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성 1주기 : 휘성으로 돌아보는 케이팝 작사의 기준들> 후일담
지난 3월 10일, 휘성의 1주기 기일에 맞춰 아이돌로지에 ‘작사가 휘성'을 조명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내가 워낙 좋아했던 뮤지션이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 내 삶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해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날이 따뜻해질 때쯤, 그의 기일이 다가옴을 직감하며 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휘성의 작사곡을 살펴보려고 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를 추모하며 나올 법한 일반적인 레퍼토리를 조금 벗어나 비교적 덜 조명되는 영역을 비춰보고 싶어서였다. 그는 긴 활동기간 동안 방대한 디스코그래피를 쌓았지만 그 중 가장 핵심적으로 기억되는 영역은 정해져 있었다. 그가 떠난 작년 3월에 가장 많이 거론된 곡들은 ‘안 되나요', ‘With Me’, ‘전할 수 없는 이야기', ‘불치병', ‘사랑 그 몹쓸 병' 처럼 슬픔 가득한 발라드와 지독한 무드의 R&B였는데, 올해 1주기에도 아마 그 곡들이 주로 거론될 게 뻔히 보였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휘성은 다채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슬픈 얼굴의 R&B로 기억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부르는 노래도 열심히 만들고 부르며 청중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그는 음악 산업 내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가수 외에도 다양한 일을 했는데, 그 중 가장 성과가 컸던 영역이 작사였다. 그는 가수 히트곡 수만큼 작사 히트곡을 만들어냈는데, 이 곡 대부분은 가수 활동과 전혀 무관한 영역의 표현으로 가득하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휘성에 대해, 남들과 조금 다른 측면을 주목해보고 싶었다. 굴곡진 삶을 살다 40대에 떠나간 사람을 이야기하며 ‘다시 만난 날' 같은 곡을 들으면 견딜 수 없이 슬퍼지겠지만, 슬픈 얼굴로만 그를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양한 활동을 하며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던 전방위 뮤지션으로서 그를 기억해보는 게 그를 좀더 정확히 기억하는 방법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1주기에는 작사가 휘성을 다루는 글을 아이돌로지에 올리기로 했다. 왜 아이돌로지냐고? 그 작사 히트곡 대부분이 아이돌 곡이니까!
글을 준비하며 휘성의 작사곡을 이것 저것 떠올려 보았다. ‘너 때문에 미쳐', ‘마법소녀', ‘유혹의 소나타', ‘꺼져줄게 잘 살아’… 2000~2010년대 초반 케이팝에서 여러 의미로 손꼽히는, ‘숨듣명' 플레이리스트 꼭대기를 다툴 만한 곡들이 줄줄이 보인다. 우리나라에 아이돌 작사로 이렇게 욕을 많이 먹은 작사가는 없었을 것 같지만, 이렇게 각 가수를 각인시키는 가사를 많이 만든 작사가도 없었을 것 같다. 이제는 휘성의 가사가 왜 그 당시 악명을 떨쳤는지 이해가 가지만, 이렇게 오래 기억되는 곡과 말을 만들어내는 것도 분명 능력이다.
나는 이런 가사들을 읽어내는 기준, 혹은 이론적 근거로 <김이나의 작사법> 을 참고했다. 이 책은 현직 작사가의 시선으로 작사가라는 직무를 직접 정의한 책이다. 김이나는 이 책에서 가사는 듣고 부르는 글이며, 따라서 작사가의 일은 시인이나 싱어송라이터와 별개의 영역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가사를 예시로 들어 좋은 가사의 덕목으로 발음 디자인과 캐릭터 설정을 들었는데, 휘성의 히트곡 가사 절대다수는 이 기준에 정확하게 부합했다. 괜히 김이나 작사가가 2011년, ’너 때문에 미쳐’가 아직 신곡이던 시절부터 그 “철없게 철없게”를 언급하고 다닌 게 아니었다.
