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나융 Oct 27. 2016

프랑스인에게 한국이란

강남스타일 말고

타국에서 한국인로서 외국인들과 조우하는 것은 늘 새로운 매력이 있다. 한국을 낯설게 볼 수 있는 당혹스럽고 신기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였지만 한국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내가 주로 교류하는 사람들만 놓고 보더라도 한국은 언론의 호들갑과 정부가 원하는 것만큼 ‘다이나믹’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이미지는 아니다. (강남스타일도 아니며, 평창 아라리오는 더더욱 아니다.) 물론 속한 무리와 개개인의 관심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크다 느꼈다. ‘한국인’이라고 하면 꼭 남한인지 북한인지 묻기도 하고. (내 논리에는 당연히 남한인데, 그런 정치적 상황을 모르는 사람도 많으니).


‘15년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한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15.5%의 프랑스인이 ‘한국전쟁’을 15%가 ‘북한’을 떠올리는 등 정치 분야에 대한 연상이 상대적으로 높았다.(3위 IT산업, 4위 케이팝) 이들은 한국 하면 북한을 자동적으로 떠올리고 김정은의 행보에 대해 당사자인 남한보다 더욱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김정은이 미사일을 쏘면 다음날 프랑스 친구에게 안부 문자가 오는 식이다. 물론 이러한 걱정은 한국사람들이 파리 테러 시 걱정한 것처럼 먼 곳에서 언론을 통해서만 접하는 소식이기 때문에 실제 느끼는 것보다 더 크게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을 이젠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북한 핵미사일 때문에 벌벌 떨지 않는 것처럼 이 곳도 테러 때문에 테라스에 앉길 주저하는 이는 없으니!


한국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그래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내 주변에는 주로 케이팝보다는 한국 화장품, 음식, 영화 등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흔히 자소서 문구마냥 한국 문화를 알리고자 외국 친구들에게 김밥과 떡볶이를 대접하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되어서 참 좋으다. 또 학교에서 문화, 예술 분야를 배우다 보니 나도 몰랐던 한국의 면모를 많이 발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 게임선진국인데(고급시계를 보면 놀랍지도 않지만), 세계 최초로 2005년부터 '프로게이머'를 직업으로 인정하고 해외 프로게이머에게도 취업비자를 발급해준 나라이다. 반면 프랑스는 아직도 온라인게임대회가 도박으로 분류되어 불법이며 이제야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육성 방안을 논하기 시작했다. 막상 한국은 앞장서 다져놓은 산업을 되려 규제하려고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이다. 그리고 저번화에 언급했듯이 한국의 영화산업 역시 인정받는 분야여서 참 뿌듯하다. 또한 2015-16년은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한-불 상호교류의 해’로 지정되어 지난 한 해 동안 파리에서 숱한 한국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었다. 강남스타일, 아리랑에 맞춰 춤추는 에펠탑의 불빛을 보고 마레지구에서 떡꼬치를 먹는 건 적어도 10년에 한 번 있는 기회이니 참으로 럭키하지. (물론 떡꼬치 하나에 오천 원이 넘었지만)


물론 일상생활에서 한국에 대한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들을 받은 적도 많다.


한 번은 회사의 동료가 ‘한국도 중국어를 쓰냐’라고 물어 인종차별인 줄 알고 기분이 나쁜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집트 출신의 그녀가 아랍어를 공용으로 쓰는 본인의 배경에 맞추어 '아시아=중국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녀의 말이 영 틀린 것은 아니고 반 정도는 맞으니까 뭐… 이젠 아침에 마주치면 한국말로 '안녕'이라고 인사해주신다. 그리고 나는 '앗쌀람 알라이쿰'한다. :) 아무튼 그 이후로 회사에서 꾸준히 동료들에게 한글을 알려주는데 굉장히 의외로 열심히 배우고 즉시 응용해서 보람차다. 프랑스인들이 발음하기 쉬운 '안녕', '피곤해', '배고파', '추워', '더워', '맛있게 드세요(의외로 쉬움)', '귀요미' 같은 일상회화를 알려주고 있는 중이다.


또한 작년에 한 생일 파티에서 조우한 한 50대 여성분이 내게 한 첫 질문은 한국의 자살률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이 질문을 듣기 전에는 자살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그 이후 검색을 해보니 한국은 12년째 OECD 자살률 1위 국가로 2위인 러시아와도 갭이 심하고 노인 자살률도 특히 많은 등 그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16년 4월 기준 10만 명당 자살인구는 한국이 29.1명인 반면 프랑스는 15.8명이다.)

그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는데,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고 실패에서 재기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문화적 차이도 크게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에 따르면 자살을 미화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한다고 한다.) 무리가 됨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경쟁하며 꾸역꾸역 자신에게 주어진 (따져보면 부당하고 불편하지만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혹은 문제제기를 해도 답이 없으니 그냥 짊어지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다가 한 번의 실패로 벼랑 끝에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많은 한국과, 본인의 의견을 중시하여 나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개인의 의견을 표출하는 (괜히 파업의 선두주자가 아니다) 프랑스. 프랑스가 한국에 비해 무조건 행복하다곤 말할 수 없겠으나 프랑스의 무리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이 날 이후 우리가 얼마나 무리하고 사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이럴 때는 프랑스가 참으로 부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근로자의 천국, 프랑스에서 일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