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법>

연인에게...

by 예나

"필립, 나 지금 너무 답답해. 넌 나한테 한주가 힘들었다고 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준 건 고마웠지만, 난 무슨 일인지 더 자세히 알고 싶었고 걱정도 됐어. 특히 000은 큰 일이라고 생각했어. 너한테 중요한 거였다고 생각했으니까. 만약 별일이 아니었다면, 별일이 아니라고 말하면 되고, 말하고 싶지 않다면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되잖아. 정말 짧은 답장이라도 괜찮았을 거야. 이해했을 거야. 그런데 나는 아무 연락도 받지 않았고, 내가 확인차 전화를 했을 때도, 그 이후에 좀 나아졌냐고 물었는데도 그에 대한 답장은 없었어. 그리고 지금 봐, 네가 힘든 일주일을 보냈다는 문자가 오고 나서 또 한주가 끝나가는데도 나는 아직도 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확히 모르고 있어. 힘들어서 말하기 싫다고 얘기했다면, 나는 이해하고 이번 한 주는 더 좋길 바란다고 얘기해 주고, 너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뒀을 거야. 내가 그럴 사람이라는 거 알잖아.


바쁘면 내 전화 안 받아도 돼. 아니면 영상통화가 원래 네가 잘 안 하는 것일 수도 있지. 그런 거여도 이해해. 하지만 네가 어떤 입장인지는 나에게 말해줘야 돼. 갑자기 전화하는 게 싫으면, 얘기해. 내가 존중할 테니. 어려운 주제도 친절하고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 너도 잘 이해하는 거 알아. 내가 맞다면, 그게 네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잖아. 만약 그렇게 했다면 네가 내 통화를 거절하고,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고, 지금은 너의 개인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얘기했어도 나는 네가 나를 신경 써주고 있다고 느꼈을 거야. 그런데 나는 지금 그냥 막막하게 갇혀있어. 무슨 일일까? 어떤 상황일까? 많이 힘든가? 왜 답장을 안 할까? 묻지 말걸 그랬나? 내가 뭘 잘못했나?


나는 이런 얘기 문자로 하는 거 너무 싫어해. 그런데 솔직히, 지금은 너한테 전화해 달라고 묻지도 못하겠어. 달걀 위를 걷는 듯이 조심스러운 마음이야. 그리고 이런 게 좀 지치네.


하지만 필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주가 저번주보다 나았기를 바라고 있어. 아니었다면, 미안해. 그리고 힘든 한 주였다면 주변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길 바랄게. 그리고 편안한 주말 보냈으면 해. 진심이야."


내가 좋아하는, 혹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어떤 말 하는 것을 "달걀 위를 걷는 듯이 조심스러운 마음"이라 할 수 없길 바라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너무 조급해지고 힘들 것 같았다.

빨리 풀어주고 싶을 것 같았다.

나에게 뭔가를 말 못 하고 숨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숨죽이고 조심스러워하는 것만큼 관계를 망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저 표현을 여러 번 고심했다.

하지만 내 진심이었기 때문에 보냈다.


그는 바로 답장을 했다.

그리고 이번 주가 딱히 나아지지 않았고, 저번주에 있었던 '큰 일'은 별일 아니라고 했다.

징징대거나 부정적으로 들리고 싶지 않아서 말을 잘 안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짧은 사과를 했다.




전체적으로 소통이라는 면에서 이 답장에 대한 성적을 매긴다면(?) D-정도밖에 줄 수 없는 답장이었다.

첫째, 내 긴 문자는 무슨 일이었는지 이제 와서 설명을 하라는 문자가 아니었다.

둘째, 사과가 전혀 진정성이 없어 보였다.

자신의 행동이 아닌 나의 감정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네가 그렇게 느꼈다니 미안해. 내 의도는 그게 아니라는 거 알지?"라고 했다.

나는 이 실망스러운 답변에 할 말을 잃고 또 4일을 침묵했다.

"네가 그렇게 느끼게 해서 미안해."라고만 했어도 4일을 침묵하진 않았을텐데..

저 답장을 보니 정말 말문이 막혀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여자가 남자보다 소통에 재능이 있고,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와 대화하려고 할 때 답답함을 느낀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듣고는 했지만,

엄청난 소통능력을 가진 아빠, 남동생과 평생을 살아온 나는 이런 그의 부족함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충격적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고 다시 한번 말해주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를 반복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었다.

