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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융 Jan 16. 2017

프랑스인들이 책을 끼고 사는 이유

어렸을 때는 매주 일요일마다 온 가족이 도서관에 가곤 했다. 

도서관에서 한 주간 읽을 책을 잔뜩 빌려와 한 주 동안 읽는 것이 나의 어린 시절 일과이자 낙이었다. 

뭐 대단한 거 읽은 건 아니고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끝없는 이야기 같은 서양 판타지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 셜록 홈스 같은 서양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상대도 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세 번 이상 꾸역꾸역 읽기도 했다. (하지만 만화 삼국지를 읽어서 그런지 상대 못할 레벨이 되진 않았다.) 

만화책 또한 좋아해서 시험이 끝나면 그 기념으로 만화책방에서 책을 한가득 빌려와서 하루 종일 읽고 그랬다. 특히 만화책은 명절마다 의지에 관계없이 강제 송환되는 친척집에서도 참으로 열심히 읽었는데 친척집 가는 것을 참 싫어했으면서도 부모님이 만화책 보는 것을 너그럽게 허락해주는 그 순간만은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 책 읽는 일상이 학년이 올라가고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며 뚝 끊기게 되어버렸다. 


오래간만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저주받은 아이도 순식간에 읽어버리고 나니 까맣게 잊고 있던 유년시절의 기억들이 마구 떠올랐다. 지금에서야 오래된 기억들이 생각나는 걸 보니 그동안 참으로 바쁘게 살긴 살았나 보다. 책을 그렇게 가까이했던 순간이 십 년도 훨씬 전이라는 것은 새삼 슬프다. 고등학교 이후에 책을 안 읽은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만큼 꾸준히, 많이 읽은 것은 아니었고 선물 받거나 꽂히는 작가를 만나면 몰아서 후다닥 읽어버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문득 비교하는 우리의 독서습관.


한국인의 독서
한국은 독서하는 나라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뉴스에서는 학교에서 책 읽는 아이들이 왕따를 당한다는 끔찍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고 최근에는 국내 2위의 송인서적이 부도나며 출판업계가 뒤집어지지 않았는가. 

또한 문체부 통계에 따르면 ‘15년 대한민국 성인은 1년 평균 9.1권의 책을 읽으며 65.3%의 성인이 지난 1년간 1권 이상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이는 20년보다 21.5% 감소한 수치이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국가 평균 독서율로 따졌을 때는 74.7%인 프랑스보다 0.4% 뒤쳐져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들 적어도 1권 정도는 읽나 보다.) 독서’ 습관’으로 넘어가면 차이가 확 날 텐데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통계는 없다. 독서 습관 대신 독서시장의 특이한 경향이 있는데 독서의 양극화가 심하다는 것, 여성 구매자가 64.2%로 거의 남성의 두배라는 점이다.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은 한 손에 꼽는다.

우선 부모님이 독보적 1위인데, 주말 오전 책을 읽으시는 부모님의 모습은 부모님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 중 하나이다. 그 덕에 나 역시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놓여있는 책들을 쉽게 접하게 되어 늘 감사하다.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네 명이 생각난다. 자기 방을 책으로 가득 채우며 좋은 글귀를 멋들어진 캘리그래피로 적어서 선물해주는 친구가 한 명 있고, 그 누구보다 센스 있는 깜짝 책 선물하는 것을 즐겨하는 언니가 한 명 있다. 그 외에 늘 나에게 영감을 주는, 본인이 읽는 책의 향기가 가득 풍기는 나머지 두 명. 


아무래도 어문 전공이어서 그런지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은데 전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게 슬프다. 오죽하면 ‘전철에서 책 읽는 사람 찾기’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까지 생길까. 


프랑스인의 독서

프랑스 사람들은 책을 참 많이 읽는다. 

통계상으론 한국과 크게 차이가 없지만 개인적으로 체감하기에는 프랑스인들이 36배쯤 책을 더 많이 읽는다.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서점 밀집도가 높은 나라이다. 도심의 대형 서점을 제외하고 지역 서점이 거의 사라진 서울과 달리 파리는 도심에도 버젓이 서점에 크게 자리하고 있으며 늘 문전성시이다. 지하철을 타도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으며, 회사나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너무도 당연하다. 책을 읽으며 이 작가가 어떻고 저 작가가 어떻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했다. 또한 이들은 대형서점보다는 점원이 직접 책을 추천해주는 작은 서점 가기를 즐겨한다. 


책과 더불어 종이신문 또한 많이들 읽는데 지하철 무가지가 아직도 존재하며 파리지역 잡지인 A nous Paris도 매주 월요일 지하철에 무료 구비되어있다. 메이저 신문들도 학교 카페테리아에 무료 구비되어 있어 언제든 가져가서 읽을 수 있다. 


모두가 책을 많이 읽으니 선물로도 많이 주고받는다. 

생일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등 다양하게 주고받는데, 선물 받는 이를 생각하며 고른 책과 그 안에 적힌 간단한 편지를 함께 받는 것은 언제나 참으로 기쁘다. 올 크리스마스에는 파리 엄마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는데, 벨기에 작가가 한국에서 쓴 소설이라 생각나서 샀다는 말에 더욱 기쁨이 배가 되었다. 현재 설레는 마음을 안고 읽는 중이다. 


그리고 특히 파리지앵이 책을 끼고 사는 웃지 못할 이유 중에 하나는, 지하철에서 인터넷이 안 터진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지하철에서도 와이파이에 LTE가 빵빵 터지면 책을 안 읽을 사람들이 조금은 늘어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파리의 지하철은 100년이 넘은 어르신이어서 인터넷은 커녕 전화도 안 터진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람은 자투리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꺼내 들게 된 것이라는 이야기. 


책에 대한 프랑스의 애착은 국민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인데, 2014년 아마존의 덤핑에 반하여 통칭 ‘반 아마존 법’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서점 할인 및 무료 배송 금지 법, 즉 독립 서점 지원법을 시행하였다. 이는 81년부터 시행된 도서정가 제법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다. 

그 덕에 온라인 서점 점유율은 18%에 그친다. (한국은 10% 할인이라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36%에 달한다.)


한국은 국민의 독서율을 높이기 위해 도서구입비 세액 공제마저 추진하고 있다는데, 그렇게라도 사람들이 책을 더 읽게 되면 좋겠다. 우선은 언제라도 읽을 수 있게 책이 좀 가벼워졌으면 하는 소망이다. 양장본은 예쁘긴 하지만 들고 다니기엔 좀 무거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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