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이들이 놀면서 부르던 구전 동요중에 이런 노래가 있었다.
“단추 단추 새단추 어머니가 사다주신 새단추 옥희야 순이야 (동네마다 이름 다름) 단추 달아라”
그런데 이것들이
“싫어요 싫어요 나는 싫어요! “
옷이 귀했던 시절, 어머니가 다 헤진옷 입은 자식 그지꼴이 싫어 새단추 달아 준다는데 왜 싫어요 삼세번 강력하게 거부하는지 이젠 알겠다.
추운데 옷 입히려 들면 도망가고 눈꼽 때자 그러면 싫다옹 째려보고 발톱깍자 그러면 싫어 싫다옹 깨물려고 한다. 아하 단추 단추 노래가 그래서 만들어 졌군 비로서 알게된다.
잠시동안의 구속이 아이들은 그냥 싫다. 코풀어야지 세수해야지 하려면 어르고 달래고 하는 이유가 청결이 아이들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서다. 단추가 떨어지고 옷에 온갖것 묻히고 걸레가 돼도 신경 안쓴다. 네 해도 엄마가 원하니까.. 말 잘듣는 아이 컨셉인건데 고양이들도 그렇다. 발 딱이고 털 빗질하고 발톱깍고 하는게 사람을 위한거고 고양이들 에겐 보살핌을 받기위해 치루는 귀찮은 행사일 뿐이다. (노묘인 탐군은 물혹까지 달려서 정기적으로 주사로 물을 빼줘야 한다. 수술하는것 보다 낫다고 의사들 진단듣고 전주인과 상의해 판단한거다.)
스스로 목욕을 원해서 하는 성인의 경우 반복된 경험으로 목욕이 주는 개운함을 알아서다. 반면 아이들은 ”씻으니 이뻐졌네“ 칭찬받기 위함이다.
사람도 교육에 의해 예절을 배우듯 고양이들을 교육 시키려면 사람또한 그만한 부지런함이 따라야 한다. 귀찮다고 그냥 방관하면 (사람 판단에) 나쁜버릇들이 생긴다. 침대에 눞기만 하면 올라타고 꾹꾹이 할때마다 목욕 안 시킨걸 후회하면서도 그냥 넘어가니 이젠 아침마다 아예 얼굴까지 짓이기면서 일어나 일어나 꼬리와 엉덩이를 비벼댄다. 잠결에 시원한 꾹꾹이 전신 안마를 받으며 기상하게 된다. 그르렁 침흘리며 털로 부벼대면 잠결에 귀찮아 하면서도 스킨쉽이 나쁘진 않은데 안 씻긴게 영 찝집하다.
마당에 나갔던 발로 침대 이불속안을 마구 헤집고 들어오는데 추운 겨울에 매번 목욕 시키기도 힘들고 때어놓으면 스토킹의 눈길이 애처롭고 목욕 고문으로 난리를 치고 행사를 치루자니 올 겨울은 근육파열된 어깨 부상이 걸린다.
실강이 하다 기력이 딸려 결국 사람인 내가 위생을 당장은 포기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그냥 사람도 고양이처럼 같이 뒹굴게 된거다. (녀석들도 목욕탕을 시간 날때마다 계속 탐방하는것이 어 ? 왜 안씻기지? 하는듯 하다.) 털 범벅에 마당 나갔던 발로 이불속 밟고 다니고 할퀴는대로 상처가 나기도 한다. (그나마 흙바닥이 아닌게 다행이다.)
고양이들은 따로 목욕을 안 시켜도 스스로 시간날때마다 셀프 그루밍으로 비교적 청결함을 유지한다. 단, 야외 내놓으면 몸에 묻은 더러운걸 (발가락 하나하나) 다 핣아 먹는다는게 문제라. 길양이들 수명이 집냥이에 비해 극도로 짧은 원인중 하나다.
고양이는 절대 알아서 소품처럼 있어주지 않는다. 사람과 똑같이 감정을 가진채 교감을 한다. 아이 키우는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보통 관상용으론 작은 생선이나 쥐종류, 파충류, 곤충류를 키우게 되는데 사람과 교감은 거의 일어나지 않기에 그래서 관상용이다.
관리가 먹이주고 배변 치워주고만 하면 되지만 그것도 부지런 해야 한다. 40대엔 거북이도 몇마리 단체로 어항 박스에 키워봤는데 매번 온도조절과 물갈이가 힘들고 엄마가 (개천가) 냄새난다고 질색해서 나 시골에서 요양할 동안 방생했다 한다. 생명을 지닌채 살아 있다는 것이 그런것이다. 계속 생리적 순환을 해댐으로 소품처럼 먼지만 턴다고 되는게 아니다.
혼자 크는 아이 없다. 그래서 아이보면 부모를 알게되고 학교에선 문제 발생시 부모를 호출한다. 원하는대로 해주는것이 고양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위생 청결 따라다니며 관리하기 힘들어서다. (목욕 시키려면 전쟁 치루듯 해야한다.) 녀석들이 원하는대로 방임하면서도 미안해지는 이유다. (우리땐 ”애들은 나가놀아“ 먹고살기 바쁜 부모가 아이들 방임하는게 그래서다.)
언제고 날잡아 두 녀석 다 목욕시킬 각오를 매일 다지는 중이다. 아직은 낮엔 기온이 영상인지라 녀석들 보챔으로 잠깐씩 내보낸다. ”목욕 이후엔 마당 외출 금지다 두고봐라 이녀석들“
목욕탕에 가둬 씻겨서 못살게 굴 생각하는것이 곧 사랑의 실천인데 사람을 위한건지 동물을 위한건지 동거엔 서로가 맞춰가야 할 규율이 필요하다는걸 녀석들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