지금은 유튜브에 데모곡이 꽤 많이 풀려 있기 때문에 데모곡의 영어 발음을 한국어 가사로 바꿔내는 과정을 일반 청자가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휘성이 작사 히트곡을 많이 내던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송캠프 체제 확립 이후, 즉 유튜브에 데모곡이 풀리기 시작한 이후에 더 활발히 작사 히트곡을 냈다면 오명을 알아서 벗어났을 거다. 그 생각이 특히 확고해진 건 ‘Insomnia’ 파트를 쓸 때였다. 크레이그 데이빗의 원곡은 영어 발음을 이리저리 꼬고 뭉쳐서 복잡한 리듬을 만들어내는데, 휘성이 번안한 가사는 한국어를 사용하여 이 리듬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한다. 원곡의 그 “And then you walked into my life and it was all about us” 가 “잠마저 못 들도록 너를 보다 걸려든 병“ 으로 바뀌는 건 경지에 오른 솜씨 아닌가? 이 곡은 휘성을 아는 거의 모든 이가 기억하는 곡인데, 그 번안 가사를 자세히 분석한 사람이 아직까지 없던 게 더 놀라웠다. 그래서 일단 ‘Insomnia’와 ‘너 때문에 미쳐'를 첫 두 곡으로 정하여 그의 기술적 역량을 적어보기로 했다.
이후에 글에서 다룰 만한 곡을 골라보니, 그의 작사 대표곡 절대다수는 여자 가수의 컨셉추얼한 곡들이었다. 생각나는 남자 가수 곡은 본인 곡을 제외하면 서인국의 ‘애기야' 정도인데, ‘애기야'를 넣으면 성비를 기계적으로 맞추느라 글이 어색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이후에는 여성 캐릭터 스페셜리스트로 휘성을 정의한 뒤, 대중가요 상의 여성 캐릭터 도식을 휘성이 각 가수와 곡에 맞춰 변주해내는 과정을 글로 적었다. 화려한 ‘디바' 여가수의 곡을 여럿 작사한 남자 작사가라 요즘 세상에 활동했다면 더욱 흥미롭게 해석되었을 법한 사람인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새삼 옛날 청자들의 상상력 부족이 아쉬워진다.
나는 이번 글을 쓰며 <체인소맨>과 <룩 백>을 그린 후지모토 타츠키 작가를 떠올렸다. 그는 장면을 이어붙여 이야기와 감정을 만든다는, 만화라는 매체의 기술적 특성을 활용하는 점에서 동종 업계인들의 연구 대상이 된 사람이다. 만화가 지망생들이 후지모토 타츠키의 연출을 컷 단위로 뜯어보는 것과 김이나 작사가가 ‘너 때문에 미쳐‘ 가사를 상찬하는 게 기술적 측면의 분석이란 점에서 비슷해 보였다. 또한 후지모토 타츠키는 남자 작가이지만 매력적이고 다채로운 여성 캐릭터를 그려 오락적 재미를 주는 데에 능했다. 휘성 작사곡의 다양한 여성 캐릭터 표현을 다루며 떠올리게 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작사가와 만화가가 분석되는 방식을 비교해 보니, 노래 가사는 기술적 분석이 잘 안 되는 매체인 것 같아 새삼 아쉬워진다.
