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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융 Jul 07. 2017

파리지엔의 여름 패션과 노출

지지난주는 1960년대 이후 50년 만에 불볕더위가 찾아와 나흘 가량을 생애 최고로 무덥게 보냈다.

웬만하면 30도가 넘지 않는 파리에서 38도의 불볕더위가 웬 말인지!

이 특별한 더위는 Canicule(큰개자리)라고 불렸는데, 한창 더운 때 큰개자리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고대 그리스에서 '개의 날'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너무 더운 날이어서 개나 정신 없이 돌아다니는 날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참으로 옳다.

워낙 일년내내 시원해서 '냉방'에 대한 개념이 잡혀있지 않는 이 나라는 그야말로 갑작스레 찾아온 더위에 속수무책이었다. 버스에서는 뜨거운 에어컨이 나오고 그나마 지하철은 에어컨'도' 안 나오고... 가장 시원한 건 모름지기 옷가게!

밤에도 30도를 맴도는 열대야에 바람도 한 점 불지 않아 잠을 꽤나 설쳤었다.

이렇게 더위에 무방비한 파리지앵들을 보니 차라리 한국의 여름이 낫겠다 싶었다. 파리의 여름이 건조하다는 것은 다 기온이 낮아서 그런 거였지, 38도 되니까 한국보다 더 습하더라. 사람들의 강력한 체취는 보너스.


그렇게 더위로 문득 재발견하게 된 파리지엔의 여름 패션.


유럽은 한국과 노출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다르다.

한국에서는 하의실종 패션이 유행할지언정 상의실종 패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살 태우러 가는 해변에서도 살 태우기 싫어서 래시가드로 꼭꼭 감싸는데 무슨 상의실종을 기대하는가. 특히 한국은 클리비지를 내놓는 것이 거의 금기여서 나 역시 그런 옷들은 하나도 없다. 대신 옆구리나 등이 시원하게 뚫린 옷들은 자주 입고 다니는데 이 역시 쉽지 않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옆구리가 뚫린 나시를 입고 탔다가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너무나도 친절하고 안쓰러운 목소리로 '어머 아가씨, 옷 옆구리가 터졌네 어떡하니...'라고 하시며 내 옷 옆 자락을 계속 잡고 놓아주질 않으시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다간 반짇고리를 꺼내실 기세여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옮기긴 했으나 이런 분들이 한, 두 명이 아니라는 게 문제. 옆구리는 어머님들이 걱정이라도 해주시지, 앞 섭을 훅 팠다? 그랬다간 시선 강간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다. 한국에 교환학생 왔던 프랑스 친구는 그것도 모르고 평소처럼 가슴이 훅 파진 나시를 입고 다녔는데 그 끈적한 시선이 너무나도 불편해 다음부터 나시를 입지 못했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파리지엔들은 내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자유롭게 상체를 노출하고 다닌다. 그걸 처음 느낀 게 직장에서의 첫날 동료가 입고 있던 등이 '없는' 새빨간 블라우스 때문이었다. 물론 나도 등이 파진 옷은 좋아하지만 감히 그것을 회사에 입고 올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상한 파리였던 것이다. 예순이 넘은 할머니들도 자유롭게 하얀 니트 나시를 입고 나오는 스웨그!


반면 유럽에서는 가슴이 아닌 다리가 야함의 척도여서 다리를 내놓는 것이 과감한 행위이다.

생각해보니 다리가 엉덩이랑 더 가까우니 다리 노출이 더 자극적이라는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서 즐겨 입던 핫팬츠나 미니스커트를 하나도 가져오지 않고 린넨 바지로 여름 하의를 갈아타게 되었다. 실제로 그리 짧지도 않은 검은 원피스를 입은 날 버스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 뻔한 이후에는 웬만하면 치마를 입지 않게 되었다. 또한 친구 한 명이 핫팬츠를 입고 귀가하던 날 노숙자가 달려와 허벅지를 껴안았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고 더더욱 입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암묵적인 금기도 더위 앞에선 소용이 없더라.

지난주의 파리는 스페인 남부보다 더 과감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한가득이었고, 특히나 게이프라이드가 열렸던 지난주 토요일은 상당수의 남성들이 상의탈의로 길거리를 활보했다. 참고로, 프랑스에서 상의 탈의는 법에 저촉된다고 한다.


아, 참고로 이번 주는 내내 비가 와서 17도인데 사람들 패딩 입고 다닌다.

요지경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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