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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Jul 18. 2019

죽음에서 '예외' 라는 케이스

일반적이지 않다..


아마도 4기 말기암 환자분들중 내 사정을 아는분이 나를 예로들어 자신도 나와같은 수술이 가능한지 담당 의사에게 문의해 봤나보다. 수술이 불가능 하다고 통보받은 많은 환자분들이 그러 했으리라 본다.


당연히 의사들은 나의 경우처럼 살인행위가 뻔한 수술은 거부할수 밖에 없다. 나 역시 핑퐁으로 4군데 병원과 여섯명의 의사에게 수술거부와 진료 떠넘기기를 당했고 수술 역시도 교통사고로 장이 터지고 죽음이 몇시간 남지 않았을때 당장 숨을 잠시나마 붙여 놓을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자 임시방편으로 택한 것이었다.


119 실려서 전남 병원들을 돌다가 일산 올라가는중에 나는 혼수상태라 몰랐는데 당시 응급실 의사가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었던것 같다. 형이 지방에서 아침에 의사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의사가 동생 죽음이 몇시간 안 남았다고 빨리 오시라고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들 그렇게 가족들이 미리 일산 병원에 와 임종을 대기하고 있었던 거였다..



장이 터져 암이랑 장기들이 축구공보다 더 큰 곤죽상태로 갈비뼈에 엉켜붙은 상태라서 당장은 수술도 불가하다고 해서 응급 수술로 터진 부분만 살짝 덮어두고 장을 꺼내 놓은채 6개월 가량을 장루를 매달고 생명연장 항암치료를 받았다.항암 의사도 장이 몸안에서 터져 암세포가 온몸에 퍼졌을거라고 답이 없다고 희망을 갖지 말라고 화를 냈었다.  기간동안 항암주사 바늘 꽂고도 운전하고 사람 만나고 혼자서 할거 다하고 다녔다. 


6개월 후에 위장, 췌장, 비장, 대장을 도려내는 수술을 받았는데 배를 갈라논 상태에서 안하면 어차피 곧 죽을것이 확실한 생명연장 기간중 이었기에 의사 입장에서도 선택권 없이 한것이다. 당장 죽느니 수술하고 몇개월 이라도 더 숨쉬고 살기만 해도 성공인 수술이었다. 다섯명의 의사가 달라붙어 동시에 한번에 절제하고 봉합하는 대수술 이었던지라 국내에서 그런 수술이 가능할수 있다는 하나의 선례 데이터를 남겼다, 의사들이 할수있는 선은 거기까지고 뱃속이 텅빈채 내장없는 환자가 수술후 살거나 죽거나 전적으로 그것은 환자 본인의 몫이다. 


문의했던 다른 대형 병원의 지인 담당 의사는 내 경우를 듣더니 도데체 어디서 그런 수술이 행해졌는지 그런 수술을 하면 사람이 죽는다고 나같은 경우는 아주 특이한 '예외' 케이스 라고 했다고 한다. 나와같은 그런 수술 자체가 세계적으로 몇건 되지 않는 아주 특이한 경우고 내가 여러 의사들에게 핑퐁 떠넘기기로 거부 당했던것처럼 그런 살인행위와 같은 수술을 하겠다고 나서는 의사는 없다는 것이 정석이다. 예외라는것은 일반적으로 90% 이상은 나와같이 내장을 동시에 거의 다 들어내 버리사람은 바로 죽는다는 말과도 같다. 


내가 죽던날도 그랬고 수술한 직후에도 찾아온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다들 '멀쩡하네' 라고 황당 하다고 말하는것은 나의 항상 똑같은 말투와 농담같은 여유로움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기록을 남기려는 것은 생사에 있어 육체에 끄달려 다니지 않는 인간의 의식에 관한것이지, 의료기술이나 약물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달을 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내 손가락만 보는것 같다. 한 후배 녀석도 내가 살아난것을 보고 요즘 약들이 좋아서 중국에서는 알약만 먹으면 위장암이 낫는다는 사기가 뻔한 헛소문에 혹해서 열을 내 설명한다. 암이 마치 알약만 먹으면 다 낫는 세상이라고 나를 보더니 진짜 믿고 여기저기 헛소리 하고 다니는것 같다.


암이 꼭 죽는병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증명하려고 했지만 그것이 의료진의 기술과 약물에 의한것 이라고 믿는분들은 여전히 불확실한 뜬소문에 사기도 당하고 불가능한 수술을 기대하면서 의료진 탓만 하기 쉽상이다. 


