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선 성묘끼리의 합사는 성공확률이 그다지 크지 않다. 알면서도 여름날 놀이동산 꾸며서 같이 즐겁게 놀다보면 어찌되지 않을까 자만했던거 같다. 고양이들 습성에 대해 이론만 알았지 실제론 경험이 없었던거다.
여름이 다 지났건만 즐거웠던 시간은 지나가고 이제 추운 겨울 준비를 해야한다. 좁은 실내에서 안 부짗치기란 사실상 불가능 한번 붙고난 이후 둘 사이에 찬 바람이 분다. 가끔 우다다다 놀이가 결국 끝에 가면 첼양의 하악질로 끝맺고 각자 자신이 정한 자리로..
첼양이 여름을 보내고 덩치가 조금 더 커져 맥시멈에 도달, 이제 탐군에게 체력적으로도 안 밀린다. 기세로 따지면 한 성깔 하는 첼양의 표독스러움에 순둥이 탐군이 기득권에서 밀리기 시작한다. 중간자적인 사람이 어느쪽 편을 드느냐에 따라 기득권 서열이 매겨지는 형국인지라 관리자인 사람이 조율을 잘 해야만 한다. 기세가 비슷할땐 일방적으로 한쪽편을 들어선 안된다.
지켜보니 적극적인 첼양이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탐군은 발아래 있다. 마당은 탐군이 자신의 영역으로 기득권을 이미 차지한지라 첼양은 시야에서 내가 보여야만 활동한다. (혼자서는 대부분 구석 하수도 근처에 찌그러져 있다.) 내가 집안으로 들어가면 졸졸 따라다닌다. 여름엔 그 뒤를 탐군이 따랐는데 한판 붙고난 후부턴 탐군은 첼양 눈치보며 혼자 놀기 시작한다. 나이에 따른 기세 + 기질적 성격에서 눌리는거다.
결국 탐군은 또다시 왕따다. 가출해 길양이들 쫒아 다니면서 까이기만 해서 첼양을 입양했건만 입에 떠 먹여줘도 못 사귄다. 왕따 이유는 간단하다. 관계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어서다. 욕심이 있거나 타묘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것은 아닌데 새끼때부터 십여년을 혼자 방안에서 커온 결과 아예 공동이란 개념 자체가 없어서 보이는 모든것이 당연히 자기것이라 여기는것이다. 상대가 왜 자신의 행동을 싫어하는지 이해불가다.
탐군은 보이는 모든것에 자기체취(페로몬)을 묻히는것을 당연하다 여긴다. 고양이들에겐 일종의 소유권 영역표시다. 이제 한창인 첼양이 다 늙어 화장실 까지 따라 다니는 울트라 주책꾼인 탐군을 싫어하는게 이해가 된다. 배려란 개념이 없으니 상대에게 싫은짓만 골라하게 되고 미움을 살수밖에 없다. (용품 두개 사면 결국 둘다 탐군 차지가 된다.)
자리를 안 내주면서 계속 들이대기만 하는것 보면 자기는 왜 모든 고양이들에게 계속 까이기만 하는지 이유를 모를것이다. 사람도 그런사람 많다. 다인이 모여있는 병실에서 이어폰 없이 유투브 (극우 정치채널) 방송보는 (노인 )사람 흔하게 있다. (같이 동조해 놀자고 하는짓이거나 어떤 경우라도 타인을 전혀 고려치 않는 마이웨이 스타일 이다.)
일반인들 평생 한번 가보기도 힘든 선상 레스토랑 혼자 전세내고 음식먹는 재벌2세 에게 기분이 어떻냐고 물으면
“글쎄 생각해 본적 없는데? 난 그냥 조용히 식사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
문제는 옆자리 다른 재벌2세도 마찬가지다. 집냥이들의 영역 다툼이 그래서 일어난다. 먹이나 잠자리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길냥이들은 생존을 위한 싸움이라 쳐도 집냥이들 영역다툼은 그냥 본성이다. (고양이과는 야생에서도 무리를 짓지 않는것이 개과와 다른점이다.)
첼양은 개냥이 과라 해도 될 정도로 무척이나 사교적인 성격이다. 호기심도 많고 탐군에게 호기심과 호감을 보인적도 많다. 사람 관점에서 보면 사귀기 정말 쉬운 타입이다. 그럼에도 결국 독불장군처럼 번번히 기회를 차내기만 하다 왕따 되는거 보면 가르친다고 고쳐질 문제는 아니다. 혼자 방안에서 십년 지내다 말년에 원없이 하고 싶었던 놀이들 다해본거로 만족해야 한다.
