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막바지로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운전습관이 있다. 30년간을 내리 오토 드라이브 D 모드로만 달리다 나이가 드니 내리막길에선 비로서 ‘수동 모드‘로 운전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시골에 살다보니 경사진 산길주행이 일상화 됐다.)
인생을 드라이브로 봤을때 중년이후 노년은 내리막 비탈진 산길을 주행하는것이다. 당연히 속도를 줄이기 위해 악셀이 아닌 브래이크를 사용해야 한다. 산길 운전에서 오토의 경우 속도를 악셀과 브래이크로 조절하면 패달의 긴장도와 더불어 기어가 계속 변속을 해야하기 때문에 미션에도 무리가 간다. 그래서 기어 자체를 경사에 따라 단수를 낮춰 자동 브래이크로 저속 운전 하는것이 편하다는것을 나이들고 연륜이 쌓이면 저절로 알게된다. (보통 3-4단(30-40km)이 내리막길에선 가장 적당한 속도다.)
* 내리막길에서 저단 주행하면 브래이크를 거의 밟지 않아도 되서 연료소모도 거의 없다. 수동 전용은 클러치 조작이 미숙하면 시동을 꺼먹는 경우가 생기는데 오토는 수동모드에서도 클러치가 없어 편하다. 내리막에서 중립으로 미끄러져 가는건 연비도 안좋고 위험도 증가와 함께 차량에 악영향을 끼치므로 절대 금물이다.
중년이 되면서 마음에도 자동으로 조금씩 브래이크가 걸리기 시작한다. 젊은시절 오르막 내리막 가릴것 없이 드라이브 모드로 마구 악셀과 브래이크 밟아대는 무모한 질주에 자동으로 네거티브 제동이 걸리는것인데 노년이 되어갈수록 기어가 낮아진다. 결국엔 매사 1단으로 서행할수 밖에 없는것이 노년의 마음이다. 모든것이 위험해 보이고 걱정이라. 차조심해라 길조심해라 음식 조심해라 다 큰 자식 볼때마다 (쓸데없는) 노파심 이란게 그래서 생긴다.
새로운것을 접할때도 호기심이나 흥미보다는 겁부터 나서 도전보다 포기확률이 대부분이다. ‘그게 되겠어?‘ 가능성에 대한 기대보단 브래이크가 먼저 작동하게 된다. 산전수전 수많은 사고를 겪어보고 경험상 경험이 없을수록 성공보다 실패하는 경우의 수가 더 많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경험해 보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건 겁부터 나서 주저하는것이 보수화의 과정이다.
지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결과를 아는 입장에서 헛짓꺼리 하는것이 보이기도 한다. 이미 경험해본 선배 입장으로써 희망회로에 빠져있는 사람에겐 초치는 말을 차마 못하고 그저 예외적으로 잘되기를 바라며 노파심에 걱정해줄 뿐이다.
극성 부모가 자신 뜻대로 자식의 미래를 강요 하는것은 자신이 겪은 경험을 절대적 맞는 공식이라 믿기 때문이다. 자식의 인생을 자신의 공식에 맞춰야 안심되고 전수하고 싶은것이 부모마음 이랄까.. 공식이 맞는것 같아도 절대적일순 없다. 시대는 변해가고 트랜드도 바뀌며 사람의 일에는 항상 예상못한 변수가 존재한다. 공부 안하고 게임에만 빠져있던 아이가 최초의 프로게이머가 될줄 그 어느부모가 예상 했으리오.
중년에 접어들고 나이가 들수록 용기가 줄어들고 매사 부정적 브래이크를 거는것이 원해서가 아니다. 점점 에고 육체의 성능저하 (내리막길) 를 느끼고 기어를 자동으로 낮춰가기 때문이다. 생각까지 움추리게 되는것이 생존본능에 따른 보호기능이다. (고물차로 F1 도로에 나설 자신이 안 생기는것과 같다.)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고 돌다리도 좌우 위아래 계속 두들겨본다.
50대 되면 뭐든지 단순하고 간결한게 좋다. 차량도 순정 상태를 선호한다. 집안 인테리어가 어떤걸 장만하고 거느냐가 아니라 어떤걸 없애고 치워 버리냐 이다.
젊을땐 나 달립니다 온동네 알리고 싶어 배기음 까지 돈들여 튜닝하곤 하지만 ( 배기음 매니아들은 조용한 전기차 거들떠도 안본다.) 중년되면 순정상태가 가장 보기 편하고 좋다. 튜닝의 끝은 결국 순정이라고 하는말이 괜히 나온말이 아니다. (라면도 봉지 뒤에 써있는대로 끓이는게 수많은 테스트 끝에 나온 최상의 보편적 레시피란걸 알게된다.)
젊을때는 모든것을 삼켜버릴듯한 올블랙이 (옷도 차도 악세사리도) 시크하고 멋져 보이지만 나이가 들면 반작용으로 화이트나 밝은 색상이 편하다.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꽃문양 옷을 입기 원하는것도 심리적 반작용 때문이다.
효율성, 기능성 가성비 이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디지털 기기보다 아날로그가 좋고 효율성 보다는 오래걸려도 단순한게 좋다. TV나 영화 드라마를 봐도 (보고싶은것을 선택해 보는) 능동적 선택이 아닌 ( 케이블이나 넷플같은 OTT 에서 메인에 걸어 보여 주는것을 보는) 수동적 선택을 한다. 시간이 안정적으로 더 더 천천히 갔으면 하는것이 솔직한 노인들의 심정이라 아쉬운게 언제나 시간이다. 많은 시간을 가진 젊음을 부러워 하는것이 부자를 부러워하는 가난과도 같다.
내리막길에선 브래이크가 자동으로 걸리는게 생존보호 본능에 따른거라 오토변속 보다 자신의 속도에 맞는 수동모드로 가는것이 안전하다. 그러나, 오르막이나 평지에서 악셀을 밟아야 함에도 안 밟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 달리라고 도로를 막아선다 해서 모두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지는 않는다. 추월하겠다는 젊음에게는 길을 비켜줘야 한다.
중년에 들어서면서 내일이 중요한게 아니라 오늘 지금이 가장 누릴수있는 젊음의 최상이다. 하나둘 젊음을 잃어가고 있지만 불가항력, 싫어도 갈수밖에 없다. 여배우가 주연자리에서 물러나 은퇴하거나 시어머니 조연 역활로 자리바꿈 해야 한다는걸 깨닫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온다. 시간이 흐르면 와인맛은 더 좋아지는데 사람이 꼭 그렇진 않다. 쉰 노망 소리 안들으려면 차츰 기어를 낮추는게 자연스런 섭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