이처럼 기술적 측면에 집중하는 글을 쓰다 보니, 이 ‘기술'을 다루는 여러 요소에 대한 내 생각을 은연중에 드러내게 됐다. 첫 번째로 드러낸 것은 ‘다음절 라임'에 대한 내 의견이었다. 휘성이 SNP 출신임을 이 글 초입 ‘Insomnia’ 파트에서 넣기로 한 이유는, 글을 쓰는 내가 어느 순간 가사마다 라임을 따고 있어서였다. 그는 리듬이 평이한 구절에서 청각적 긴장감을 놓치고 싶지 않을 때, 혹은 입에 감기는 구절을 만들고 싶을 때 라이밍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 글을 준비하기 전에는 그의 작사곡에서 라이밍을 의식한 적이 없었는데, 글을 쓰며 자세히 들으니 어느 순간 귀에 라이밍만 들렸다. 이게 작사가 휘성의 개성 혹은 인장이자, 그가 SNP 출신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 아닐까?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라임 분석을 하는 글은 거의 대부분 힙합을 다룰 때였는데, 힙합을 통해 체화한 라이밍을 다른 장르에까지 널리 활용한 사례로, 한국 대중음악 내 타 장르에 힙합이 끼친 영향을 그려보면서 휘성을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았다.
두 번째로 드러낸 것은 ‘한영혼용' 비판에 대한 반발심이었다. 여타 2세대 아이돌 가사와 달리, 휘성 가사에는 영어 사용이 매우 절제되어 있다. 그 몇 안 되는 영어 사용 역시 그 목적을 어렵지 않게 가늠해볼 수 있다. 데모곡의 핵심 구절을 남겨놓기 위해, 특정 대목이 잘 들리게 강조하기 위해, 성적 암시의 수위 조절을 위해. 적어도 영어 사용을 위한 영어 사용이나 영어 남용이 아님을 증명하기엔 충분한 이유들이다. 여기서 조금 의미부여를 크게 해본 건 에일리와의 협업이었다. 수상하게 한국어를 잘하는 미국식 보컬로도, 수상하게 영어를 잘하는 한국식 보컬로도 들리는 그의 포지셔닝을 가능케 한 것은 그의 소속사 선배인 휘성의 관찰에 의거한 언어 배열 아니었을까 싶었다. 2020년대에도 영어를 많이 사용하는 한국 아티스트의 음악에서 외국 음악과의 어떤 차별성을 찾아야 하느냐며 영어 사용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는데, ‘한영혼용' 도 때로는 계산된 언어 사용으로서 분석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제시해보고 싶었다.
글에 있는 곡들을 나열하며, 이 글을 뒤늦게 쓰기 시작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문명특급>의 ‘숨듣명’ 특집을 필두로, 한때 음악도 아니라며 비난을 받던 2세대 아이돌 곡이 대대적인 재평가를 받기 시작하던 바로 그 시기에 썼어야 할 글인데 때를 놓친 것 같았다. 이미 한번 재평가의 바람이 지나간 음악에 다시 한번 조명이 올지 확신하지 못하고 글을 썼는데 웬걸, 글이 나온지 하루만에 그 계기를 최예나가 만들었다. 글을 올린 다음 날 나온 최예나의 신곡 ‘캐치 캐치'를 들으며 조영수가 아이돌 작곡을 다시 시작했나 싶었다. 얼마 뒤 티아라 은정이 최예나와 함께 ‘너 때문에 미쳐'를 추는 릴스가 나오자 나는 뒤집어졌다.
‘캐치 캐치' 뮤직비디오 속 단발머리 최예나는 이정현을 닮았지만, 이정현보다는 최예나가 직접 보고 자랐을 2세대 걸그룹들이 비교 대상으로 더 많이 거론되는 것 같았다. 이후 릴스에는 최예나와 나인뮤지스 경리, 애프터스쿨 가희가 함께 춤추는 영상이 또 올라왔는데, 최예나와 동갑내기로서 이 모두가 내 나잇대 추억의 인물이란 건 보장할 수 있다. 생전 처음 내 손으로 찾아듣기 시작한 음악이 이 시절 아이돌 팝이라, 그 시대에 누구보다 성실히 살았던 산업의 주역들이 한때 가수도 아니라는 식의 비난을 듣던 게 늘 안타까웠다. <문명특급> ‘숨듣명' 특집 때 미처 주목받지 못한 중요 인물을 꺼내보는 것이 글의 목표였다.
