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빨리문화에 젖은 대다수 한국 사람들에게 먹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우아한 고문 방법을 알고있다. 그것은 정장을 차려 입히고 알아듣지 못하는 이탈리어로 노래하는 4시간 짜리 고전 오페라를 꼼짝않고 정좌세로 앉혀서 관람 시키는 것이다. 그야말로 오페라 매니아가 아니면 아무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잠드는것 외엔 그 고문을 피하는 방법을 찾을수 없을것이다.
"말 안들으면 당신을 오페라에 데리고 가겠다." 이런 협박을 들으면 대부분 왼만한 요구엔 굴복하는 것이 낫다.
요즘엔 스마트폰 유투브로 보고싶은 오페라를 중간중간 아무렇게나 추리닝 입고 널부러져 보다가 말다가 맘대로 아무때나 편하게 볼수있다. 그렇게 유명한 오페라를 여러개 유투브로 둘러 보지만 정작 단 한편도 제대로 보게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공연장에 직접 가서 4시간을 꼼짝않고 앉아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탈리어 노래들을 집중해서 본다는것은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뮤지컬도 질은 떨어져도 한국말로 컨버팅 해야 그나마 재밌게 봐줄만 하다. (오페라는 한국말 컨버팅 자체가 무리다.)
요즘의 현대인들이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바로 이런 내가 보는 유투브 오페라 감상식 이다. 그것이 무엇이라는 대충 호기심만 충족돼면 바로 다른 흥미꺼리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잡다한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접하지만 실제 자신의 것으로 습득하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다.
수학책을 죽 훝어보면서 글자는 이렇게 생겼고 기호는 이렇게 생겼고 책은 다 봐서 안다고 하면서 정작 문제는 한 문제도 풀어보지 않는것과 같다. 과연 그 사람은 수학을 공부했다고 할수 있을까..
며칠간 하루 만여명씩 쏟아져 들어오는 방문객들을 보면서 또 다음 메인에 걸렸구나..알아차린다. 확인해보니 역시나 메인에 소개돼있다. 이전엔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면 이유를 몰라서 어리둥절 했는데 지금은 경험으로 유입이 기타로 분류되도 메인에 걸렸음을 바로 안다.
몇만명 한꺼번에 몰려 들어오지만 그렇다고 구독자가 확 늘어나지는 않는다. 해당 포스팅만 읽고 다시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는 이야기. 잠깐의 흥미를 끌지만 나의 다른 주장들에 관심을 두고 동조하는 구독자를 늘리지는 못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된다. 그러나, 포털 메인에 소개되고 불특정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시 집단 의식에는 큰 영향을 준다. 과거엔 광장에 나가 팻말을 들고 목놓아 소리쳐야 했던것들이 실시간으로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톡톡 거리기만 해도 여론을 만들어낼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가만히 방안에 앉아서 병실 침대에 누워서도 하고싶은 말을 세상과 나눌수 있다.
댓글부대, 실시간 검색어 조작 등으로 여론을 조작하는것도 가능한 세상이다. 언론의 공정성과 중요성을 새삼 알게된다. 뉴스들을 보면 미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미친 시대가 나를 맘놓고 아프게 놔두지도 않고 맘편하게 새로운 판타지 창작일에 몰두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토착왜구' 란 말이 근래 유행하는 것처럼 한사람의 생각이 순식간에 퍼져나가 전체가 동조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너무 쉽게 얻는 정보는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함정이 있다. 보석을 보면서도 그것이 보석인줄 모르는 눈뜬 장님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삼장법사가 오랜세월 인생을 걸고 서경에 가서 가지고 와야하는 불경도 누구나 클릭 한번에 볼수있는 세상이다보니 대부분이 그 가치를 알지 못한다. 단순히 공짜냐 돈을 내느냐로 컨텐츠의 가치를 재단할뿐이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가장 돈을 쉽게 지불하는 정보는 성인 에로물들이다.)
