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uman Report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oAh Jun 06. 2017

에고가 건너지 못하는 4차원 심령계의 '강(River)

에고의 한계를 바라보며...


에고가 스스로를 벗어나겠다고 하는 모든 시도가 헛되고 평생을 수련해도 제자리를 맴도는 가장 큰 이유는 4차원이라 불리우는 심령계의 장벽을 에고들은 결코 건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장벽을 확실하게 인지하게 돼면 모든 에고들의 시도가 부질없음을 깨닫기가 쉽다.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더욱 확실하게 실상이 보이게 된다.


에고는 4차원 심령계의 지배를 받는 의식으로 죽은뒤 가게되는 심령계에 그대로 빠져들면 어김없이 길을 잃고 휩쓸려 가게 된다. 대부분의 에고들이 말하는 영성, 신적인 체험, 천국, 지옥 모든것이 심령계 안에 존재한다. 무지한 에고는 죽은뒤에도 심령계 안에서 의식 세탁을 거쳐 윤회라는 수레바퀴속을 수십생 돌게된다.


수련등을 통해 에고들은 자신만의 심령계에서 스스로 하느님이 되기도 하는데 실제 3차원 현실에서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심령계에 빠진 에고들이 갈곳은 '정신병원' 외에는 없다. 스스로는 엄청난 신적세계를 경험한다고 착각하지만 자신만의 심령계 안이므로 타인에게는 단순한 '판타지' 환상속일 뿐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어떤 영향도 끼칠수없는 자신만의 '영성' 세계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영성인들이 추구하는 '상승' 이란 곳의 실체가 대부분 그러한 자신만의 판타지 세계이다.



심령계 라는 4차원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장벽너머 5차원에 존재하는 실제 이지체 의식과 3차원 의식인 에고, 두 가지 의식중 어느 의식이 주체가 되어 살고 있는가 가장 확실한 구분은 4차원 심령계를 지배하는가 지배 당하는가를 통해 뚜렷한 구분이 가능하다. 심령계를 지배해 자신의 육체와 감정을 지배하는가 지배 당하는가로 구분할수도 있다. 4차원 심령계 의식체는 한마디로 3차원 에고와 5차원 이지체 의식과의 징검다리 역활로 두가지 의식과 육체중에 하나에 세트로 매어있게 된다. 3차원 육체에 의식이 기반을 잃고 독자적으로 4차원 심령계에 빠지는 현상을 우리는 '정신병자' 라고 부른다. 3차원 육체에 4차원 심령체 의식이 주체가 돼면 갈곳은 정신병원 밖에 없다.에고가 심령계의 장벽을 절대 건너가지 못한다는것을 정신병자들을 보면 쉽게 알수있다.


3차원 이라는 매트릭스 틀안에 갇힌 에고들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다른 차원에 대한 '무지함' 이라고 보면 되겠다. 무지하기 때문에 에너지들에 휩쓸리고 지배당하고 공부한다고 책을 뒤적이고 명상을 하고 온갖 시도들을 하게되는 것이다. 4차원 장벽도 못넘으며 말로만 고층차원을 논하는것도 무지한 에고들의 특징중 하나이다. 모르니까 명상이나 루시드 드림등을 통해 심령계 근처만 기웃거려도 온갖 착각들을 하는것이다.


에고는 지식으로 무장해 아무리 똑똑한체 해도 역시 심령계의 지배를 받고 무지하긴 마찬가지로 공부를 하건 안학건 , 육체에 종속되고 감정체에 휘둘리는 전부 똑같은 '에고' 일뿐이다. 똑똑한 닭이 멍청한 닭을 보고 자신은 다르다고 착각해도 후라이드 치킨이 돼면 모두 같은취급 당하는것처럼 영성공부 한다고 도토리 키재기를 하느라 장님 코끼리 만지듯 자신만의 심령계를 뒤지고 시간낭비를 해봤자 죽으면 다들 가게되는 똑같은 패턴을 무한반복 하는것이 에고들의 영성공부가 가진 한계이다.



에고들의 무지함은 3차원 현실에서 온갖 울고웃는 드라마들을 연출해 내는 동력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에고가 느끼는 모든 고통과 슬픔의 가장 근본원인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망각과 '무지함' 때문이다. 무지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감정을 내세워 상처를 입히고 스스로도 상처를 입고 무지하기에 염체들을 마구 남발해 자신의 육체를 망가뜨리고 정해진 유한한 '삶' 이란 프로그램을 충실히 이행해 나간다.


태어나 자라면서 젊음이 가져다주는 육체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렸다면 중년이 넘어가면서 노화와 병마에 시달리는 노년을 겪어야만 한다..피고지는 꽃잎과도 같다..그 모든 에고들의 삶이 이지체 의식에서 바라보자면 심령계 저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무지하기에 즐길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 고통과 슬픔이 공존하는 에고들의 삶이란 드라마가 심령계 라는 거대한 차원의 강 너머에서 펼쳐지고 있다. 심령계 라는 에고가 생각하는 죽음의 강을 건너와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그 모든것들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일단, 그 경계선이 보이고 에고들이 벌이는 삶이라는 난장판의 실상을 보게돼면 에고들이 즐기는 무지함 속으로 다시 뛰어들기는 불가능하다..유치원 아이들이 노는모습이 아무리 보기 좋아도 어른이 그 속에 똑같이 어울리며 놀기가 쉽지 않는것과 같다. 스스로 몰입해 노는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될수밖에 없다. 이젠 정말 유한한 매트릭스 안에서 무지함을 가장하고 노는 에고들의 삶이란 놀이가 재미가 없음을 느낀다. 무지함을 가장하고 에고들과 어울려 산다는건 진짜로 피곤하고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차라리 에고들 속에서 벗어난 혼자만의 고립이 더 편함을 느끼게 된다..십년간 에고가 가장 두려워해서 안가려고 버티던 '고립' 이 막상 건너와보니 지금의 나에겐 가장 편안한 바램이 된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육체가 들려주는 심포니 , 생체신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