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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Dec 15. 2019

세상은 변해가고 사람도 변한다.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내며..


3년반만에 일반 사회와 조심스레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가까스레 50킬로 체중을 맞춰 최소한의 눈살 찌푸림은 면한것 같고 변하지 않은 교통체증 과의 스트래스도 감수해가며 사람들 무리속으로 들어가려 하고있다. 지금의 내 컨디션으로 감수할수 있는 한계가 디까지 인지 몰라서 선뜻 승낙은 못해도 이것저것 일꺼리도 가능 불가능을 저울질 중이다.


근3년만에 겪어보는 엄청난 교통체중 속에서 망년회라고 이리저리 옛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길거리에서 대부분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술자리를 가져도 나는 혓바닥으로 맛만 보는 수준이기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서 술자리를 가진후 새벽에 귀가해 잠은 안자고 다음날 낮까지 영화를 보기 시작한다. 하루종일 운전하고 이삼일에 한번 자도 현재로선 몸에 별다른 무리는 없다.



사람들은 전부 각자 나름대로의 의식 리미트 한계선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 기준이라는 것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해간다. 만족이란 기준은 계속 현실보다 위로위로 높아가기만 한다. 예전의 나 역시 그러해서 이해는 한다.


며칠전 암환자 국가 케어 시스템에 대해서 암환자 대상으로 설문조사 전화가 왔다. 나는 산정특례 제도와 의료보험 제도에 대해 당연히 매 항목 모두 매우만족 을 말했는데 설문조사 하는분이 격하게 감사하다고 하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대부분 환자들이 부정적 대답을 하며 나처럼 매우만족 긍정적 대답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아마도 대부분 암환자들은 노인들일것이다.


도데체 나라에서 95프로 치료비를 대주는 세계 최고로 잘돼있는 산정특례 의료보험 제도에도 불만족과 불평을 하는 국민 의식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감사함을 망각한 이기적으로 병든 노인들의 에고 의식이다. 치료비를 거의 나라에서 전부 내주면서 도리어 공무원이 죄인처럼 저자세인것도 이상하고 환자들은 감사하다고 절을해도 모자랄판국에 더 내놓으라고  불평하는 모양새도 정상은 아니다. 미국사는 동생이 매달 백만원씩 보험료 내면서도 절차가 까다로워 섣불리 병원가기 꺼려한다는 미국의 사립보험제도과 비교해 보라.


캐릭터 자체가 항상 어렵다고 아쉬운 소리만 하던 사람들은 과거와 비교해 상황이 아무리 좋아져도 베풀기 보다는 계속 어렵다고 남에게 하소연 하는것이 습관인듯 하다. 항상 자신은 타인에게 위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에너지 피딩하는 타입이 대부분 그러하다.


투기로 아파트 몇채를 팔아서 시세차익을 몇억 벌었다는 후배는 세금때문에 죽겠다고 징징대고 혼자사는 친척은 의료보험료가 한달에 50만원씩 나온다고 못살겠다고 투정이다. 도데체 얼마를 벌어들여야 혼자 살면서 의료보험료를 50만원씩 내는지는 모르겠으나 나같은 사람은 그런 고민좀 해봤으면 좋겠다. 한마디로 너무 먹어서 배불러 힘들다고 굶는 사람 앞에서 하는 투정들을 듣고있자니 나는 부럽네 웃음밖에 안 나온다. 혜택을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불만족 스럽다고 하는것 보다는 그래도 내주는 쪽 불만은 이해는 된다.


주변의 인생이란 모습들이 각자 말년에 가서야 그 제대로된 모습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반백년 완연한 중년에 들어서니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변해있다. 젊은시절, 쌀이 없어 내가 쌀가마를 사주었던 후배는 지금은 수백억 투자받는 중소기업 총수가 돼어있고 그 반대 케이스도 무진장 봐 왔다.


인간의 본능과 욕망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란 사다리는 위로 올라갈수록 언제나 만족을 모르고 위를 쳐다보고 살아 가게끔 설계 돼어 있지만 반면, 아래로 추락할시도 마찬가지 룰이 적용된다. 어디가 진정 바닥인지 모를정도로 계속 추락하기도 하는데 자신이 인내할수 있는 한계라고 생각하는 바닥을 통과 하고 견뎌내기가 쉽지가 않다. 높이 올라가 있는 사람일수록 그 테두리 한계는 얇고 허약해서 작은 계층 변화가 조금만 나도 의식은 쉽게 무너지기 쉽다.


대부분의 자살은 자신이 설정한 한계 테두리선 안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그 상황에 처하지 않은 타인이 이해 하기가 쉽지 않다. 밑에서 보면 그 정도를 못참는다고 엄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사자 입장에선 그 정도가 의식이 버틸수 있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건강 보다도 금전 부분에서 특히나 부유한 계층 여성들은 취약하다. 일정 수준 놀고 먹을수있는 재력이라는 안전망이 사라지면 자신은 죽는다고 두려워 하는 여성들 젊을때부터 참 많이 봤다. 


오락삼아 고생을 재미로 하는 사람들도 많다. 젊을때부터 벤츠만 몰던 사람이 나갈일 없으니 차팔고 지하철 버스타고 다니니까 너무 재미있고 좋다고 뚜벅이 자랑을 하기도 하고 무료한 일상을 벗어나려 궂이 손해보는 장사를 벌리기도 한다. 그러나 선택권 없는 계층에겐  배부른 자의 돈주고 취미로 사서하는 고생 타령이 귀에 들어올리가 없다. 그런경우는 언제든 싫증나고 진짜 힘들면 그만두거나 환경 자체를 바꾸는것도 쉽게 할수 있으니까 고생을 원해서 취미로 인생을 즐기는 것뿐, 타인이 걱정해줄 이유는 없다.