알다시피 나는 돈도없고 보호자도 없고 장이 터지기 전까지는 병원 진단 무시하고 아무 치료없이 혼자 지냈고 그 후도 모든걸 보험치료 안에서 의사가 권하는 최소한의 치료만 받았다.


보호자가 없어 수술하고 아프다고 맘편히 누워있을 상황도 아니었다. 수술후 마취 깨자마자 수술비 마련하려고 병원안을 기어 다녔고 항암도 운전하며 주사 맞으면서 사람들도 만나러 돌아다니고 배 가른 상태에서도 혼자서 곧 돌아 가실것 같았던 부모님 두분 요양원 뒷치닥 꺼리까지 하면서 지냈다. (나포함 해서 같은 시기에 집안에 줄초상 치루는줄 알았다가 다행히 지금은 두분다 요양원에서 집으로 복귀 하시고 안정화 됐다.)


배 갈라놓고 내가 죽어 가면서도 내가 죽겠다란 하소연 할수도 없었고 도리어 찾아와 엄살(?)부리는 남들 위로해주고 집안 일처리 하면서 지냈다.


몸무게 50킬로. 내장들이 없이 껍데기 몸으로도 멀쩡하게 운전하고 돌아다닌다..


달을 보라고 하면 달을 봐야지 내 손가락을 아무리 쳐다봐도 달이 보이진 않는다. 나는 정확하게 한국말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멋대로 추측하고 해석하지 말고 그냥 내가 말한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달라. 내가 그냥 '힘들어 죽을것 같아' 라고 말한다면 진짜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상태를 말하는것이다. 마찬가지로 괜찮다면 진짜 괜찮은거다. 한국말로 분명히 말을 함에도 대부분의 에고들은 내가 말하면 무조건 반대로 알아듣는 경향이 있어 의사 소통이 안돼 나를 지치게 만든다.  한국말이 얼마나 훌륭한지 잘 생각해보라.. 단 한글자에도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죽(X) 사람

을, 는, 일, 은, 던,...


지금은 죽음을 넘어서 그 이후의 삶의 질에 관한 해답을 찾기위한 여정중에 있다. 내장이 없는몸으로 고통속에서 살아간다면 죽음에서 살아온것이 그리 축복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술후 1년이 지난 지금은 수술 담당했던 의사분들도 전부 어디론가 가버리셔서 (전부 해외연수 가셨다지 아마?) 병원갈일 없고 약물도 마지막 마약, 소화제 끊은지도 몇달 되간다. 장이 터져 죽기전에도 그러했지만 병원과 약물 관련해 아무것도 하는것 없다. 영양제 엔커버도 맛이없어 먹어서 유통기한 지나 다 갖다 버렸고 여전히 줄담배에 줄커피중이다. 그것마저 안하면 정말 아무것도 안하는 유령처럼 되니까..


나와같이 내장 구조가 다 바뀐 육체를 '환장'했다 라고 한다. 새로운 신인종으로 새로운 육체가 살아가야할 또 다른 삶의 기쁨과 길을 개척하는중이다. 음식을 먹지 않아도 침대에 누워 잠을 자지 않아도 공기처럼 가볍고 맑은 의식으로 깨어 살아갈수 있다는것을 보통은 이해하지 못하기에 대부분이 아직은 나를 단지 동정하고 색안경으로 바라 보는것을 안다. 모든것은 시간이 말해줄것이다.


나와같은 특이한 예외 케이스를 일반화 해서 헛소문을 믿지도 말고 의료진 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도 말고.. 왜 의료진들 모두가 죽는다고 나에게 모진말만 이구동성 말했음에도 예외로 특이한 케이스가 될수있는지 그 핵심을 알리는것이 내 3년간 투병기록의 존재 목적이다. 의료기술진을 홍보하려는 목적도 아니고 약물치료의 우수성을 말하고자 함도 아니다.


내가 경험해봣듯 지푸라기 라도 잡고싶은 마음들은 알겠는데... 제발 사람들이 손가락 말고 달을 봤으면 좋겠다. 단순 검색 정보로만 단편 단편 내 기록을 받아 들이지 말고 3년에 걸친 육체의 변화와  의식변화의 체적인 이해와 공감 이란것을 느껴야 조금이라도 죽음과의 싸움에서 얻어 가는것이 있을것이고. 

알아볼수 있는 눈이 있는자에게만 그 보석이 보일것이다.



https://brunch.co.kr/@yemaya/729

https://youtu.be/QelqB6p0E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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