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 Jun 08. 2022

슬픔 또는 현실감의 부재

*본 글에는 죽음과 자살, 정신질환에 대한 묘사가 있으므로 읽으시는 분들께선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수니씨 시간 되실 때 연락 주세요."


열흘 전에 A 씨에게서 문자 연락이 왔을 때 나는 직감했다. 켈리가 죽었구나. A 씨와 나의 연결점은 켈리밖에 없다. 그리고 켈리는 지난 4개월간 연락이 되지 않았다. A 씨는 켈리의 이름조차 말할 필요가 없었다. 문자를 보는 순간 나는 켈리가 죽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친구가 죽은 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한때 켈리는 나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소개하곤 했다. 나에게도 켈리는 좋은 친구였다. 친구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지 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무덤덤할 줄은 몰랐다. 이제 겨우 20대를 마친 친구의 죽음은 나에게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았다. 뭐, 어쩌면 4개월간 연락이 되지 않는 동안 마음의 준비를 나도 모르게 했을지도 모른다. 켈리는 몸이 많이 아팠다. 하지만 나는 켈리가 완전히 회복하지는 않더라도 휠체어 위에서라도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픈 와중에도 쉬지 않고 일을 했고, 볼 때마다 에너지가 넘쳤고, 건강을 잘 챙기는 편이라 약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나아지고 있었다.



켈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작년 말에 봤을 때만 해도 멀쩡해 보였던 켈리의 병을 대부분의 지인들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갑작스럽기도 했지만 그 내용이 놀랍기도 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영적인 것들, 미신과 같은 것들에도 관심이 많았던 켈리는 나에게도 오라클 카드 세트를 선물로 준 적이 있다. 타로를 보는 것을 좋아했고, 읽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차크라나 오라 같은 것을 믿고 자신의 차크라를 깨끗이 하면 병의 증상이 어느 정도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고립되어 수년간 쉬지 않고 일하고, 그 일이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를 겪으며 아마도 켈리의 뇌는 영적인 관심과 외로움을 조금 더 위험한 것으로 키우고 있었던 것 같다. 켈리는 환청을 듣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자신을 공격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집 안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정신적인 병이 몸의 증상을 만들거나 키우기도 한 것 같다. 켈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공격하는 어떤 실체를 찾다가 떠났다. 지난 10년간 한국 어린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걱정하며 그에 대한 작품을 만들던 켈리는 자신의 정신질환을 제때 치료받지 못해 떠났다.


소식을 들은 뒤 며칠간 조현병에 대해 검색하고 글을 읽으며 공부해보았다. 조현병을 가까이서 경험한 것은 처음이라 궁금증이 컸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켈리는 조현병 초기의 증상을 겪은 것이 확실해 보였다. 발병 초기 4~5개월이 중요한데, 그 시기 동안 주변의 케어와 전문가를 통한 치료를 잘 받으면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고 필요한 약을 먹으며 평생 큰 문제없이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켈리 주변에 그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망상은 스스로 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치료를 설득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켈리는 고향을 떠나 한국에서 혼자 살았고, 룸메이트나 사귀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친구가 있었지만 소수의 친구들과만 가끔 연락했다. 친구들이 켈리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는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뒤늦게 친구들은 노력했지만 켈리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왜"라는 질문을 항상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죽음 앞에서 그랬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중력 때문이고, 세상 어느 것도 죽음을 피해 불멸성을 손에 넣을 수는 없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원인을 알고 싶은 마음을 이해했으나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를 죽였는지 묻고 싶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고 싶다."라는 질문이 왜 중요한지 느낄 수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않고, 이유를 명확히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죽음이 전보다 더 이해되거나 덜 이해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켈리가 죽은 후 나는 며칠 밤을 "도대체 왜?"라는 질문으로 보냈다. 정말 알고 싶었다. 켈리는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죽음이 삶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절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에 사고가 가로막혔다. 평생을 고민해도 답을 알 수 없는 문제였다. 화장장에서 화상통화 화면을 통해 본 켈리 부모님의 눈에도 그 질문이 읽히는 듯했다. 그들도 궁금할 것이다. 그들은 뚫릴 수 없이 가로막힌 길 하나를 평생 곁에 두고 살아가야 한다.



"나의 죽음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이 말을 켈리의 죽음 이후 절감했다. 켈리의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감정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들도 남겼다. 유작이 된 켈리의 작품은 온전히 켈리만의 것이 아니었고 참여한 모든 사람들, 편집자, 프로듀서, 작가, 배우 등의 지분이 포함된 작품이었다. 그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좋을지, 그렇다면 관련 과정을 어떻게 진행할 지에 대한 논의가 뜬금없이 화장장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논의의 때가 아주 옳지 않다고 느꼈지만 작품 파일이 포함된 켈리의 짐을 오늘내일 사이 미국으로 보내야 했기에 한시가 급했다. 나도 참여작가로서 의견을 내야 했다. 또 켈리의 집도 해결해야 했고, 짐들도 친구들과 지인이 정리해서 미국으로 보내야 했다. 발 디딜 틈이 없는 켈리의 집에서 보낼만한 짐과 버릴만한 쓰레기를 골라내야 했다. 화분은 또 왜 이렇게 많이 샀는지 온 방을 가득 채웠다. 지인들은 한숨 푹푹 쉬어가며 그 집을 정리했다. 법적인 문제에서 '켈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결정이 쉽지 않았다. 켈리의 생각이 궁금해질 때마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순간 냉담하게까지 느껴진 프로듀서의 말을 들으며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캄캄한 곳에서 켈리에게 말했다. "켈리야, 어디 있니. 와서 니가 해결해라." 하지만 켈리는 오지 않는다. 켈리의 숨뿐 아니라 켈리의 모든 가능성이 사라졌다. 켈리의 말, 켈리의 생각, 켈리의 시각, 켈리의 마음이 사라졌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영원한 추측의 영역으로 사라졌다.


어젯밤에는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들기 직전 꿈과 공상 사이의 어떤 의식 상태를 경험했다. 새벽인데 전화가 울리길래 받았더니 켈리가 평소와 같은 밝은 목소리로 "Hey girl, you wanna meet up for coffee?"라고 말한 것이다. 켈리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현실감 가득했던 짧은 공상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렸다. 순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을 상상해버렸다는 자각을 했다. 차라리 내 등에서 날개가 솟아나는 상상이 켈리의 전화보단 현실감이 있었다. 내 친구 켈리는 죽었다.



친구가 죽었다. 친구가 죽었다. 켈리가 죽었다.

여러 번 스스로에게 말해보았지만 잘 느껴지지가 않았다. 화장장에서도 소식을 들은 지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울지 않았다. 아직도 이것이 부정의 상태인지 슬픔의 부재인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나는 지금 친구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든 현실감이든 무엇인가 느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문에 대해서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