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피크닉의 계절이다.
파리는 1년에 6개월은 날씨가 안 좋고 6개월은 날씨가 참으로 좋다.
대략 11월부터 4월은 세상 우울하게 해도 짧고 비도 오고 뼈도 시리다.
그 시기 파리에 여행 오신다면 진짜 파리를 모르시는 것.
반면 5월부터 10월은 해도 길고 날도 좋아서 모두가 행복한 게 눈에 보인다. 식당이나 카페들이 테라스만 바글바글하고 실내가 텅텅 빈 풍경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6월 한 달 피크닉을 참으로 많이도 다녔는데 한강 치맥 애호가로서 파리에서도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피크닉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서 행복하다.
모두가 야외에 모여 앉아 햇빛을 쬐며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기는 것은 같으나 그 스타일은 한국과 프랑스가 예상하다시피 참 다르다. 요즘 한국에서는 피크닉에서도 텐트가 필수인 것 같던데 사실 개인적으로 텐트를 좋아하진 않는다. 바깥바람 쐬고 햇볕 쬐는 게 목적인데 그걸 다 가려버리다니! 하지만 이제 한강공원에서 주중 텐트 설치도 허용해줬겠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텐트를 들고 나와 이미 트렌드를 바꾸기엔 늦은 것 같다.
반면 프랑스는 피크닉에 텐트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해변에서는 몰라도 센느강이나 공원에서는 한번도 텐트를 본 적이 없다. 사실 파리에서 텐트는 너무나도 노숙자를 상징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안 쓰는 것도 있을 테고 햇빛이 귀하기 때문에 그 귀한 햇빛을 감히 가린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반면 한국은 햇살이 뜨거우니 가릴 차양막이 필요한 것일 테고.
그렇다면 프렌치들은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피크닉을 갈까?
1. 블랭킷
그들은 플라스틱 돗자리도 아니요, 텐트도 아니요, 바로 천으로 된 블랭킷(담요) 혹은 큰 수건을 깔고 앉는다.
하지만 이 블랭킷이란 것이 대부분 1인용 사이즈로 나와서 여럿이 피크닉을 오면 각자 가져온 블랭킷을 합쳐 둘러앉는데 그게 퀼팅처럼 보여 나름 예쁘다.
왜 돗자리를 사용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프랑스의 잔디밭에는 한국보다 벌레가 덜하다. 특히 개미가 적어서 아무것도 깔지 앉고 그냥 앉아도 무방할 정도다. 하지만 한국에선 어찌 그리 개미가 많은지 두꺼운 돗자리로 방어하지 않으면 모두 개미의 먹이가 되고 말 것이다. 또한 햇빛이 날때는 강력하게 나기 때문에 바닥이 그리 습하지 않은 것도 일조하겠다. 그렇게 파리에서 블랭킷을 사모으기 시작하는데...
2. 밀짚 바구니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모두 이 밀짚 바구니를 들고 피크닉을 온 것을 보고 '정말 이 나라는 TPO의 나라구나' 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집에 인테리어를 해보겠다고 수납장에 밀짚 상자를 올려 놓은 것이 전부인데 이 나라 사람들은 바구니를 사이즈별로 구비해서 용도별로 사용하더라. 거기에 위 사진과 같이 바게트도 담고 와인도 담는 등 이것저것 다 담아서 온다. 물론 그냥 아무 가방이나 들고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밀짚 바구니를 들고 온다.
물론 돈이 많으면 아래와 같은 루이비통의 피크닉 가방도 가능하다.
루이비통 전시회에선 정말 상황별 세분화된 가방들(기차 여행, 오토바이 여행, 자동차 여행, 비행기 여행 등)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한국에서도 이번에 한다니까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가보시길 바란다.
3. 바게트와 와인
너무나도 클리셰적인 소품이지만, 한국의 치맥처럼 프랑스인들의 피크닉에 빠질 수 없는 물품이다.
사람들이 피크닉에서 먹는 음식도 대략 비슷한데 와인이나 맥주 같은 주류를 필두로 바게트와 바게트에 발라먹을 파테 (간 고기 페이스트), 소스류 그리고 샤퀴 트리 (건조 햄) 종류가 치킨급으로 필수로 들어간다. 이외에 여유가 되면 삶은 새우도 가져오고, 훈제 연어도 가져오고, 타불레(쿠스쿠스 샐러드)와 과일, 후식 등도 추가된다.
곁들이는 주류는 계절 따라, 상황따라 다른데 여름에는 특히 로제 와인을 많이 마시고, 그 외에는 취향껏 화이트 와인이나 레드와인을 마신다. 축하할 일이 있으면 예외 없이 샴페인을 들고 와서 마시는데 그 맛이 또 일품이다.
4. 패션
패션이 빠지면 섭섭한 프랑스 인들은 피크닉갈때도 보이지 않는 룰이 존재하는 듯하다.
물론 젊은 이들은 기존의 패션과 관계없이 맘대로 입는 편이지만 30대 이상의 프랑스인들을 보면 정말 하나같이 맞춰 입은 듯 비슷한 복장으로 피크닉을 즐기는데 특히 남자들의 패션이 일관되어서 신기했다.
남자의 경우 밀짚모자와 화이트 혹은 하늘색 셔츠, 그리고 베이지색 반바지에 로퍼를 신는다.
여자의 경우 밀짚모자는 쓰지만 남자만큼 정형화된 룩은 발견하지 못했다.
지지난주 갔었던 피크닉에는 유달리 가족들이 많았는데 대가족에서 서너 명의 남자가 다 비슷한 룩을 하고 있어서 놀랬던 기억이 있다. 한국의 모나미 룩 저리 가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