차분히 고민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의 입장에서 열 번 스무 번 생각해 보았다.

지금 많이 바쁜데, 그냥 바쁜 게 아니라 자신에게 정말 중요하고, 꼭 성공해 내야 하는 프로젝트의 CEO역할을 이제 막 맡은,

내가 보기에 그는 능력이 충분함에도, 그 일에 자신이 적합한지 확신이 없어서 불안하다며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나를 아직도 많이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며, 나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그의 선의를 믿으려고 노력했다.

속상한 마음을 누르고 그런 노력을 억지로 하다 보니 꿈을 꾸게 되었는데, 필립의 방에서 일을 하고 밤늦게 돌아온 필립을 맞이하는 꿈이었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고개를 들 힘도 남아있지 않은 그의 얼굴을 나는 보지도 못했다.

이불속으로 바로 들어가 잔뜩 웅크리고 '이불공'이 되어버린 그를 안아주고 깼다.

법륜스님께서 누구를 사랑한다는 건 그의 마음과 입장을 이해하는 게 쉬워지는 일이라고 하더니, 그게 정말 맞는 것 같다.

사실은 그에게 숨 쉴 정도의 힘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손가락 들 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러면 나에게 문자, 전화 정도는 따뜻하게 한번 더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욕심이 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두 가지를 기억했다.

첫째, 우리가 보낸 시간은 한 달뿐이었다는 것.

둘째, 연락의 빈도가 사랑의 크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

연락의 빈도가 사랑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었다면, 6개월간 집 밖을 나갈 때마다 칼을 들고 다녔어야 했을 만큼 나를 무섭게 했던 오래전 나의 스토커가 가장 나를 사랑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할 말을 정리했다.

그리고 필립이 바쁜 와중에 문자를 읽는 게 힘들 것 같아서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안녕, 긴 문자 읽기 힘들 것 같아서 음성 메시지로 보낼게. 먼저, 바로 답장 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줘서 고마워. 그렇게 힘든 한 주를 보낸 줄 몰랐어. 미안해. 그런데 사실, 나는 업데이트해 달라고 연락한 게 아니었어. 단지 나는 네가 날 신경 써주길 바란 거야. 그 문자 보내는 거 솔직히 무서웠어. 네가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으니까. 그리고 너의 답장은 친절했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건지 네가 이해를 못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설명이 부족했을 수도 있으니 다시 이야기해 줄게. 나에게 힘들었던 건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너와 단절된 듯한 기분이었어. 너의 답장을 받긴 했지만 내 말은 그냥 들리지 않은 채 허공에 남겨진 느낌이었으니까. 나는 우리 사이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부정적으로 들리고 싶지 않아서 자세히 말 안 하는 줄 몰랐어. 말해줘서 고마워. 널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어. 나에겐 너의 푸념이 징징대는 걸로 들리지 않아. 난 그냥 너의 목소리랑 이야기가 듣고 싶을 뿐인 거니까. 하지만 이해해. 장녀라서 그런지 나도 그런 면이 있거든. 왜 너한테는 내 삶에 있는 사소한 일까지 다 공유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어. 평소 나답지 않은 모습인데. 앞으로 안 그러도록 할게.


페인팅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어. 왜냐하면 최근에, 초상화 방법이 너에게 통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너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너의 마음도 나와 같다는 걸 내가 느꼈기 때문이라는 걸 배웠거든. 너 옆에 있으면서 많은 걸 배웠는데, 그중 하나야. 나를 아끼고 신경 써주는 사람에게 내 시간과 노력을 쏟는 건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 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에겐 그런 시간과 노력이 과했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초상화를 끝내면 마음이 차갑게 식는 거였어.


필립, 세상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걸 알지만, 난 자신감이 없거나 불안하다는 감정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야. 그런데 너와 우리를 생각하다 보면 가끔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날 조그맣게 만들 때가 있어. 예를 들면, 너는 한국인 여성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전에 나는 한국 사람처럼 안 보이고 혼혈 같아 보인다고 얘기한 적 있잖아. 그런 것들. 웃기지? 나도 알아. 그런데 그런 마음이 들어. 오래전 많은 사람들이 졸업했을 감정이지만 난 이런 감정이 처음이야. 그래서 지금에서야 배우고 있는 거야. 조금만 기다려줘.