인생이란 결코 예측과 설계가 가능한 선에서만 항상 사건들이 일어나는것은 아니다. 내장들을 다 잘라내버리고 텅빈 뱃속에 해골 몸매로 변한 지금의 내 모습은 불과 몇년전에만 해도 감히 상상도 못했던 현실이다. 몇년사이 나에겐 예측과 상상을 불허하는 극적 변화가 일어났는데 확률로 따진다면 사고사도 가히 복권 당첨 되는것과 같은 확률이다. 단지 복권처럼 즐거운 일이 아닐뿐 예측하지 못했던 급변이라는 확률면에선 동일하다. 같은 확률에서 항상 예측불가 사건들이 나쁜쪽으로만 터지라는 법은 없다. 나에게 급작스레 닥친 악운을 예측못했던것 처럼 당연히 예측못한 행운도 닥칠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속편히 지낸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고난 역경을 잘 이겨내면 의식은 만큼 튼튼해지고 왼만한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나면 기억속에 경험치 레벨로 축적되고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것이 돼버리고 만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고의 기준에 함몰돼 있는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죽음과 금전앞에 허약하고 나약한 존재인지 실감하게 된다. 


적어도 죽음에 대한 경험치가 없는 사람들 눈에는 지금처럼 며칠간 안 먹고 잠도 안자고 내장도 없이 멀쩡히 하루종일 운전하고 사람 만나며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불가사의 처럼 보이나 본데 나 역시 지나기 전에는 그러했다. 이전엔 내장들 (위장,비장,췌장,대장) 없이 시치미때고 멀쩡히 살아가는 타인의 선례를 나 역시 들어본적이 없어서다. 내가 직접 경험 하면서 조금씩 정답을 알아가는 중으로 아직 정확한 확답은 못 얻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고 두려워했던 휠체어나 침대에 누워 숨만쉬는 장애 모습은 아닌것이 확실하다.


하늘은 각자의 영혼이 감당할수 있을 만큼의 고난과 시험을 허락한다. 단지 받아들이는 에고 의식의 차이가 그것을 이기느냐 못 이기느냐의 차이다. 창자가 터지고 내장을 다 들어내면서도 다른 환자들처럼 간병인 보호자 이런 사치스런 도움은 나에겐 허락되지 않았고 혼자서 병치례 사무적인 모든것까지 다 감당해야만 했다.  창자를 꺼내 놓고 통원으로 항암 주사를 주렁주렁 꽂은채로 병원비 마련하러 다니고 주변정리와 노환으로 돌아가실것 같던 부모님 두분 케어를 비롯, 거지꼴로 풍비박산 난 집안일들을 혼자서 처리하며 다녔다.


불행도 자신이 생각한 정도를 훌쩍 지나치면 그냥 어이없어 웃고 말게 되는거다. 3년전 그런 내 사정을 아는 친구가 자신은 나와같은 상황에선 분명히 죽었을거라고 이야기 한다. 나의 무한 긍정 마인드가 자신에겐 불가사의 라고 한다. 나는 기억은 없는데 죽기 직전 전남에서 부터 구급차로 실려왔을때 내가 친구한테 웃으면서 농담처럼 왔냐고 멀쩡히 인사 하더란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니 웃어야지 별수 있겠냐, 인생이란게 예측할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모험이니까 재미있는거지. 나는 뚱아리 다 망가지고 가진건 없지만 그래도 영혼이 품위가 있잖냐 안 그러냐? ㅋㅋ" 


30년지기 친구랑 술잔을 부딫치며 유쾌한 농담으로 즐겁게 웃어봤다. 스무살  자기는 40까지만 일하고 은퇴해서 짥고 굵게 살겠다고 친구가 항상 나에게 장담하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당시엔 강남 잘사는 집 자제로 주위에서 오렌지족 이라고 시기어린 손가락질도 받았던 친구다. 지나고 나서 보니 젊은시절의 자신감이 허풍이 되었음을 인정하고 코메디같은 인생을 뒤돌아보며 서로 크게 웃는다. 결과와 처한 상황이 어찌됐든 직접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현실이 바로 인생이란 것이고 그 실체란게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나이인지라 오랜지기와 함께하는 술자리가 더욱 즐겁고 여운이 남는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인생은 ING..  어디로 최종 결말이 흘러갈지는 알수가 없다. 맛있는 고기와 달디단 소주잔 앞에서 오랜 친구와 나누는 조촐한 망년회..


십년만에 처음으로 알게된것도 있다. 나는 내가 은시절, 여친에게 일방적으로 차인건줄 알았는데 친구는 내가 실질적으론 밀어낸것 이라고 책임이 무조건 나에게 있다고 한다. 서로 같은 시기에 어울리던 같은 친구들에 아직도 그들은 친구사이 인지라 중간자가 보는눈이 더 객관적일수도 있겠다. 젊은시절 마음도 의식도 철부지 어렸었다는걸 인정한다. 그 오묘한 연애 심리전을 당시엔 이해 못했으니까..


생활에 변화를 주기위해 얼마전에는 3년만에 처음으로 세일하는  와인을 샀다. 올해가 가기전 혼자 있을때 경건한 마음으로 촛불키고 따볼 생각이다. 행운이 가득찬 새해를 기원하며.. 죽네사네 하며 어물쩡 하다 훌쩍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50 넘은 중년이 돼 버린  다른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그렇게 흘러간다. 예측불가 인생이.. 다 끝난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내 앞길엔 기쁨으로 놀라운 일들이 가득할것이다. 그것이 맹목적 믿음이란 일방적 마인드다. 어긋나도 손해볼것이 전혀없기에 부담도 없다. 가볍게 살자


조동희- 행복한 사람[시그널]OST  

https://youtu.be/LzEFgL2F4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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