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을 파다 무엇이 나올지 몰라요.
몇 년 전 친한 언니가 본인의 전공, 직무와 관계없는 학부의 대학원을 다닐 때 이런 말을 했어요.
'대학까지 공부한 걸로 이만큼 직장 생활했으니까, 제2의 직업을 갖는데 또 공부하고 투자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
직장을 다니다 퇴사하고 사업하면, 누군가는 자신의 직무를 살려 컨설팅업이나 프리랜서를 할 것이고, 누군가는 자신의 직무와 연관된 일을, 누군가는 자신의 직무와 관련 없는 일을 하겠지요.
선택지는 다양하지만 그 안에 공통된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처럼 교과서가 있는 게 아닌, 말 그대로 '스스로 학습'을 해야만 하죠. 자신의 직무를 살려 사업자로 전환을 한다고 해도, 사업은 또 다른 미지의 세계입니다. 정말 간단한 사업자등록조차도 인터넷에 서칭 해보는 공부의 시간이 필요해요. 하나하나 새롭고 모르는 것을 마주하니 머리가 아파와, 매출이 높지 않아도 세무/회계, 노무, 관세, 마케팅, 특허 등 전문가를 절로 찾게 됩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여기저기 부업으로 월 몇백, 몇천을 벌 수 있다며 꼬드기는 온라인 위탁판매/구매대행업 교육/컨설팅업자들도 떼돈을 벌고 있지요. 저도 이 꾐에 넘어간 1인이기도 합니다:)
인스타그램 광고로 온라인 위탁판매 교육 커리큘럼을 우연히 접했는데 한번 클릭했더니 계속 제 알고리즘에 뜨더군요. 업체가 참 광고를 잘했어요. 유심히 상세 내용을 살펴봤는데 꽤 실무적이라 알아두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일이 너무 바쁘고, 집에 오면 탈탈 털린 영혼을 쉬게 해주는 게 우선이었으니 회사 일 외에 다른 곳에 에너지를 소진해야 한다는 게 엄두도 안 났죠. 그래서 처음에는 본인의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어 했던 동생에게 권유했는데 관심 없다고 딱 잘라 말하더군요. 들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다 나중에 동생 브랜드 론칭 때 입만 나불거리지 말고 이런 실무적인 거로 힘이 돼줘야겠다 싶어서 그냥 교육만 듣자 하고 신청해 보았어요. 그리고 실무를 들으며 사업자등록도 하고 실제 스토어 운영과 매출까지 내보니 '내 거'를 '내 마음대로' 한다는 재미와 회사 밖에 새로운 길을 걸어보았다는 자신감이 생겨, 근무시간이 아닌 개인 시간(출퇴근길-퇴근 후-주말)을 모두 쏟아부어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도 적잖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요. 교육을 받은 두 달 동안은 한주 한 주 미션이 있어서 수행하기만 하면 됐지만, 그 이후 제 몫이 된 순간부터 고비가 시작되었어요.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계속 가꿔주고 신경 쓰지 않으면 귀신같이 매출이 떨어지고 기반이 잡히지 않으니 계속 인풋을 투입해야 했죠.
인간은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던가요. 일에 쏟아붓는 스타일이다 보니 직장에서 탈진한 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 무언가를 또 할 수 있는 마음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습니다. 대체 투잡은 어떻게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내 거'를 하며 재미와 성취감의 맛을 이미 봐버린지라, 회사에 남아서 직장인으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어요. 이제 선택할 때가 되었구나 싶었고 내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했죠. 그러면서 해야 할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업 하여 N잡러로 파이프라인을 나눠서 수익을 내보자!라는 당찬 포부를 갖고 퇴사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어요. 하나하나가 다 공부일 줄은..
상품 카테고리별 필수 안전인증 항목, 전자기기 등 까다로운 제품들의 상세 속성, 세금 신고와 납부, 정부 지원 사업 신청, 스토어 운영 시 발생되는 CS대응, 대량 주문/공공기업 거래 처리 방법, 상표출원, 수입, 풀필먼트, 제조업체/공장 컨택 등..
한 번은 군대에서 대량 주문이 들어왔는데 후불 지급이 괜찮냐며 묻더군요. 엥.. 법인카드를 쓰면 될 텐데 뭐지. 하고는 교육 수료생 단체방에 괜찮냐고 물어보니 큰 매출을 내는 분들끼리도 의견이 엇갈리더군요. 어디는 하면 안 된다, 어디는 해도 된다. 결국 필요서류를 받아두고 후불 결제로 진행했는데, 결제에도 비용집행 부서와 주문부서가 달라 혼선이 있어 애를 먹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인터넷을 뒤지고, 국세청 고객센터에 물어보며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몰라요.
또 한 번은 회사에서 상표출원하는 걸 법무팀과 함께 했었는데, 이 정도는 혼자 할 수 있겠다 싶어 셀프 출원했죠. 이것도 어떤 특허법인 변리사님의 블로그를 보고 하루 종일 혼자 씨름하며 등록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찬찬히 살펴보니, 표기가 아닌 발음 유사성으로도 거절되는 경우가 있고 정말 별의별 사유로 거절되는 경우가 많아서 싸한 느낌이 왔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얼마 아끼겠다고 셀프출원하다 돈 날린 거죠^^
수입은 또 어찌나 어렵던지.. 업무 방식이 케이스별로 어떤지 꼼꼼하게 살피는 스타일이다 보니, A일 때는 어때? A'일 때는? A''일 때는? 그럼 B일 때는? B'일 때는? 을 파악하는데 대행사와 커뮤니케이션도 제때제때 안 되고 케이스별로 비용이 계속 달라지니 왜 달라지는지를 물어야 했지요. 관세청에 업체 등록도 하고, 수입에 필요한 서류와 절차들을 인터넷으로 계속 찾아보고 정리하는데 그런 두통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수입과 함께 3PL 풀필먼트를 알아보는 것도 마찬가지였어요. 6~7군데 업체별 견적 받아서 비교분석하고, 후기도 확인해 가며 문제점은 없는지 계속 살펴봤죠.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정말 피곤하게 산다. 싶었습니다. 급한 성격 대비 꼼꼼함으로 진도가 안 나가니 답답함도 몰려왔지만, 어쩌겠어요. 이렇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데.
얼마 전에는 브랜드를 론칭하며 새로이 사업자등록을 했고, 크라우드 펀딩과 새로운 플랫폼들에 입점할 준비를 하며 살펴보니 또 공부할게 한가득였습니다. 어렵게 기획한 제품을 필요한 수량만큼 만들 수 있는 공장을 찾고 컨택하고 메이드하는 건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내년에 목표하는 해외 진출과 수출은 어찌하나.. 막막하지만 또 공부해야겠지요. 그리고 내가 지금 공부한 게 당장 며칠, 몇 달, 몇 년 후에는 또 달라져있어 다시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씩 배워가며 실제로 해보고, 실패하고 다시 하는, 배움과 습득의 시간이 정말 길고 끝없을 것 같습니다.
대학만 졸업하면, 회사만 취직하면, 서른이 되면,... 조금은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제는 압니다.
인생은 끝없는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겠구나. 내 나이 일흔에도 공부할 게 있겠구나.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모든 게 변한다는 사실뿐'. 인생은 공부의 연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