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동양의 현인들은 '도(道)'를 말했고, 서양의 현인들은 '로고스'를 말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세상 만물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원리. 우주의 질서를 이루는 보이지 않는 이성적 원리. 그들은 모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존재의 증명이란 참 어렵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인간의 습성은 어쩌면 태초부터 우리에게 각인된 생존본능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만약 먹이를 보지 못한다면 그건 없는 것이고, 포식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안전하다고 믿었던 시절의 유산일 테니.
세상은 우리가 그저 보이는 대로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오히려 복잡계에 속하는 우리네 삶을 둘러보았을 때 오히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비바람이 불던 날, 바람은 만져지지도, 잡히지도 않지만 우리의 쓰고 있는 우산을 뒤집어버릴 만큼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전파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연결한다. 또한 햇빛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날씨가 풀린 요즘 내리쬐는 따사로움을 느낄 때면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런 것들이 바로 증명되고 받아들여진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과학은 이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끊임없이 증명해 왔다. 미생물이 코로나를 일으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중력이 우리를 당기고 있다는 사실을 뉴턴 이전에 누가 체계적으로 이해했겠는가? 누군가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기는 했겠지만, 그 현상을 '중력'이라 이름 짓고 법칙으로 정리하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깊은 관찰과 사유가 필요했음이 분명하다.
나는 우리네 삶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어쩌면 보이는 것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믿는다. 신뢰라는 것은 손에 잡히는 물건이 아니지만, 그것이 깨졌을 때의 충격은 자동차 사고보다 더 큰 시련과 아픔을 가져오기도 한다. 사랑은 대체 말해 뭐 해. 우리는 연인에게 '사랑해'라고 말은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빚어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희망은 또 어떤가? 인생의 바닥에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그 보이지 않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떤 날은 무기력에 빠져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든 날이 있다. 그렇게 몸이 부서지도록 힘든 날에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내 사람들을 책임지기 위해 이 상황을 이겨내고자 움직이려는 인간의 노력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숭고하기만 하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삶은 앞으로 향해 살아가지만, 뒤돌아보며 이해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현재 내가 나아갈 것인지, 여기서 멈출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가능성들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러나 그 무수히 많은 갈림길 속에서도 인간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뎌 왔다.
그렇기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두렵기도 하지만 그 공포 속에서도 선택해야 한다는 것. 인간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철학자는 이를 '실존적 불안'이라 불렀다.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선택해야 하는 자유의 무게는 때로 우리를 짓누른다. 하지만 그 무게를 짊어지고 걷는 것이 인간다움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생의 참된 의미는 보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에 있다. 뭉게구름 뒤에 숨은 태양을 믿고, 겨울 속에 잠든 봄의 새싹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모든 위대한 여정은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한 첫 발걸음에서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결국, 우리네 삶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너무 현실적이면 꿈을 잃고, 너무 이상적이면 현실에 좌절한다. 그 미묘한 균형점을 찾아가며 우리는 성장하고, 한 걸음씩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간다. 당신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것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리고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걸어온 모든 순간이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다면, 당신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