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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Jun 15. 2017

달콤한 '죽음의 유혹'

육체가 본능적으로 가는길.


인간을 비롯해 모든 생물체들의 3차원 육체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향해 가도록 세팅되어져 있다. 꽃몽우리가 피어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다 꽃잎이 하나둘 떨어지듯 생명의 절정기를 만끽하고 결국은 시들어 죽어가게 된다.



어제는 조카 아이들과 헤이리 동화세상 박물관등등을 쏘다니다 용궁 칼국수를 먹고 프로방스 마을을 뙤약볕에 쏘다니는 강행군을 하면서 온갖 아이스크림과 불량식품을 줏어먹고 집에 오면서 투썸 플레이스에서 생과일 케익까지..마냥 칭얼대는 아이들을 위해 달콤한 맛들을 계속 사주고 나도 하루종일 그것들을 몸에 집어넣는다..


집에서도 철없는 중년의 삼촌은 아이들 사준다는 핑계하에 온갖 아이스크림 생크림케익 새우깡 양파깡 불량식품 과자들을 사와서 혼자 맛있다고 시도때도 없이 봉지를 뜯고 손이가요 손이가 아이들보다 더 잘먹는다.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과 같이 먹고 같이 놀고 노는것까지는 좋은데 불행히도 나의 육체는 아이들과 같지 않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난 이후 밤에 혼자 방에 쳐박혀서는 거의 밤새동안 줄담배와 아이스크림, 생크림 과자등 불량식품에 쩔어 죽어가는 육체의 고통을 겪게된다. 몸이 죽음으로 가는길임을 알면서도 달콤한 맛의 유혹을 아이들과 함께라는 핑계하에 하루종일 꺼리낌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에고가 스스로 자살을 원하는것만 같다..


장기간 고통을 받던 육체가 죽음과 대면하게 되면 죽음을 선택하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뿌리치기가 정말 쉽지않다. 특히나, 육체의 통제에서 벗어난 의식의 가벼움의 기쁨을 맛본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대부분의 고통받던 환자들의 죽음은 본인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게 된다. 갑작스런 사고사나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는 경우가 아닌 일반적인 자연사와 병사의 대부분이 이런 과정을 겪는다.


"이제 됐어..더 이상의 고통은 받지 않아도 돼.. "


고통받기를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한 순간 부터 의식은 몸에서 떠나가고 의식은 몸에서 벗어난 자유의 기쁨을 느끼기 시작한다. 다시는 아프고 무거운 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고 일단 한번 의식이 몸에서 벗어나면 기꺼이 인도하는 빛을 따라 죽음의 길로 향하게 된다. 그 죽음으로 가는 편안한 유혹의 길을 고통받는 환자들은 뿌리치기가 정말 어렵다. 유혹을 뿌리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때가돼면 다들 자연스례 죽음을 선택하고 그렇게 죽는것 같다..


요즘 집에와서 하루종일 낮에는 조카들과 놀다가 일과가 끝난 밤에는 나 혼자 달콤한 죽음의 유혹을 받는다. 동생과 조카를 만날때까지는 죽지 말아야겠다.. 라는 지난달 까지 지녔던 하나의 목표의식이 어느정도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희박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아슬아슬 한발씩 건너다니며 죽음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았다가 "후회하지 않을 자신있어?" 라는 질문에 이내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뭔가 아직 더 할일이 있을것만 같아서 일단은 더 살아야겠다 라고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된다. 할일이 있는데 포기한다면 실패는 항상 아쉬움을 남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쉬움 역시 집착의 일종으로 카르마의 근거가 될수도 있다. 그렇게 일단은 하루종일 조카들과 놀아주던 에고의 껍데기만을 죽음으로 날려버린다.



에고가 자리잡아 망신창이로 만들어 놓고 고통받던 육체는 주인을 잃고 나는 줄담배에 온갖 불량식품으로 망신창이가 된 육체를 내일 움직이려면 또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한숨을 내쉰다. 낮에 에고가 맘껏 육체를 망가뜨리고 밤에는 그것을 복구하기 위해 죽음에서 다시 건져올리는 행위를 반복하게 된다.


죽음으로 가는 달콤한 유혹을 거절하려면 정말 살아야할 목적의식이 중요함을 느낀다..삶에 별다른 집착이 없는 나같은 경우는 요즘 매일 삶과 죽음의 카드를 양손에 쥐고 밤마다 만지작 만지작 갈등하게 되는데 몸에 통증이 오면 죽음으로 가는길은 너무나 편안하고 달콤한 유혹이 된다..달콤한 죽음을 포기하고 삶을 선택하려면 육체가 가려는 죽음의 통증을 멈출수 밖에는 없다..그런 통증을 느껴가면서는 살아있을 의미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나는 그런 통증을 받아들일수가 없다.


결국, 하루종일 죽음의 길로  가고싶어 발버둥치던 에고의식을 원하는대로 다시한번 통증과 함께 죽음으로 내던질수 밖에는 없게된다. 그래봤자 또 사회생활 하고 가족들과 복닥대면서 살아가려면 아침에 에고의식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육체가 살아있는한 에고는 항상 죽어도 기회가 오면 다시 살아난다..에고들의 세상에서 어울려 살기위해 가장 최적화된 의식이 에고이기 때문에..죽음으로 몰고가는 어리석음 이란건 알지만 사회생활에선 없어선 안될 정말 필요한 의식이 에고이다.


에고는 계속 육체를 죽음으로 향하게끔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의식이다...육체라는 밧데리에 삶이란 정해진 에너지를 소진하게 되는데 나같은 경우는 이미 에고의 삶은 다 소진된 상태인지라 계속 에고의식에게 이미 망가진 육체를 맡긴다는것은 자살과도 같은 행위지만.. 사랑스런 조카들과 놀아주고 가족들과 무난하게 지내려면 이번달은 어쩔수 없이 낮과밤 생사를 오락가락 할수밖에 없겠다.그렇게 육체를 죽음을 향하도록 몰고가는 모든 행위들이 사람들이 말하는 '삶' 이란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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