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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융 Jan 05. 2017

파리지엔과 곱슬머리

한국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헤어스타일은 단연코 자연스러운 롱웨이브일 것이다. 나 역시 ‘손님 이거슨 고데기’ 머리에 크나큰 로망을 가지고 불과 재작년 초까지 긴 생머리 혹은 긴 웨이브 머리를 고수했었다. 

롱웨이브가 아니라면 고준희 단발이다. 한국에서는헤어'스타일' 자체보다는 염색으로 변화를 많이 주는 것 같다. 왜냐면 이 두 스타일 외에는 이렇다할 특징적인 스타일이 없기 때문이다.


곱슬머리의 추억

사실 한국에서 구불구불이 아닌 꼬불꼬불한 머리는 으레 아줌마 머리로 지칭되거나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어리숙한 첫 등장을 부각하기 위한 스타일 혹은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티를 풍기기 위한 스타일 정도로만 치부되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유전자를 반반씩 물려받아 강한 곱슬을 가진 나의 머리는 어렸을 때 늘 놀림의 대상이었고 그 지긋지긋한 ‘라면머리’를 타파하고자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매직펌을 시작하게 되었다. 근 20년간 지져지던 나의 머리는 그래서 늘 상해있었고 그랬기에 미용실에선 늘 숱이 많고 머리카락이 가늘며 곱슬이 엄청 심하고 상해있다며 늘 불평을 해서 죄인 취급을 받았었다. 아니, 이 사람들아 내 머리가 윤기 나고 생머리에 숱도 적당하면 내가 미용실을 왜 가, 동생처럼 안 가지. (동생은 나와 정반대로 강한 생머리의 소유자다, 유전자 몰빵!)

아무튼, 다행히 친절한 선생님을 발견하여 그분께 안착한 지 어언 10년이 넘었는데, 그분 역시 나를 볼 때마다 반갑게 웃으며 팔을 걷어붙이셨다. 10년동안 계속된 단발 회유에 굴하지 않던 내가 결국 생애 최초로 단발을 하겠다 말했을 때 그분의 표정이란. 


퇴사 후 이것저것 새 출발 하는 마음으로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그 당시 유행하던 혜리 언발란스 세팅펌을 하였다. 이 역시 나의 머리로는 원래 불가능한 것이었으나 기술의 발전으로 매직세팅이라는 것이 나타나 2배의 가격을 지불하고 그 머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변신은 성공하였고 나는 내가 단발이 이렇게 잘 어울릴 줄 몰랐다. 왜냐면 그간 들어온 미용사들의 말은 ‘고객님은 곱슬이 심해서 단발하면 절대 안돼요’ 부류의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원래의 머리로는 엄두를 못 내고 약 처리를 듬뿍하여 한국 표준 헤어스타일에 걸맞은 머리를 만들고 만족했다. 


그렇게 파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파리에는 정형화된 헤어스타일이 없었다. 

오히려 구불구불이 아닌 ‘꼬불꼬불’ 머리를 선망하는 것처럼 보이기마저 했다. 

가장 친한 이탈리아 친구는 한국 기준에서 정말 심한 곱슬인데 가슴께까지 머리를 길렀으며 그마저도 볼륨감이 덜하다고 불평 중이었다. 나는 예전에 그녀가 머리를 아이롱으로 쫘악 폈을 때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었기에 나름 쇼킹했는데 지내다 보니 그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것. 

그녀의 스타일은 이러했다. 딱 이 정도 컬에 이 정도 길이


워낙 다양성이 충만한 사회다 보니 정말 무궁무진한 조합이 존재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신선했던 조합은 금발 곱슬 (우리가 상상하는 곱슬보다 더한 폭탄머리급 곱슬) 머리이다. 회사 상사인 그녀는 주로 머리를 묶고 다니긴 하나 가끔 머리를 풀고 올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한다. 내가 이번 생에서 가지지 못할 야생적 카리스마가 +100 정도 탑재되는 느낌?

이런 느낌!


파리지엔의 헤어스타일은?


사실, 정의할 수 없다.


내 주변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금발은 생머리 아니면 위의 사진처럼 날아갈듯한 가벼운 곱슬머리이고,

갈색머리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고데기 웨이브 아니면 곱슬머리(웨이브부터 꼬불꼬불까지 다양!)이며

내가 아는 유일한 적발 여자아이도 소위 폭탄머리이다. 그리고 그녀 역시 카리스마가 넘치고 섹시하다.

