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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Jan 28. 2020

집단 광풍 "..때문에" 휩쓸리지 않기

그렇기 "때문에"  내 갈길을 간다.


구정 연휴기간 형 식구들과 함께 보낸 단촐한 가족모임. 라떼는 친척들 북적이고 윷놀이를 하던지 하다못해 쩜백 고스톱이라도 쳤지만 요즘은 모일 친척도 없고 두 가정이 모여봤자 각자 각개전투 모드로 스마트폰 들여다 보다 밥먹고 간다. 정신없이 세뱃돈으로 한몫 챙기던 라떼와는 달리 세뱃돈 줄 어른이 없는 불쌍한 조카들, 양보다 질이라고 하나밖에 없는 삼촌 이나마 세뱃돈 두둑히 챙겨준다.


중학생 조카가 그림 그리는것 좋아하는것 같아서 내가 만화 그리려고 장만했던 갤럭시 노트 프로 블렛 선물로 주니 좋아서 아예 끼고 지낸다. 


식구들의 변함없는 "..때문에" 타령에 이젠 같은소리 매년 듣기도 질려서 이젠 그만좀 하라고 타박을 한다. 현재 이 모양이 된건 전적으로 다른 누구의 탓 때문인데 그것이 가족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나이를 먹으면 그렇게 젊을적 상처들이 계속 되새김질 되는가 보다.


나이드신 아줌마 할머니 노인분들 모여서 하는 이야기 들어보면 90% 이상이 먹는 이야기뿐이다. 뭐가 맛있다 어떻게 먹으면 맛있다. 온통 음식에 관한 이야기 뿐이고 추억도 그렇고 먹는것에 평생을 집착한 관성의 법칙이 그대로 에고의 정체성으로 굳어져 있다.



요즘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나라 전체가 시끌한데 아침에 나와보니 자유로가 뻥 뚫렸다. 아침 10시 - 11시 교통체증이 사라진것을 보면 그 시간에 차몰고 나오는 사람 대부분이 꼭 필요한 일때문이 아닌 대부분 쇼핑 다니는 아줌마들 이라고 주장하던 친구의 이론이 그럴듯한 사실 입증과 함께 빛을 발한다.


며칠 집에서 뭉갰더니 게을러져서 아침에 현관문 앞에서 신발신고 나가기전 갑자기 '나가기 싫다..' 란 생각이 들었다. 딸깍 소리와 함께 아파트 현관문이 잠겨서 드라이버로 자물쇠를 분해하고 나올수 밖에 없었다. 밤에 들어가서 다시 조립해야 한다.


화를 내면 주변 전자기기 제품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아는데 무거운 수동식 자물쇠가 갑자기 걸려서 꼼짝도 안하는건 처음 당해본다. 나가면 안되는 뭔가 있다면 아예 더 큰 다른 사건으로 막을테고 자물쇠 정도는 단순한 투정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런다고 나갈걸 포기 하지는 않으니까.. 항상 생각을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


휴일에 조카들이랑 식사라도 하려고 삼청동쪽 경복궁쪽으로 나섰는데 사람들 바글바글 발 디딜틈이 없다. 경복궁은 당연 주로 외국인 관광객들. 이미 때지어 싸돌아 다니는걸 보면 중국산 바이러스 전파를 원천 차단할길은 없어 보인다. 


자신들이 행한 결과에 대해 스스로는 책임지지 않으려는 행태가 에고들의 "..때문에" 타령이다. 조만간 한국사회 전체에 "...때문에" 광풍이 밀려 올것임을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항상 예측대로 행동하고 사고하는 단순 패턴속의 인간이 무엇이 그리 잘났을까..



실시간 교통상황 이란것을 믿고 이리저리 차선 변경해봤자 결국은 거기서 거기인것이 남들도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빈 차선으로 우루루 몰리면 그 차선도 다시 막히고 언제나 집단의식 속에서 우루루 몰려 다니는 에고들의 무리에 휘둘려 이리저리 차선을 변경하느니  정석대로 가운데 차선으로 직진하는것이 결국은 가장 빠른길임을 알게 될때가 많다.


교통체증 사라진 도시를 지나 홍대에 나와서 여유있는 커피 한잔을 마신다. 거리도 썰렁하다. 교통사고로 매일 수백명이 죽는다고 해서 운전을 두려워 하며 살수는 없는법이다. 죽음을 항상 친구처럼 끼고 몇년 살다보니 너무 익숙해져서 일까.. 죽음은 더이상 나에게 두려운 대상은 아니다. (대신 아픈건 싫다.)


결과에 대해 자신을 되돌아 보기 보다는 항상 외부에 책임을 전가 하려는  '...때문에" 집단 광풍에 휘말리지 않는 나만의 한가함이 좋다. 인간 사회에 그나마 커피가 있는것이 얼마나 축복인가 말이다.


"때문에" 가 너무 많아 일일히 챙겨줄수 없는것이 삶이다. 커피.. 음악 때문에 오늘도 나른한 오후를 즐길수 있다. 당신이 있기 .. 때문에 나는 눈을 감고 그리움이란 포근함에 잠긴다. (희망사항임. 그런 사람이 없다.ㅜ) 


나에게 있어 "때문에" 는 항상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대상에만 사용하는 단어이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사용 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하루는 극과극으로 달라진다. 젊은이들을 꾸짖는 용도로 사용하는 '나때는 말이야' 는 젊은이들에게 'Latte is Horse' 신조어로 꼰대의 상징으로 조롱 당하지만 위로하는 용도로 사용하면 어른 대접을 받는다. 삶의 마술은 결코 어려운것이 아니다. 


https://youtu.be/swNP-oWfa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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