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건강검진 보호자로 병원 다니기
이번달은 병원을 진짜 자주 간다. 전부 나 때문이 아니라 미국에서 온 동생 건강검진과 조카들 치과 치료 그리고 어머니 안과검진등을 위해 운전사겸 보호자로서 따라 다니는건데 오늘도 동생 내시경 검사와 각종 검사를 위한 보호자로서 병원 대기실에서 몇시간동안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중이다.
조카들 치과 치료도 미국에서는 예약 잡아놓고 아이가 안받겠다고 난리치는 바람에 비용만 날리고 치료를 포기했다는데 한국 치과들은 얄짤없다. 아이 눈가에 실핏줄이 다 터질만큼 아이가 울고불고 악을 써도 묶어놓고 결국은 치료를 마쳤다.
미국 의료보험 체계가 너무 복잡해서 매달 백만원 넘게 보험료를 낸다는 동생도 미국에서는 간단한 검사받기도 절차가 너무 힘들어 한국에 온김에 온갖 검사를 다 받고있는데 일주일에 한번은 병원을 찾아 이것저것 체크받고 처방받는다. 오늘은 위 대장 내시경 수면 검사를 위해 보호자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 나밖에는 보호자로서 대기해줄 사람이 없다. 다른 검사까지 꼬박 세시간 이상 병원 대기실 신세다. 이번주말에 동생이 미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오빠로서 해줄수 있는것은 다해주고 싶다.
내가 작년에 병원에서 그렇게 말기암 진단받은 이후 친구들 지인들은 물론 온 집안식구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부지런히들 검사들 하는데 병원은 건강할때 다닐만한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기실에 앉아있는것 조차 짜증나서 어머니 안과 검진때는 아예 야외 옥상 주차장에서 두시간 이상을 대기하기도 했다.
한달간을 계속 주기적으로 병원에 보호자로서 다니면서 병원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장소라는것을 체감하고 있는데 병원은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장소이지 나처럼 죽음의 선고를 받은 막바지 시체와 같은 사람들에겐 아무런 도움을 줄수없다는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이라 할지라도 3차원 에고들의 사회속에 들어가 어울려 살려면 자신도 그런 의식에 동조될수 밖에 없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각종 자잘한 사건 사고들에서 혼자서 정신병자 처럼 딴 이야기만 하면서 있을수도 없고 같이 어울리고 먹고 하려면 같은 의식대를 지녀야만 한다.
덕분에 이번달은 에고들이 절대 피할수 없는 '죽음' 이란 녀석을 매일같이 접하게 된다. 이미 내 에고로서의 삶은 끝난지 꽤 기간이 지난듯 싶다. 어제도 샤브샤브에 아이들이 졸라서 자장면에 탕수육, 과자 아이스크림등을 시켜 먹었고 매일같이 무리해서 몸에 부담가는 음식들만 먹으며 아이들 소음과 줄담배 피면서 새벽까지 미드를 보면서 버티는중인데 그런 환경과 상황에서 에고가 자리잡은 말기암의 육체는 살아날 방법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 피운 줄담배의 여파로 숨쉬기도 깔끔하지 않은채 온몸의 감각이 처참하게 여기저기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하루에 두세시간 자는 와중에도 꿈은 매일같이 꾼다. 꿈속에서 흑백으로 삶과 죽음을 의미하는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두 여자와 사이좋게 동거하는 꿈을 꾸기도 하고 거대한 조직적 암살단에 쫒기는 꿈을 꾸기도 한다. 에고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만 꿈속 의식은 그런 편견이 없다. 죽음을 의미하는 어둠의 매력도 포기하기 힘들만큼 양쪽 여자들의 매력이 각기 다르다..꿈속에서는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며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진 않는데 깨어나서 에고는 밝고 상큼한 삶의 여자를 당연히 택해야지 하는 에고다운 생각을 한다.
마지막 동생이 먹고싶은거 며칠간 같이 사먹으며 이번주까지만 이런 에고가 가는 고통과 육체적 죽음의 시간들을 버티면 된다..더 버틸수 있을지 자신은 못해도 나로인해 동생의 마지막 한국에서의 시간들을 망치는건 정말 원치않기 때문에 통증을 무시하고 이미 한도가 지나 죽어가는 육체를 아무렇지도 않은듯 굴리면서 다닌다. 이러다 죽어야 겠다고 판단해 어느날 죽음을 택한다면 남들이 보기엔 멀쩡히 잘 돌아다니다 갑자기 죽었다고 생각할것이다. .
한가지, 죽음에 대해서 확실히 알게된건, 사고사가 아닌 병사의 경우는 에고가 스스로 '죽음' 을 선택했을 경우에만 실제 죽음이 허용된다는 사실이다. 고통을 못이겨 죽음의 유혹이 아주 강렬해질때 에고는 기꺼이 스스로 그런 선택을 한다. 죽음의 고통을 끝까지 버틸경우는 혼절하게 되는데 혼절상태에서 아무런 판단없이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지금은 그런 선택을 할수가 없다. 모처럼 한국을 찾은 동생과 조카들에게 나로인한 어떤 부담도 주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하루 하루 새벽까지 미드라마 보면서 멍하니 지내는지라 살아있다고 말하기도 뭐하고 죽었다고 말하기도 뭐하다. 껍데기 의식만 살아서 아무렇지도 않은듯 조카들과 웃고 가족들과 외식하면서 돌아다니는 시간들..흐리멍텅 회색 의식으로 진짜 유령같은 존재로 가족들과 사람들 사이를 다 죽어가는 육체를 이끌고 떠돌아 다니는것 같은 요즘이다. 아무것도 예측할수 없고 계획을 짤수도 없다.
몸만 건강하다면 매일 놀고먹고 외식하면서 정말 늘어지게 사는 여유로운 시간들일텐데..몸이 아프고 죽어가면 에고에겐 어떤것도 행복과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것을 체감한다. 인간에겐 에고의 자만을 꺽고 통제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육체의 고통이고 죽음임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