이런 곱슬이다. 폭탄머리는 진리!

또한 흔히 흑인 곱슬이라고 하는데 흑인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드레드를 안 해도 되는 사람들과 드레드를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드레드 한 친구에게 후일담을 들어보니 머리와 함께 엮는 것이어서 이것도 시간이 지나 머리가 자라면 덜 예뻐지기 때문에 일시적 기분 전환에 쓰인 다는 것! 

드레드를 하지 않을 시에는 탄머리 처럼 보이는 가느다란 곱슬머리가 자라는데 이는 볼륨감이 엄청나 어떤 헤어밴드를 하든 멋짐이 배가 되는 마법의 머리이다. (나는 곱슬인데 볼륨감이 정수리에는 왜 없지!)

이들 뿐 아니라 파리지엔들의 볼륨감은 급이 달라서 거울도 안 보고 머리를 대충 묶어도 뽕이 장난이 아니며 심지어 머리를 삼일 안 감아도 구분이 안된다. (실제로 같이 이탈리아 놀러 갔던 친구들은 삼일 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다.) 

머리를 말리는 시간과 방법에 따라 컬이 달라지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컬이 생기면 웬만하면 머리를 안 감는 것 같다. 또한 흑인계 혼혈 친구는 촘촘한 컬을 살리기 위해서 세 시간 동안 자연 건조를 한다고 하니 이해될 것도 같고… 


그런 관계로 정갈한 매직세팅의 나의 머리는 다분히 재미없는 머리가 되어버렸다. 지금 와서 그때 사진을 보면 머리가 어찌나 두피에 달라붙어있는지…


또 나보다 훨씬 심한 곱슬들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원래 머리로 다니는 분위기에 휩쓸려 난생처음 매직 없이 지내보기로 결심을 했다. 그러기 위해선 머리의 매직기를 빼야 했기 때문에 벼르다가 작년 4월 한국에 잠시 들어갔을 때 과감히 전체 세팅펌을 했다. 머리는 내가 상상한 그대로 나왔으나 파리에서는 어색함이 없을 스타일이 압구정에서는 굉장히 신경 쓰이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간과해서 첫날은 어색함에 당장 집에 가고 싶었다. 


아무튼 인생 최대 도전을 하고 파리에 돌아왔을 때 느껴졌던 자유란! 

이제 머리가 새로 자라는 것에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유를 주는지 생머리들은 모를 것이다. (그런 분들을 위해 참고로 말하면 매직펌의 지속력은 매우 좋으나 새로 자라는 머리가 곱슬이기 때문에 새로 자라는 머리도 대략 3개월에서 6개월마다 한 번씩 뿌리 매직을 해주어야 헤어스타일을 유지할 수가 있다. 아니면… 굉장히 숭하다. 그리고 매직은 보통 미용실에서 가장 비싼 시술이다. 맨아워가 많이 투입되기 때문에! 아이고 내 돈!)


그래서 새 헤어스타일을 하고 첫 3개월은 굉장히 두근두근했던 것 같다.   

나의 원래 머리가 세팅펌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것인가 아니면 못나게 경계가 질 것인가.

결과는 대성공! 


빨리 자라는 머리 탓에 2개월에 한 번씩 머리카락를 숭덩숭덩 자름에도 불구하고 처음과 별반 차이 없는 헤어스타일을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파마머리가 남아있으므로 전부가 시술 없는 자연 머리로 뒤덮이면 또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일단 개인적으로는 7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경계가 지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또 아이러니하게 예전에 미용실에서 불가하다 선언받은 ‘물결펌’이 지금은 매우 잘 나오고 있다. 


그리고 머리를 바꾸고 부쩍 헤어스타일이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되었다. 인생 머리를 찾은 기분이다. 


아마 지금 머리로 한국에 가면 다시 매직이 하고 싶어 질 것이다. 

거기에서는 통하지 않는 헤어스타일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그렇기에 다양성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우리 모두가 원래 다 아름다운데 하나의 획일적인 기준을 정해놓으면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은 전부가 상대적으로 괴로워지니까. 


여기도 물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미의 기준이 있고 남자아이들 기준으로 ‘금발’을 선호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여자들이 전부 그에 맞추어 금발로 염색하고 매직하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원래 머리에 어긋나게 과한 염색을 한 사람들을 나무란다. 

자연스러운 ‘척’한 아름다움이 아니고 진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존중하고 뽐내는 파리지앵들이 부럽다. 


곱슬머리에게 자유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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