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전시이자 나의 두번째 전시
너무나 바쁜 여름을 보내고 번아웃이 찾아온 나는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질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곤 무작정 그림에 손을 대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개인적인 소위 ‘슬럽프’라 일컬어지는 시기가 오면 아무렇지 않게 의연하게 물 흘러 가듯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꽤 오래 3개월을 쉬었다.
그동안 나는 새로운 직장에 적응했고, 간간이 들어오는 디자인 일을 했다. 프리랜서로의 삶도, 직장인으로서의 삶도 함께 가지고 갔다. 그러면서 나는 정말 9 to 6 의 직장인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되도록이면 이번 계약 기간을 끝으로 6개월 이상의 직장인 생활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차차 정리하도록 하자.)
아무튼 그렇게 가을을 지나 추위가 찾아오고 있을 무렵 나는 손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레퍼런스를 쌓기 위해 종종 핀터레스트를 뒤적거리곤 하는데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12월이 거의 다 되어서야 회복이 되었나 보다.
그리고 조금씩 연필을 끄적이기 시작했고 딱 그 시점에 DM을 하나 받게 된다.
평소 인스타로 DM이 많이 오진 않는다. 가끔 협찬 제의나 NFT 팔 생각 없냐는 외국인들의 메시지, 친구들의 스토리에 태그되는 경우 정도. 이렇게 쫌쫌따리?로 오는 DM들 중 가끔씩 유의미한 대화가 오갈 때가 있다.
관심있게 눈여겨 보던 갤러리 계정 중 ‘빈칸’이라는 곳이 있었다. 젊은이?들의 느낌이 물씬 나는 전시공간 플랫폼 같은 곳인데 그림 전시 뿐 아니라 조형물이라던지 공연/퍼포먼스, 심지어 글 전시까지 하는 복합 문화 전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는 곳으로 보여 흥미롭게 지켜보던 곳이었다. 언젠간 저기에서 전시를 해도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곳.
받은 DM의 내용은?
12월 연말 전시 참여를 권유하는 메시지였다.
(아래는 그 DM 중 일부)
세상에. 어쩜 이렇게 딱 맞아 떨이지는 타이밍일까.
한편으로는 올해 안에 오프라인 전시를 두 번 하자는 개인적인 목표가 있었는데,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새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것으로 올해의 목표를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조건들에 대해서 읽어보고 정말 참가해도 괜찮을지 신중히 생각했다. 상황도 맞아야 하니까. 결국 참여해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섰고 전시 참가를 결정했다.
첫번째 전시할 때와는 다르게 모든 준비가 순조롭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액자도 이미 있는 것으로 가능했고, 표구라고 하기엔 조악하지만 내 나름대로 앞대지를 만들어 그림을 액자에 맞게 넣는 작업도 수월했다.
갤러리측에서 어떤식으로 설치하면 되는지 잘 설명해 놓은 텍스트가 있어서 쉽게 계획을 잡을 수 있었다. 내 액자는 원목액자이긴 하지만 유리가 아닌 아크릴을 사용한 커버라서 가벼운 편이었다. 그래서 따로 못을 사용하진 않고 신문물? 접착제를 사용했다.
그림은 총 두점만 가지고 나가기로 했다. 접수부터 설치까지 일주일만에 진행해야 해서 많은 준비를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 그리고 캡션은 그림에 담긴 정서를 글로 적어 인화지에 준비했다. 전처럼 폼포드에 인쇄하는 건 너무 낭비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엔 인화지에 깔끔하게 인쇄해 갔는데 꽤 맘에 들었다. (한동안은 계속 이 방법을 고수할듯?)
짧은 시간 준비하는 전시여서 이번에는 무료 배포하는 작은 메시지 카드와 일반 관람객용 명함만 준비해서 비치했다. 남아 있는 재고를 거의 다 넣었고 추가로 더 만들 계획이 없는 것들이라 무료 배포하기로 했다. 그렇게 준비부터 설치까지 정말 며칠 걸리지 않았다.
이미 전시할 작품이 있었고, 지난 전시의 경험으로 자재와 요령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준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전시는 12월 9일 잘 시작되었다. 물론 나는 사무실에 출근을 해야 했으므로 들르지 못했고 14일 행사에 참가하면서 전시장을 둘러 보기로 했다. 인스타 피드를 통해 전시가 잘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빈칸의 인스타 계정을 통해 홍보도 되지만 내가 직점 못 간 현장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추가로 여의도 TP타워 미디어월을 통해 작품 송출도 진행될 예정이라고 안내 메일도 왔다. 처음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내용을 살펴볼 때에도 있던 항목이었다.
"영상의 길이와 참가자 수를 고려하여 모든 작품 송출은 어려우나, 칸 당 한 작품씩은 작은 면적이나마 반드시 확보하였음을 미리 안내드립니다."
실제 어떻게 노출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언급 덕분에 어느 정도 예상이 되더라. 실제 송출은 12월 20일부터 한달간 이루어진다고 하니 그 기간 중 한번은 여의도에 들러 볼까 싶다. (서울 촌사람이라 다행인 부분..ㅎ) 개인적으로 촬영해서 보정해 둔 그림 이미지가 있어서 일단 보내 두기도 했다.
그리고 14일 저녁에는 참가 아티스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고 하여 참여하기로 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다녀와서 기록을 남겨 보기로 하겠다.
이렇게 올해의 두번째 전시이자 나의 두번째 전시가 시작되었다. 그 시작부터 과정이 너무나 물 흐르듯 이루어져서 감사할 뿐.
마치고 철거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어져 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