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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P May 04. 2020

나 빼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운 나에게2

내 가족을 사랑해야 해

나는 꽤 오랜 시간 부모님을 원망했다. 20살 이전까지 극심한 과잉보호 아래 자란 편이라, 내 스스로에 의문이 들고 반성이 필요할 때면 나를 구성하는 것들의 근원을 부모님에게서 찾을 도리밖엔 없었다. 나는 밝은 인상과 솔직함으로 사랑받기는 했지만, 거리낌 없는 말과 말투, 지나치게 강한 의사 피력, 회의적인 태도로 숱하게 질타를 받았다. 그래도 처음엔 일단 고쳐보자는 마음이었다. 몇 해가 지나고 나서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나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았던 걸 알고 충격에 빠졌다. 왕따에 가까운 처우를 받으며 학교를 다니는 동안 내 상처만 들여다보느라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했고, 누군가에게 마찬가지로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청소년의 그럴 만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나는 여러 모로 참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를 보냈다. 다행히 내겐 ‘깡다구’가 있었다. 혹은 생존본능이었을 수도 있다. 딱 하나 지금의 나보다 그때의 내가 나은 점이다. 그 사회가 지속된다는 것을 알고 살아남기 위한 길을 모색한 것이다. 학교라는 울타리는 그런 식으로 사회성을 교육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운 선택이 제한된 상황에서 우리는 더욱 강한 힘을 낼 수 있다. 나의 잘못된 버릇을 찾고 바로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매일 밤 그날 내가 한 말과 행동을 되짚고 반성할 점을 찾았다. 중학교 3년 내내 상처를 끌어안고 있었다는 친구의 얼굴을 고등학교 3년 내내 잊지 않고 지냈다. 점점 변화하는 나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끊임없이 나의 오만과 편견이 빚어낸 실수를 만회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미래를 그려보려 했다. 반성의 과정은 원인을 찾는 데서 출발한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어떤 감정이었을까 등. 그러다 보면 내가 언제부터 이랬을까, 이건 왜 이렇게 안 고쳐질까, 라는 생각들로 이어지고 일부 성향은 부모님과 꼭 닮았다거나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심어준 관념, 함께한 시간의 조각들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닫게 됐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가족들과 대화하기만 하면 부모님을 향해 원망을 쏟아놓고 있었다. 그러면 또 미안하다고 하는 부모님의 태도 때문이었을까, 나는 날이 갈수록 기고만장해졌다.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방식을 고수하는 편인데, 부모님에게는 언제나 독한 자식이었다. 이래서 자식새끼는 키워봐야 소용이 없다. 물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고집 쎈 분들 사이에서 태어난 내가 고운 성격일린 없는 거라고.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원망은 일상의 짜증으로 이어졌다. 나는 부모님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족들은 점점 나와 대화하기를 꺼렸고, 그럼에도 나를 혼자 두진 않았다. 내가 필요해 손을 뻗으면 또 어딘가 상처나고 찢길 것을 각오하고서 기꺼이 보드랍게 손을 잡아주었다. 29살을 한 달 앞두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래도 시린 삶을 지탱해줄 수 있는 건 나와 내 가족 뿐이란 걸.

돌아보면 나는 반성을 넘어 내 자신을 부정하는 단계에 이르렀었다. 나를 부정한다는 것은 나를 있게 한 모든 것을 부정한다는 걸 의미했고, 결국 나의 탄생과 양육을 책임진 부모님을 나는 감히 원망하기까지에 이른 것이다. 몇 번 정도 ‘나를 왜 낳아서..’라는 생각을 실로 했으니 말이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상처 주고받은 시간들이 꽤 곪아서 세상이나 남을 함부로 탓하진 못했고, 결국 스스로 갉아먹다가 출처를 찾아 화살을 돌린 것일 테다. 조금은 세상을 탓해도 됐고, 아픈 말로밖에 돌려줄 줄 모르는 주위 사람들을 탓하는 것도 괜찮았는데 지나치게 스스로를 채찍질한 것이 역효과를 냈다. 나를 아끼는 법을 잊어서,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아서 오랫동안 스스로 질타해온 것이 부모님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말았다. 수치스러워 여과해서 적었지만 대못을 몇 번은 박았다.

어느 순간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니 부모님의 사랑을 바로 응시할 수 있게 됐다. 혹여 어긋난 가르침 아래 자랐더라도 바꿔갈 수 있는 힘이 내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생선 가시를 일일이 발라주고, 잠자는 나를 깨우지 못해 짜장면 해줄 재료를 준비하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빠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반복해 말한다고 타박을 듣더라도 내게 따스운 밥을 먹이려 전화와 문자와 질문을 거듭하고, 무거운 짐일랑 들지 못하게 하려는 엄마의 날 새는 줄 모르는 사랑만 오롯이 바라보면 됐다. 엄마 아빠도 부모가 처음이었잖아, 그 어렵고도 아린 시간을 이제야 나는 어렴풋이 이해할 것만 같다.

나는 여전히 보수적인 부모님 세대 특유의 허영에 핀잔을 주고, 동문서답하고 한 말을 하고 또 하는 엄마에게 짜증을 내며, 관심을 달라는 듯 말도 안되는 농담을 던지거나 지난 일과를 늘어놓는 아빠에게 심드렁한 반응으로 일관하지만, 적어도 매일 마음을 다잡는다. ‘내 가족을 사랑해야 해. 내 가족에게 더 따뜻해야 해.’ 그리고 무뎌진 날마저 품으로 자꾸 껴안으려 애쓰는 나 자신을 목도한다.




_2019년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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