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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Feb 21. 2022

문에 대해서 2

문의 공간 구분과 사생활

이전 글에서 문의 형태와 동작과 소리에 대해서 적었다. 이전 글에서 적었듯이 나는 문을 항상 좋아했지만, 최근 그 의미가 더 오묘하고 깊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문에 대해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 기록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문이 구분하는 공간과 의미에 대해서 고민한 글을 정리해서 적어본다. 몇 년 전 내가 경험한 그 일에 대해서도 적을 것이다.


 문이 구분하는 공간


문이 없는 벽들로만 세워진 공간은 감옥이다. 벽에 문이 생기면 우리에게 자유가 생긴다. 무언가를 가두거나 공간 사이를 움직이도록 하는 이동의 자유. 문이 연결하는 두 공간 사이에는 보통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물론 사생활이라는 개념의 유무와 크기의 차이다. 문이 두 공간을 연결한다면 어쩔 수 없이 한 공간에 있는 사생활과 개인적 특성의 밀도가 다른 한쪽보다 짙어진다. 개인은 문을 통해 사생활에 대한 나의 권리를 확인하고 행사할 수 있다. 보통 우리는 그 때문에 문이 필요하다. 우리는 문에게 보호를 요청한다. 특히 사생활 자체가 미신적 개념이 되어가고 있는 현대에서는 더욱 사람들이 문에 집착하게 된다. 현대에 사생활은 거의 환각이라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나에게 정말 사생활이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언제든 그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온 몸이 서늘해진다. 문을 닫고 잠그고 그 안에 있더라도 사생활의 불완전함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우리가 현대에 무형의 공간과 문을 너무 많이 만들고 그 안에 우리를 집어넣은 상태에서 또 무작정 문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혹시 기회가 된다면...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형의 문을 닫고 그 안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면 그로 인해 제공되는 사생활의 밀도가 갑자기 높아져서 우리에게 오감으로 너무나 명백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문 없는 공간에 존재하기를 힘들어한다. 문 안에서도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다는 위험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문을 닫은 공간에서는 그것을 너무나 쉽게 잊는다. 문이 존재 자체만으로 인간에게 주는 안정감과 위로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 공간이 내 공간이라고 느끼면 더욱 자주 쉽게 잊는다. 그렇게 문은 더 이상 완전하게 존재하지 않는 사생활과 같은 관념에 대한 믿음을 우리에게 계속 촉진하는 전지 같다. 이를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이용하고 있는지 우리는 고민해본 적이 있을까?


문과 사생활


문과 사생활은 매우 밀접하고 흥미로운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쓰고자 했던 강력한 유혹을 느낀 이유도 문과 사생활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어떤 경험 때문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2018년쯤 어느 날 밤 나는 거실에서 편한 자세로 TV를 보고 있었는데 시야의 구석, 불 꺼진 방의 문이 살짝 열려있다는 것을 문득 알게 되었다. 우리 집 안의 방이지만 내 방이 아니라서 자주 들어가는 방은 아니었다. 10년 넘게 살아온 우리 집에도 나에게 꽤 낯선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갑자기 뇌에 쑤셔 넣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나는 순간 큰 불안함을 느꼈다. 저 아무도 없는 불 꺼진 방의 공간에 있는(?) 존재하지도 않는 어떤 것에 의해 내 사생활이 침해된다는 이상한 망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큼은 저 공간이 내가 자주 가는 집 근처 카페보다도 먼 공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의 다음 행동을 결정하기까지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한번 시작된 이 모순적 망상은 파도처럼 시간의 간격을 두고 계속 찾아왔다. 방 안의 불이 꺼져있었고 나는 그 틈을 아무리 노려봐도 어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떤 존재가 저 안에서 몰래 그 틈에 눈을 갖다 대고 나를 보고 있다면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였다. 문은 동작이 없으면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때 느낀 불안함 자체보다는 불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다음 내가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에 놀랐다. 그 불안을 떨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나는 문을 완전히 닫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여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아는데도 굳이 어둠을 확인하고 맞이하고자, 문 뒤에 있는 투명한 괴물을 맞서고자 하는 마음으로. 어렸을 때도 나는 어둠을 크게 두려워한 적이 없었는데 그 순간은 무서웠다. 공백 확인보다 더 중요한 이유: 나는 어둠 속 무형의 괴물에게 사생활을 주지 않고자 두려움을 삼키고 문을 활짝 열었다.


어쨌든, 이 경험 덕분에 이런저런 궁금증과 생각이 많이 찾아왔다. 아이들이 옷장 안 괴물이나 침대 아래 귀신이을 두려워할 때 그 두려움은 사실 괴물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그것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 같은 것. 무섭다는 괴물 자체보단 내가 초대하지 않았는데 들어와 있는 어떤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라는 궁금증. 그래서 예를 들면, 내 방이 아닌 공간, 문으로 구분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아닌 곳에 있는 괴물도 아이들은 이토록 두려워할지 궁금하다. 숲이나 해변에서 만난 생소한 생물이라면 그곳을 당장 떠나야 할 정도로 큰 두려움을 느낄지. 탁 트인 도로에 놓인 궤가 있다면 아이들은 자기 방 안의 옷장만큼이나 열어보기 두려워할지.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생각보다 용감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비슷한 크기의 두려움이라고 해도 그 결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이 없는 야외의 괴물과 달리 '내 방 안의 괴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나를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괴물은 어둠 속에서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나만의 것이었던 공간과 나의 내밀한 일상을 잡아먹는다. 그렇다면 옷장 안의 괴물을 믿는 아이들은 비밀을 이해한 건 아닐까, 아이들이 비밀에 대해서 배우고 이해하는 순간 비밀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기는 건 아닐까, 옷장 문 열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겐 내 비밀을 이야기해도 되는 것일까?


(3편에서 계속)




막상 적고 보니 아직도 정리안 된 생각들을 그저 나열하는 것 같은..... ㅠㅠ

언젠가 제대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 떠다니는 생각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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