이번에 최예나가 너무너무 고마웠다. 시장 트렌드를 크게 고려하지 않고 쓴 글에 우연히 현재성을 만들어 줘서 너무너무 고마웠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런 경험이 나는 처음이 아니었다. 글에 뜻밖에 현재성이 붙는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해 준 글은 내 사실상의 필진 데뷔작 <김도훈으로 보는 K-R&B의 시대>였다. 이 글은 작성 중 <놀면 뭐하니>의 ‘MSG 워너비' 기획으로 인해 SG워너비의 히트곡들이 차트를 역주행하면서 내게 인생 첫 청탁의 기회를 제공했는데, 이 글의 모티브는 휘성, 그리고 ‘With Me’ 였다.
살면서 받은 사실상 첫 공식 지면에 소재로 쓸 정도로 나는 휘성을 좋아했다. 세련된 음악을 하는 멋진 보컬리스트로 그를 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나가는 모습이 보여서 더 좋아했다.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았고 위태로운 면도 있었지만, 그 위태로움 속에서 자신의 그늘과 치열하게 투쟁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공개한 게 좋았다. 빛나는 작업물과 퍼포먼스를 남긴 사람이지만 그에게 내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건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 덕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극복하고픈 결함을 조금 터놓고 얘기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조금 큰 창구에서 더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고 의견을 나눌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김도훈으로 보는 K-R&B의 시대>를 쓰고 이를 통해 민음사에서 첫 청탁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내게 타인과의 협업을 통해 괜찮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고, 그 자신감 덕분에 무사히 사회에 발 붙일 수 있었다.
그래서 그가 수렁에서 헤멘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분통이 터졌다. ‘MSG 워너비' 특집에도, ‘숨듣명' 특집에도 나올 자격이 충분했지만 나올 수 없었던 그가 유일하게 나온 방송은 재판을 다루는 뉴스였다. 베이빌론과 ‘Do or Die’를 냈을 때도, 친구를 통해 그가 2024년에 연말 콘서트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냥 반기지 못했다. 이 감정이 분노가 아니라, 실은 조명받을 이유가 충분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우상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는 걸 느낀 건 그의 부고를 들은 날이었다. 난 이제 살 만 해졌는데, 왜 그렇게 가 버렸는지.
그랬던 3월, 황망하고 추웠던 시절 가장 위안이 되었던 것은 앰플리파이드 팟캐스트의 휘성 추모 편이었다. 사회가 음악에 초점을 맞출 수 없던 시국이지만, 이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있다는 게 고마웠다. 이 영상 속 유승균 PD와 김영대 평론가는 90년대 PC통신 흑인음악 동호회에서 활동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기억 속 휘성의 과거와 그 시절 R&B의 흐름을 기반으로 가수 휘성의 업적을 정확히 짚었다. 이들의 내공에 비해 헛똑똑이였던 나는, 그 재미와 유익함에 반해 거의 매주 앰플리파이드 팟캐스트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김영대 평론가를 떠나보낸 채 휘성 기일이 다가오니, 같은 기억을 공유할 사람이 하나 사라졌다는 게 씁쓸했다. 아직 남아있는 나라도 이 기억을 남겨야겠다는 마음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추모글을 끝까지 완성하는 데에 큰 동기가 됐다.
슬프지 않은 추모글을 올리겠다 다짐했지만 쓰는 나는 조금 슬펐다. 글을 쓰며 가장 믿기 힘든 것은 지금 내 또래 남자가 ‘마법소녀' 가사를 썼다는 사실이 아니라, 휘성이 지금 안 살아있다는 거였다. 지나치리만큼 투철한 자세로 생생하고 활기찬 가사를 주로 쓴 사람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글을 쓰며 고민해 보니, 그는 그렇게 삶에 몰두해야 살아있는 것 같고, 삶의 이유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고단함 속에서 오래 기억할 음악을 남겨놓은 이에게 이제는 평안이 있길 바란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