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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May 16. 2017

길양이와 함께한 식사

지성이면 감천이라..


작년 겨울부터 올해초까지는 온동네 길양이들 사료대주느라 내방앞이 길양이 집합소가 되었었다. 한겨울 나기가 힘든 시골의 길양이들이 꽁꽁 얼어붙은 똥 퇴비들에 내버리는 음식물 찌꺼기 뒤지는게 너무 안쓰러워서 였는데 봄이 되면서 나도 집에 올라가야 하고 사료대기도 벅차서 이젠 알아서 생존하라고 밥주는걸 끊었다.


겨울 지나고 지금은 그 많던 길양이들이 전부 사라졌는데 시골 길양이들의 운명따라 큰 놈들은 잡혀가 약탕이 되거나 먹이찾아 다니다 로드킬 당했거나.. 어쨋든 안쓰러운 생들을 마친듯 하다.


시골길을 운전하다 보면 끔찍하게 로드킬 당한 고양이들을 하루에도 몇마리씩 보게된다. 도시처럼 차가 많은곳에 사는 길양이들은 도리어 차를 무서워해 피해 다니는데 외진 시골 냥이들은 차에대한 두려움이 없어서 그렇게 쉽게들 차에 치어 죽게 되나보다..


한마리가 일주일전부터 계속 내방앞에 진을 치고 앉아 오매불망 먹이주기만을 기다린다. "이젠 없어 가" 일주일을 내쫒았는데도 아예 툇마루 밑에 진을 치고 앉아서 내가 담배피러 나올때마다 빼꼼 얼굴을 내밀고 척 하고 앉아서 기다린다. 몸집을 보아하니 작년에 덩치 큰애들 한테 밀려서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던 새끼가 틀림없다.. 너 하나 살아 남았구나..



안쓰럽지만 책임지지 못할바엔 아예 자립심을 키워주는게 낫다란 생각에 일주일을 외면했는데 밤에 담배피러 나왔더니 녀석이 아직도 버티고 있다. 그 간절히 바라는 눈길이 자꾸 신경에 거슬려 홧김에 또 일을 저질렀다.. 사료 20kg 을 주문해 버린다.. 그래.. 내가 일주일 외식 안하고 너 몇달간 배불리 먹여주마... 먹을것만 넉넉하면 불만이 없는 녀석인데.. 그 정도는 내가 해줄수 있어...


사료가 오려면 아직 이삼일은 더 있어야 하는데.. 이 삼일동안 녀석을 뭘 먹여야 하나.. 고민하다 번데기 깡통이 있길래 따서 내밀어 본다.. 안 먹는다.. 참치 깡통이었다면 잘 먹엇을거 같은데.. 사실, 부유층 고양이 캔보다 사람이 먹는 참치캔이 더 싸게 먹힌다. 어쨋든 나도 김치찌개를 한번 시도해 보면서 녀석과 함께 먹을수 있는 식사를 준비해 보기로 했다.



상 차리기도 귀찮아 일단은 되는대로 막 시도해 보는데 조리대 가는것도 귀찮고 라면 포트에다 끓이면서 방바닥이 폭탄 맞은 전쟁터가 되어 버린다. 김치찌개라고 남에게 내보이면 충격을 줄만한 정체불명의 이상한 범벅이 나와 버렸는데 내가 왜 만들어 먹는걸 포기하고 그 먼거리를 나가서 사먹기로 했는지 그날의 결심이 다시 되새겨진다.. 이건 비싼재료를 가지고 쓰래기를 만들어 버리는 짓이야.. 어쨌든 그렇게 이상한것들을 이것저것 끄집어내서 한끼를 먹긴했다.


찌개에 들어간 돼지고기들과 냉동실에 보니 버팔로윙이 있길래 그것을 오븐에 구워 가운데 살은 내가 대충 발려먹고 나머지들을 냥이에게 주니 너무 잘먹는다. 주변에 붙은 고기만 먹을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닭뼈까지 부숴 먹는걸 보고는 탈이날까 ' STOP!' 밥 그릇을 치워 버린다. 돼지고기를 배불리 먹어선지 녀석이 만족스러운듯 사라져 버린다.



사료가 없는대신 저녁땐 뭘 줄까 냉동실을 뒤져보니 작년 가을에 사다 먹은 전어가 두마리 얼려있다. 어차피 나는 안먹을 생각하고 있던참에 잘 됐다 싶어 일단 전어를 미니오븐에 구워둔다.


녀석이 용기를 내서 방안까지 들어와 이것을 먹을지 지켜보기로 했다. 시골 길양이들 답게 워낙 사람을 겁내는지라..내가 조금만 움찔해도 바로 후다다닥 달아나 버리곤 하니까..



녀석을 보니 '지성이면 감천이라' 라는 속담이 절로 생각나게 한다. 일주일 동안 그렇게 내쫒았는데도 계속 찾아와 먹이 달라고 애원하니 결국은 외면 하리라 모질게 맘먹었던 내가 항복하고 먹이를 내주게 되니 말이다. 스무마리 정도 되던 큰 놈들이 다 사라지고 혼자남은 녀석이 너무 애처로워 보였나 보다. 겨울동안 큰놈들에 밀려서 눈치만 보고 제대로 못 얻어 먹었던 한을 풀어줄께..


사료 20kg를 이 녀석 혼자 먹이면 일년 가까이도 먹일수 있겠다란 생각이 든다. 마음껏 배불리 먹여주리라.. 내가 집에 올라가 있는 동안에는 어찌할지는 차차 고민해봐야 겠다.. 내가 일주일동안 외식을 안하는 댓가로 한 생명이 몇달간 생존 걱정없이 만족할수 있다면.. 암만 따져봐도 손해보는 거래는 아닌것 같다..


냉동고에 몇달째 얼려만 있던 고기들, 해산물들.. 나는 안먹을거 같으니 전부 니 차지다.. 내가 너의 끈질긴 정성에 졌도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것이다.. 녀석을 보면서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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