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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Jan 29. 2022

문에 대해서 1

문의 형태, 동작, 그리고 소리

"보통 네 개의 직선과 네 개의 직각으로 이루어진 사각형 모양의 커다란 판을 세우고 그걸 벽이라고 불러. 그리고 그 벽을 기준으로 구분된 한쪽 공간에서 반대쪽 공간으로 드나들기 위해서 벽에 너의 몸이 편안하게 들어갈 만큼 큰 구멍을 뚫는 거야. 그리고 벽보다는 얇은 판을 하나 구해와. 그 얇은 판이 퍼즐 조각처럼 구멍에 알맞게 들어가도록 자르고, 자른 판을 구멍에 끼워 넣어. 이제 경첩이라는 움직이는 관절 비슷한 부품을 서너 개 정도 이용해서 판과 벽의 한쪽 면을 연결하면 돼. 그 얇은 판이 문이야. 이 판을 손으로 밀거나 당기면 문의 작용과 기능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문의 실용성을 강화하고 싶으면 경첩이 달린 면 반대편 근처 판 어딘가에 손으로 잡기 편한 크기의 입체도형을 붙여. 특히 문을 당길 때 도움이 되는 건데 우리는 이 입체도형을 '손잡이' 또는 '문고리'라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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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쯤 전에 문과 뭔가 아주 긴밀한 경험을 했는데 그 후부터 문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원래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좋아했고 그래서 미술학교를 다닐 때 종이로 문을 만들어서 작품을 자주 만들기도 했다. 그 이후 내가 '문 카드'라고 부르던 그것들은 굳이 더 이상 만들지 않았지만, 몇 년 전의 그 경험 때문에 요즘 다시 문처럼 생긴 편지지를 만들고 나무 조각으로 미니어처 문을 만드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결국 외계인에게 문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는 꿈까지 꿨다. 대화가 너무 생생해서 꿈에서 깬 후에 기억나는 대로 적었다. 나와 통화를 할 수 있을 만큼 문명이 발달한 외계인이 지금껏 어떤 공간에서 생활을 해왔고 어떤 변화가 생겼길래 갑자기 문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꿈에서는 통화 상황이라 불필요해 보이는 디테일까지 섞었지만 이 외계인이 눈앞에 있다면 종이에 가위질 두 번과 접기 한 번으로 10초 만에 설명이 끝날만큼 문은 간단한 메커니즘을 가졌다.


심심할 때 나는 종이로 문 편지지를 만들어요.
문 편지지들을 엮어서 어설픈 책도 만들어요.


그래서 오늘 나는 문에 대한 글을 쓰려고 브런치를 열었다. 카페나 가게에서 흔히 보이는 슬라이딩 문이 아니라 위에서 설명한, 수동으로 열고 닫을 수 있어서 행위자가 문열림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문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나는 이런 수동문이 슬라이딩 문이나 자동문보다 언제나 더 좋았다.





문 정의하기


문은 고정되어 있고자 생긴 것이 아니다. 고정된 바닥, 벽, 천장이 먼저 생기고, 그 고정이 만든 공간을 효율적으로 정지 상태로 유지관리, 이용하기 위해 탄생한 것 같다. 그래서 본래 문은 정물이지만 형태뿐 아니라 동작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문이 문이려면 형태보다 동작이 더 중요하다. 다양한 형태의 문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열리거나 닫히지 않는 것은 문이라고 부를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락없이 문같이 생긴 것이 있는데 한쪽 면 이상이 경첩으로 연결되어있어 열리거나 닫히지 않으면 벽에 뜬금없이 붙어있는 장식이나 예술품일 수는 있어도 문으로서의 기능은 하지 않기 때문에 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아주 문같이 생긴 것도 열어 봤을 때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이거 문 아니야."라고 한다. 크기와 형태가 어떻든 문이 열리고 닫히기만 한다면, 문 바로 뒤에 벽이 붙어있어서 두 공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문 뒤의 벽의 잘못이지 문이 뭔가 역할을 못한 것은 아니다. 문은 열리고 닫혀야 한다.


문과 소리


문과 소리는 뗄 수 없다. 문은 그 자체로 "소리가 나는 어떤 것"이다. 다만 문은 시계 같은 것과 달리 행위자가 없을 때에는 철저하게 침묵한다. 시계는 내가 만지지 않아도 소리를 내지만 문은 마치 악기처럼 내가 건드리지 않으면 침묵한다. 따라서 문은 존재 자체만으로는 소리가 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적은 것처럼 문이 기능하려면 열리고 닫혀야 하는데, 문을 여닫을 때 소리가 나게 하는 것보다 안 나게 하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문은 "소리가 나는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문을 이용하면 안 또는 밖에 존재하는 소리를 꽤 많이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다. 구멍 뚫린 벽은 소리 파동이 쉽게 통과하는데 그 구멍을 얇은 판으로 막아놨으니 소리가 분명하지 않고 낮게 들린다. 그런 소리를 원한다면 문을 닫고, 분명하고 높은 소리를 들으려면 문을 열면 된다. 문열림 각도로도 소리 크기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문의 두께나 재질로 소리 조절의 용이성을 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문과 소리의 관계에 대해 진짜 흥미로운 점은 행위자의 의도가 반영될 때 특히 드러난다. 물론 바람의 세기에 따라 문소리 크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문과 함께 살아온 인간이라면 모두 이를 알고 있다. 하지만 보통 문 여닫음에서 나는 소리의 세기 조절은 행위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조금의 노력만 기울이면 문을 닫을 때 거의 소리가 나지 않게 하거나 집 밖에서도 들릴만큼 큰 소리가 나게 할 수도 있다. 누군가가 시계 소리를 갑자기 키운다고 해서 그게 그 사람의 상황이나 감정을 극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반면 문을 여닫는 행위자의 이와 같은 선택은 어떤 상황이나 감정을 표현한다. 흔히 소리를 줄이는 문 여닫음은 행위자가 처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큰 소리가 나게 하는 문 여닫음은 행위자의 <감정>을 설명하는 듯하다. 문의 실용성이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 자체는 침묵하지만 그 메커니즘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큰 소리를 내기도 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행위자의 어떤 개인적 의도(<상황> 혹은 <감정>)를 쉽게 반영한다는 부분이다. 문과 함께 살아온 인간이라면 자신의 상황 또는 감정을 문에 투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반영 또는 투영은 인간이 쉽게 조절할 수 있다. 따라서 종종 문은 인간의 거짓말을 돕는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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