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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나융 Oct 29. 2016

나에게 프랑스인이란?

봉쥬르 싸바?

프랑스를 처음 알게 된 건 여행 관련 서적을 늘 곁에 두신 부모님 덕분이었다. 여행과 등산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덕에 초등학교 때는 학교도 빠지고 국내여행을 다니고, 첫 해외여행도 부모님과 했었다. 우리 집 식탁에는 식탁보 대신 세계전도가 놓여있었는데 그래서 밥 먹다 반찬 흘리면 '너 브라질에 나물 흘렸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 당시 유명했던 바람의 딸 한비야, 먼 나라 이웃나라 등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세계여행을 꿈꾸고 (지금은 1년 만에 하는 몇십 개국 해외여행은 너무나 고행이고 수박 겉핥기인 듯하여  유학을 택했지만) 그중 프랑스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늘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어 했는데 우연찮게도 고등학교 제 2 외국어에 불어가 있어서 당장 불어를 신청하고 가고 싶은 대학교도 정하였다. 그렇게 원하는 학교에도 입학하고 프랑스에서 살다온 '언어 특기생'들을 보며 나도 저들과 같은 신비한 분위기를 가지고 싶다 느꼈다.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만의 분위기가 있달까? 영어와는 다른 그 낯선 매력은 다행히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 후 파견학생으로 처음 프랑스 땅을 밟았는데 그 당시의 6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지금은 7년이나 흘러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유학 대행사를 통해 편하게 구한 집이 도시의 외곽에 인접한 상수 처리장 옆에 위치한 정체모를 기숙사였다는 것과 가장 가까운 트램역은 아랍인 아파트 촌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무서울 법한 위치인데 어려서 겁이 없던 건지 크게 개의치 않고 잘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안타깝게도 프랑스 대학 총파업 시기와 겹쳐서 프랑스 친구들을 몇 명 만들지 못하였다. 그러니 여러 의미로 진짜 프랑스를 몰랐던 것일 수도 있겠다.


6년 후, 다시 온 프랑스는 내가 기억하고 상상했던 프랑스와 너무도 달랐다. 여행으로 몇 번 더 찾았을 땐 그대로인 것 같았으나 생활을 시작하니 느껴지는 이 극심한 '문화 차이'라니. 과거와의 비교는 차치하더라도 사람들만 놓고 보아도 다른 점이 상당히 많았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모든 파리지앵이 패션위크 때 찍힌 스트리트 포토처럼 아름답고 우아하지는 않다. 덧붙이자면 패션위크 때 요란하게 옷 입은 사람들은 다 외국인이다. 서울 패션위크를 생각하면 된다. 평소엔 보이지 않던 요상한 복장의 사람들이 동대문에 출몰하지 않는가.


아무튼, 이런 차이에 대한 발견은 나의 시리즈 전체의 주제이고 오늘은 특히 '프랑스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무심한 듯 시크한

흔히 파리지앵을 수식하는 형용사는 '무심한 듯 시크한'이다. 패션 쪽에서는 '프렌치 시크'로 파리지엔처럼 안 꾸민 것 같지만 멋있는 스타일을 의미한다. 헝클어진 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 올블랙룩 등...

물론 이 정의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일단 파리 사람의 전부가 백인은 아니니.

