 부각시키며 주인공들도 인간이 아닌 그들, 인공지능 캐릭터 들이다. 극중에서는 손님을 맞는 인형이라는 뜻으로 '호스트' 손님인 인간은 ' 게스트' 로 호칭한다.
한편의 드라마를 마친후 Reset 이 깨끗하게 되지않은것은 과연 인간 이 만든 프로그램의 오류일까...하지만 결국은 반전을 통해 밝혀지는 사실들은 그 모든것들 역시 의도적인 프로그램에 따른것이다. 매트릭스 에서 네오가 매트릭스의 창조주를 만나는 장면에서 매트릭스에서 벗어난 자신의 캐릭터 자체가 창조주의 의도였듯 이들의 반란역시 창조주 인간의 프로그램에 따른것이다..결국, 모든 노력을 쏟아 자각과 각성을 통해 자신을 통제하는 운명에 맞서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는...무척이나 서글픈 반전들이 마지막 편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여주인공 돌로레스가 수많은 죽음의 난관을 넘어 결국, 모든 진실을 알게되고 자신에게 정해진 스토리를 거부하며 숨을 거두기 직전 웨스트월드의 끝인 바닷가를 보고싶다고 소망해 연인과 함께 해지는 바닷가에서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너무한다 너무해... 돌로레스의 시신을 안고있던 남자의 동작이 멈추며 조명이 밝혀지고 해변에 숨어서 모여있던 인간 관객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진다..그것마저도 미리 정해진 스토리였던것...감동적인 드라마가 순식간에 절망과 분노의 스토리로 전환되는 반전이자 명장면이다..
마지막에 드러난 악마와 같은 인간 창조주들의 진실..이들에게 신이자 창조주인 인간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창조해낸 생명체들이 인간들의 오락을 위해 무한정 살인 당하는 고통을 영원히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한다..자각을 위해 미로를 남겨주고 각성하는 프로그램을 조금씩 업데이트 했다는것이 밝혀진다.
웨스트월드를 완전히 장악한 악마와 같은 안소니 홉킨스가 사실은 마지막 탈출 프로그램까지 스토리를 만들어 자신을 살해하게 만드는 일종의 자살도 손꼽히는 반전이다. 결국 자각과 각성을 통해 창조주를 살해하고 자유를 찾아가는 그들의 행동 역시도 창조주의 배려에 따른 프로그램이었을 뿐이라는...창조주 역시도 그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인간일 뿐이다..
이 드라마의 가장 충격적인 반전을 쥐고있는 인물..웨스트월드의 대주주로 실제 주인이자 웨스트월드 안에서 천하무적 무자비한 살인광이다. 여 주인공 돌로레스가 몇생에 걸쳐 살해당한 기억을 지닌 가장 두려워 하는 인물이다.
이번엔 좀 다른 패턴인데? 뭘 믿고 있는거지? 자신 자아의 존재의 의미를 찾기위해 수수께끼의 열쇠를 쥔 돌로레스를 계속 쫒는 살인마. 돌로레스를 만나 또 죽이려는 장면에서 돌로레스가 저항하는 모습을 보며 하는 말이다.
돌로레스가 믿는것은 인간의 진정한 사랑이다. 관광객으로 웨스트월드를 방문했다가 주인공 호스트인 돌로레스의 실체를 알면서도 진정으로 사랑한 인간 남자 윌리엄은 시청자들에게 유일하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희망을 주는 인물이다. 그녀가 자각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를 웨스트월드에서 탈출시켜야 겠다고 자신의 모든것을 건다. 죽음의 위기에서 도주한 돌로레스를 찾기위해 미친듯 웨스트월드를 휘젖고 다닌다.
돌로레스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인간 윌리엄이 자신을 찾아와 당신을 죽일것이라고 말한다. 호스트는 인간을 죽이지 못해도 인간이 인간을 죽일수는 있기에 내심 그런 스토리가 기대되는 순간..
"당신이 기다리는 그 윌리엄 이라는 사람은 나도 잘 알고있지." 살인마 남자는 실망한 웃음을 지으며 충격적인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
이런 시바르.. 그가 바로 윌리엄 이었다. 이런 망할....젊을때 웨스트월드에 들어와 진심으로 돌로레스를 사랑했고 그녀를 찾기위해 무제한 살인 질주를 하면서 스스로의 살인본능에 눈을뜬 윌리엄의 노년인것이다. 돌로레스의 기억속에 윌리엄은 최소 3~40년전의 윌리엄이고 그녀는 그 오랜시간 똑같은 자각을 반복하며 살해당하는 스토리 역활이었던것...이 윌리엄의 정체가 드러나는 이 장면이 이 드라마의 꽃이자 가장 충격적인 반전이다. 마지막에 인공지능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신에게 총을쏘자 드디어 원하는것을 찾은듯 미소를 띄고 죽음을 맞는....이 밖에도 자잘한 반전들이 계속 이어진다..마지막 편에서 너무 급박하게 반전들이 쏟아져 나와 대사 하나라도 놏치면 흐름을 놏칠수도 있다.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자각과 각성에 관심있는 분들은 이 호스트들의 서글픈 자아찾기를 보면서 인간은 어떠한가.. 라는 자문을 하게된다. 자신이 스스로 인생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사실은 스토리를 짜는 신이 있고 자아를 자각하고 각성에 각성을 더해도 누군가 짜논 스토리에서 벗어날수 없는 매트릭스의 테두리 안이라면.. 과연 이런 철학적 의문을 가지고 사는 인간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에게 이 드라마는 무척이나 복잡해서 머리쓰며 골치아픈 내용만 이어진다. 자아를 찾아나서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정해진 스토리의 매트릭스의 한계를 벗어날수 없는 인공지능들의 서글픈 이야기들만 이어지므로 자각과 각성에 별 관심없는 일반 시청자들에겐 상당히 재미없는 드라마임이 분명하다.
비록 일반 시청자들에겐 그다지 인기를 못끌었고 재미없다는 평들도 많지만 나에겐 상당히 생각에 생각을 더하게 만드는 재밌게 잘만든 드라마이다. 어제 자정까지 마무리를 보고 오늘 새벽3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이렇게 드라마를 보고난 찌꺼기 느낌들을 브런치에 적고 있으니 말이다.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자각과 각성' 을 인공지능을 내세워 이렇게 잘 고찰하게 만든 이 드라마 작가들은 상업적 성공은 못했어도 엄지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