고양이로서 열살 말년에 접어든 탐군은 나에게 처음 올때부터 건강이 썩 좋지않다. 하고 싶은거 맘껏 하라고 지원해 주고싶은 맘이 그래서 이다. 전 주인과의 오랜 인연과 지인의 사정 때문에 말년에 커다란 종양 달려있는 녀석을 맡았는데 다리에 있는 종양이 매일같이 커져 정기적으로 물을 빼주면서 연장하는 중이다. (병원에선 안해 주려고 함으로 가정에서 개인이 해야한다.) 병원에 데리고 가서 상담 몇번 해본결과 의사말대로 수술시키고 골골대며 항암 주사 맞히면서 일년 더 살리느니 그냥 맘껏 뛰놀게 하는것이 낫다라고 나 역시 전주인과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
병원 몇군데를 돌아보니 온갖 겁을 주며 수술이 가능한 상태인지 정밀검사를 하자 하는데 의사말대로 하자면 멀쩡하게 잘 뛰어 놀던 녀석이 순식간에 병실에 누워있는 중환자로 삶을 마감해야 될 판이다. (80 이상 노인들 암수술도 마찬가지다.) 그러고도 수술 성공하면 1년정도 항암해가며 더 산다하니 차라리 수술 안하면 최소 5년은 더 살수 있을것 같다. (물론 전주인과 나의 생각이다). 나이가 있는지라 칼질하고 주사맞고 누워 있는대신 남은 삶은 양질의 잠자리에 좋은 사료 원없이 먹이고 모래 아낌없이 깔아주며 뛰놀고 호강 시키는게 나은거 같다.
사상충 주사도 맞고나서 거의 한달을 후유증으로 골골대서 중지했다. 그런 상태에서 일년 더 살수 있다고 다리 자르자 하면 누가 그런 미친짓을 하겠는가. (물론, 동물은 보험이 안되서 수백만원 수술 입원비용도 나에겐 감당불가다. ) 의사들은 안된다고 주장하지만 한달에 한번정도 종양이 터질듯 커졌을때 물리적으로 수액을 뽑아 가라 앉히는걸로 다시 한동안 정상생활이 가능해진다. (김일성도 목에 주먹만한 혹 달린채로 별탈없이 만수무강 하다 갔다.) 어쨋든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기본은 충족됐고 외로움 만은 다시 제자리가 됐다.
다 늙어서 여름내내 아기처럼 양양대며 놀아봤고 가출도 해봤고 온갖 모험으로 얼굴을 비롯 온몸이 상처 투성이다. 거의가 창틀 펜스 등을 부수고 넘나들다가 긁힌 흔적들이다. 길양이들 상대로 해적 놀이도 해볼만큼 해본지라 이제 가출도 흥미가 없다.
첼냥이는 이제 귀여움 테를 모두벗고 성묘로서 늠름한(?) 자태를 갖춘듯 하다. 이 녀석은 처음 올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울지 않는다. 사람을 주시하는 무음의 고양이다. 화장실도 모래한톨 안 흘리고 오랜시간 정성들여 탑 쌓고 뒷 마무리를 한다. (몇초간 대충 난장피고 온 집안에 모래 흘리고 다니는 탐군과 정 반대다.)
내가 자려고 하거나 눈을 떴을때 침대에 뛰어들어 꾹꾹이를 할때면 애교는 거의 양귀비 급이다. 물 닿는거 워낙 질색하는지라 씻기는건 포기한 대신 내가 깔끔 떨기를 그만 두었다. 마당 누비던 발로 이불을 밟건말건 위생 따지다 관계를 망치는것보단 낫다고 판단해서다. 고양이랑 살려면 누더기 넝마 따로 장만할 필요 없다. 옷 이불 그냥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라 여겨야 한다.
두 녀석다 침묵의 행동을 보이는지라 겉으론 평화로운 일상처럼 보인다. 둘다 사연많고 파양 당했던 트라우마들이 있어서 우울증으로 가는 마음의 장벽들을 다시 세운거다. 같이 있자니 불편하고 혼자 놀자니 외롭고 심심하고 탐군이 가끔씩 양양 울고 조르기 시작하면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심각한 우울증은 아니란거다. 성묘들 집안에 가두면 할일은 먹고자고 밖에 없다. 뛰놀 공간이 없으면 우울증 강요가 된다. 특히나 한창 에너지가 뻗치는 나이의 첼양에게 사냥과 우다다다 없음 그 자체로 고문이다.
아직 마당에 햇살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나마 평화가 이어지는듯 한데 다가오는 겨울이 문제로다.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잘 되겠지… 알리에서 물건 사보듯 ‘근거나 이유없이 쌀수도 있다.’ 배송이 오기전까지 일단 믿어 보는거다.
*아비시니언 종의 특성이 사교적이고 호기심이 왕성한데다 외향적 활동적이다. 심심한걸 못견디는 아비시니언 종의 사교적 본능을 믿고 사람은 큰 싸움 이니면 가급적 간섭을 안하는게 낫다. (부부싸움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도 있다. 사람 부부들도 툭하면 불화와 이혼에 가족간 불화가정 흔하다. 고양이인들 다를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