백인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면 실제로 무심한 듯 시크하다.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으며 포인트로 레드 립 정도 바른다. (물론 마스카라를 안 해도 속눈썹이 길고 풍성하지만.) 실제로 거울도 안 보고 대충 묶은 얘네 똥머리는 한국 미용실에서 돈 주고 자연스럽게 뽕띄우고 드라이해서 묶은 자연스러운 듯 헝클어진 똥머리와 차이가 없다, 질투 나게. 나는 원래도 화장하는 보람이 크지 않은 홑꺼풀인데 여기에서 3D 입체 얼굴들을 매일 마주하다 보니 그냥 애초에 포기하고 마음 편히 대충 화장하고 다닌다. 너무 편하다! 패션은 블랙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나 톤온톤 매치를 굉장히 잘한다는 점? 그런 파리지엔의 정신을 본받아 올여름에 처음 베이비핑크 바지를 샀다. (반응이 폭발적 이어 너무 만족스러웠다.) 이외에는 나 역시 블랙만 주야장천 입고 다녀서 한국에선 장례식 가냔 소리를 숱하게 들었고 프랑스에서는 '한국은 전통적으로 검은색이 근무복이니?'라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에서 사랑받는 아디다스나 구찌, 루이비통은 아랍인, 흑인 전용 템이다. 사실 아디다스 나도 좋아하는데, 여기서는 유달리 시정잡배들이 아디다스 츄리닝을 입고 다녀서 영원히 입지 않을 생각이다. 눈에 띄는 명품은 부촌을 제외하곤 잘 보이지 않는다. 회사 사람들도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1/3 정도? 그렇다고 명품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모로코 출신 대리님도 샤넬 2.55 노래를 부른다), 아무래도 구매의 우선순위가 좀 다른 것 같다. 사실 한국 잡지나 미디어에서는 백인외의 여성들을 볼 기회가 적은데 여기에서 새삼 이들의 매력을 깨닫는 중이다. 모로코 여성이 숨 막히게 예쁘다는 것도 알고 흑인 여성의 무궁무진하고 아름다운 가발 세계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프랑스 남자는?

프랑스 남자에 대한 비교는 사실 어렵다. 왜냐면 아는 남자가 10명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여초 사회!)

빈약한 표본이지만 10명 미만의 주변 남성들을 놓고 보았을 때, 남성다움이 최고의 가치이고 게이 같다는 게 최고의 욕이다. 그런 맥락에서 예쁘장하고 잘 꾸민 한국 남자 연예인들에게 질겁한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수염도 열심히 기른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한국 남자들보다 옷을 못 입는다. (그렇지만 누구처럼 캐릭터 티셔츠를 입진 않는다.) 하지만 이는 20대 기준이고, 아저씨들은 만국 공통인듯하다. 어쩜 그렇게 한국상사들과 똑같은지 시답잖은 농담 던지는 건 남직원이 유일하다. 그래서 너무 신기한 나머지 이를 송별회 때 인상 깊은 점으로 언급했는데 남직원 한 명이 아직까지 상처받았다며 나를 놀린다. 하지만 아재개그인걸...


개인주의

프랑스에 살며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낀 건, 본토 개인주의를 마주하고 나서이다. 한국에서 '어련히 알아서' 해주던 것들이 여기에선 적용되지 않는다. 당연히 같이 갈거라 생각하는 점심식사도 말하지 않으면 일이 있다고 여겨 같이 가지 않는다. 수업이 끝나고 귀가할 때도 같은 방향이지만 먼저 가버릴 때도 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같이하기 위해 누군가를 당연히 기다리는 편인 나로서는 처음에 굉장히 어색하고 싫었다. 지금은 그중에서 같이하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더 가까운 상태이다.

또 어느 날은 여럿이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한 커플이 다툼을 하였고 그들은 서운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앉은자리에서 말싸움을 계속하였다. 그 상황에 전체 분위기마저 냉랭해져 불편함을 느꼈으나 말리는 것은 또 괜한 오지랖인 것 같아 그냥 둔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내가 꽤나 개인주의적인 사람이라 여겼는데 이런 상황을 마주하고 보니 나도 집단주의적인 면이 있었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최대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불쾌한 일이 있더라도 웃으며 넘기는 Politically correct한 모습) 이들의 개인주의적인 면(본인의 기분이 좋지 않으면 상황에 관계없이 숨김없이 표출하는 것)에 되려 내가 눈치를 보게 되어 불편하였다.

물론 이들의 개인주의는 한국인의 시각에선 이기주의로 혼동되기 쉽고 나도 가끔은 그것을 배려심 부족으로 쉬이 연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새삼 나의 성격을 바꾸는 것도 여간 쉽지 않으니 얼추 적응하며 지내고 있다.


정말 개인주의?

