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예능 프로그램에 효리 언니가 나온다고 하면 무조건 챙겨봤다. 평소에 잘 보지 않던 프로그램이어도 효리 언니가 게스트로 나온다고 하면 무조건 재밌겠다 하고 봤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효리 언니가 서울 데려가 달라며 유재석을 붙잡고 애원하던 장면에서는 숨을 못 쉴 정도로 웃었다. 최근 덴마크에 와서 예능 레전드 모음을 보다가 그 영상을 또 보게 됐는데 기분이 묘했다. 웃긴 건 그대로였는데 그 표정이 구슬퍼 보이면서도 간절함이 투영되는 느낌이랄까. 언니 저도 알아요 그 마음. 또 다른 내가 속삭이는 듯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덴마크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이런저런 기준에 따라 네 번째로 큰 도시로 분류되기도 한다. 세 번째든 네 번째든 뭐가 중요할까. 코펜하겐이 아닌데.
여태 코펜하겐 한번 못 가봤다. 그래서인지 뭐가 잘 안될 때마다 코펜하겐에 가면~ 노래를 불렀다. 코펜하겐에 가면 일자리도 많고~ 코펜하겐에 가면 덴마크 친구도 많이 사귈 수 있을 것 같고~ 코펜하겐에 가면~ 하면서 말이다. 무슨 시장에 가면 게임도 아니고. 지난 4개월간 좋은 핑곗거리였는데 산산이 부서졌다.
대사관에 방문해야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코펜하겐에 다녀왔다. 막상 가본 코펜하겐은 정말 별 게 없었다. 이미 다녀와 본 같이 사는 사람이 코펜하겐 가봤자 별거 없다고 할 때마다 괘씸한 인간이라며 저주를 퍼부었는데 진짜 그랬다. '북'유럽 스케일의 관광지는 겸손하기 짝이 없었다. 사람이 텅텅 빈 것도 한몫했다. 관광지에 가서 휘게 할 줄은 또 몰았다.
그래도 유럽이라고. 내리쬐는 햇빛에 2만 보 이상 걸었더니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팔다리엔 1도 화상을 입었다. 어릴 적, 계곡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느라 화상 입은 후로 처음이라 얼떨떨했다. 엄마가 해주던 대로 감자라도 썰어서 붙여놔야 되나 싶었다.
뜨거운 흔적을 안고 내가 사는 도시로 돌아오는 길. 도착 시간이 다가올수록 설레고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꼭 고향 가는,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집은 또 어찌나 아늑하게 느껴지던지. 멀고도 낯선 이 땅에 편히 쉴 수 있는 내 공간이 있다는 게 새삼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