나는 죽음과 맞서 살아날수 있는법, 육체에 매달려 끌려 다니는 에고 의식이 아닌 자신의 육체를 조절 하며 주인으로 사는법 등에 관한 체험과 정보들을 4년간에 걸쳐 꾸준히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 그것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이는 아주 적음을 본다. 제목 자체를 '모모 하는법'등 자극적이고 직설적으로 만들지 않아서 그렇다. 현대인들은 생각하거나 깊이 들어가는것을 싫어하고 즉석에서 인스턴트 답을 얻는걸 원하니까.. 죽음과 노화에 대해 그런식으로 즉석에서 얻을수 있는 답은 어디에도 절대 없다. 삶이 그렇게 가볍고 단순한 게임이 아니어서 그렇다. 나 역시 죽음을 앞에두고 시작한 기록이 4년이 되어가는 중이지만 아직 완벽한 결론에 도달한것은 아니고 지금도 꾸준히 최종 답을 향해 가는중이다. 시간이 요구될뿐이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정보를 주어도 그 말하는 바를 알아듣고 자신의 것으로 도움을 얻어가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다. 내가 기록한 글들은 의식 변화의 흐름을 '공감' 하는것에 그 보석이 숨어있지 제목들만 가려서 몇개 훝어보고 '정보'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얻어갈 것이 거의 없다. 더 자극적이고 재밌는 것들이 유투브에 널려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괜한 흥미 거리로 취급 되고싶지 않아 일부러 자극적인 제목은 붙이지 않는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다. 나는 삶에 대해 목이 마르다.. 그래서 우물을 판다. 내장이 없고 허리 27 사이즈, 50킬로 가녀린 여성 몸매와 쭈구렁 해골 할아버지 얼굴과의 부조화를 없애기 위해 고심한다. (정말 어색하고 맞는옷도 없어 이상해 보이지만 조금씩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반면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과 노화에 대한 목마름을 당연한듯 여기고 한탄 하면서도 순응한다. 그것이 나와 일반적 사람들과 다른점이다. 우물을 파고 내가 일일히 목마른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물을 떠먹여 줄수는 없다. 아무나 찾아 먹을수 있도록 내가 파논 우물을 공개 하는것이 산정특례로 나를 살려놓은 국가와 의료보험 세금 내준 시민들에 대한 내가 할수있는 지금으로선 최선의 보답이다. 그러나 뉴스보듯 모든 지식을 정보로만 받아 들이는 사람들은 수학 문제집을 보면서 한 문제도 직접 풀지 못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구경꾼이 될뿐이다.
공감이란 것이 얼마나 파워풀한 작용인지 아는 사람만 내가 목숨을 담보로 캐낸 보석을 집어들 것이고 내가 파논 우물에서 나와같은 물을 마실 것이다. 대부분 집단의식에 맞서는 나의 주장들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한정적이 될수밖에 없을테지만 그들이 현재 인간종의 한계를 거부하고 인간 의식의 진화를 끌어가는 선두주자들이 될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추석과 가을이 또 왔다. 죽음으로 빨려 들어갔던 2017년 추석은 영원히 기억될 만큼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가을 이었다. 어느새 2년이 지났다. 앞으로도 추석이 올때마다 그때 병원에서 맞이한 어느 멋진 가을날이 계속 생각날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나..세명이 동시에 죽음의 문턱을 향해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창자를 꺼내놓고 살수도 죽을수도 없이 한숨만 쉬던 시간들..삶의 마지막 이라 느꼈던 인생에 있어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가을이었다. 당시에는 될대로 되라 무조건 지나가리라 아무 생각없이 한숨만 쉬었는데 지나고 보니 애잔하고 눈물겹다.
배는 갈라놨는데 부모님 두분이 동시에 돌아 가신다고 요양원과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내몸 돌볼 여력도 없이 마음놓고 죽지도 못하고 그 뒤치닥 꺼리를 해야했던 막막한 현실, 창자 끄집어낸 대수술을 막 마친 환자가 주렁주렁 약봉지 매달고 기어 다니면서 병원비를 마련해야 했고 서운함에 햇살 비치는 병원 마당에 기어나와 시월의 어느 멋진날에.. 이 노래를 들었다..
시월의 어느 멋진날에
가을의 노래 - 김효근 작곡 /송기창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