이런 이들도 가끔은 개인주의가 아닌 모습도 보이는데, 예를 들어 개인주의라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남에게 피해가 안 가는 선에서)하는 느낌에 조금 더 가까운데 이들은 의외로 타인을 엄청 신경 쓴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 여자들에게 한정되는 건지 프랑스인 전체가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여자 기준으로 말을 하자면 내 주위 사람들은 너무 튀는 것을 싫어한다.  드레드 헤어 컬러를 고를 때 흰색은 너무 튄다며 보라색을 택하는 친구나, 쇼핑을 할 때 너무 튀는 아이템을 지양하는 친구들을 보며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사실 슬픈 사실은 프랑스도 노출이 심한 옷차림은 불미스러운 사건의 동기를 유발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곳에서 다리를 내놓는 것은 한국에서 가슴이 푹 파인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동급이어서 허벅지를 내놓는 순간 예상치 못한 불쾌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나도 딱 한번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를 입고 밤에 귀가하다 변태를 만나 이후로는 절, 대 치마를 입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치마 입는 아이는 손에 꼽는다. 또 다른 의미로 튀지 않게 입는 것은 튀어야 할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티에 가는 것도 아닌데 대낮에 하이힐을 신고 화려하게 꾸몄다면 누군가 당신에게 가격을 물어볼 수도 있다.


무심한 약속

한국에서는 별명이 캐싸돌이었다. 하도 싸돌아 다닌다고 전 회사 동기가 지어주었다. 여기서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한국에 비해 많이 절제하는 편이다. 고백컨데 여기서 처음 집에서 하루 종일 퍼져있는 주말의 즐거움을 깨우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근무시간의 고됨을 보상받고자 누구보다 열심히 놀았는데 이제는 집안에서도 즐겁게 노는 법을 배웠달까. 옛날엔 집에 있으면 하루를 잘 보내지 않은 것 같았는데, 지금은 일요일에 집에 있는 게 좋다. (물론 나가는 것도 좋긴 하다). 나의 이런 양상의 변화에는 프랑스인들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들의 형편없는 약속 개념이 그 이유이다.

코리안 타임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약속시간을 잘 지켰다. 그런데 프랑스는 약속에 대한 개념이 한국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속시간에는 보통 15분 정도 늦게 가고 남의 집에 초대받으면 최소 30분은 늦게 와야 예의라 생각한다. 한 생일 파티에서는 이를 감안하고 45분 뒤에 갔는데 두 번째로 도착한 적이 있었다. 또한 약속 당일에 취소하는 경우도 잦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 사람들,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몸이 안 좋거나 다른 사정이 생기면 약속을 취소한다. 오늘도 아픈 몸을 이끌고 학교에 가니 애들이 왜 학교에 오나며 식겁하였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정말 싫은 부분은, 일정 변경사항을 미리 알려주지 않고 당일에 물어보면 그제야 안된다고 하는 점이다. 그 부분은 전반적 배려심이 부족하다고 생각이 되어 화가 난 적이 몇 번 있다. 프랑스인들 모두가 그런 건 또 아니지만... 그렇지만 지금은 얼추 익숙해져서 여러 명이 약속을 잡으면 취소되겠거니 하고 신경 안 쓰고, 취소되지 않으면 웬일이야? 하며 나간다.


아날로그

프랑스인들은 너무 아날로그적이다. 파리부터가 100살 이상 먹은 늙은 도시인 것도 있으나 사람들도 전통적인 방식을 여러 부문에서 고수한다. 집 문은 열쇠로 열고 닫으며 도어록을 다는 것은 보안 위험이 크다고 여겨 반대한다. (나는 반대로 생각하는데) 학교에서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신문에 나온 크로스워드나 스도쿠를 하며 그마저도 끝내면 인터넷으로 크로스워드를 한다. 참으로 건전한지고! 지하철에서는 (전파가 터지지 않아) 책을 읽는 사람들이 늘 절반 이상 있으며 생일 선물로 책을 건네는 것도 흔한 풍경이다. 아 참 그래서 행정도 아날로그이다. 핸드폰 해지할 때도 우편으로 해지 요청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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