이런 모든 감정들 속에 있다보니 네가 신경 써주길 바란 거야. 아직도 너의 마음이 전과 같은지 알고 싶었어. 말을 안 하면 난 알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똑같은 마음으로 나도 너에게 되도록 자주 말해주려고 하는 거야. 내가 보기에 네가 얼마나 잘생겼고, 아름다운 사람인지, 나에게 네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그걸 네가 내 입으로 직접 듣는 게 난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건 무조건 우리 아빠한테서 받은 거야. 우리 아빠가 로맨틱한 말을 잘하는 편이거든. 이게 너한테도 중요한지는 너 마음이야. 너의 선택대로 하면 돼. 하지만, 분명 나에게는 이게 중요하다는 걸 너에게 알려주는 거야.


사실 답장 안 하고 며칠 더 기다리려고 했어. 왜냐하면 답장을 받긴 했지만 내가 원하던 답은 아니었고, 사과를 받긴 했지만 내 감정에 대한 유감표현 정도였지 네가 한 행동에 대한 사과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어젯밤에 꿈을 꿨어. 네가 일을 하고 와서 너무 피곤해서 나에게 키스도 못해주더라. 네가 내 꿈에 나왔는데, 난 너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거야. 믿어져? 나는 곧바로 침대에 누워서 "이불공"이 되어버린 널 그저 안아줄 수 밖에 없었어. 그래도 너 잠들고 나서 방에 있는 디저트를 훔쳐먹긴 했으니 그건 좋았어. 그리고 잠에서 깨고 나서, 내가 조금 더 널 이해해 줄 걸 그랬다 하는 후회가 좀 들었어. 미안해. 네가 지금 많이 바쁘고 힘들다는 거 알아.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게 많아질 때마다 그걸 기억하려고 하는데, 한 번씩 그게 잘 안될 때가 있어. 나도 노력 중이고, 더 잘해볼게.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 우리가 최근에 나눈 대화를 네가 다시 읽을 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겠구나, 하는 걸 너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길 바랄게.


너도 알 거야.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런 거 두려워하거나 빼는 사람 아니야. 그래서 만난 적도 없는 널 보러 일본까지 갔던 거고, 이번 프라하 여행에서 너와 거의 매일 함께 한 거였어. 그리고 너는 이렇게 바쁜 게 한동안 이어질 것 같으니, 나보고 너의 스케줄은 신경 쓰지 말고 자주 연락하고 널 괴롭혀달라고 그랬었지. 하지만, 모르겠어. 솔직히 그럴 때마다 내가 선을 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돼. 그래서, 그냥 그러지 않기로 결정했어. 앞으로는 너의 에너지에 나도 속도를 맞출 거야. 그보다 더도 덜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몸 아픈 거 좀 나아졌길 바랄게. 그리고 이번 주는 더 나은 한 주였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조금이라도 부담이 줄어들었으면 좋겠어. 좋은 주말 보내고, 너무 긴 음성메시지 미안해. 하고 싶은 말은 이게 다인 것 같아. 안녕."


나는 내가 느낀 감정과 내가 원하는 것을 충분하게 이야기하고, 그에게 그걸 강요하지 않은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고 싶었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었다.

그의 "사과"가 기분 나빴지만, "너의 사과는 당장의 문제를 피하고자 하는 것뿐이었어."라고 질책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에 회피나 변명없이 상대를 위해 진심으로 하는 사과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로 바쁜 와중에도 나와 연락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해 줘서 고맙다고 하고, 며칠 동안 서로 연락이 안 될 것 같을 때는 간단한 암호를 만들어서 서로에게 그것만 보내보자라고 애교 섞인 농담을 하고 메시지를 끝냈다.

퇴근을 하자마자 그는 메시지를 읽었고, 한국 시간으로 다음날 아침, 프라하 시간으로는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그는 답장을 보냈다.


"내가 며칠간 답장이 없을 때는 너와 거리를 두고 싶거나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서가 아니야. 그냥 제대로 생각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어서, 그뿐이었어. 하지만 내 사과가 텅 빈 사과였다는 것 인정해. 너무 피곤해서 그랬던 것 같아.. 네가 꿨다는 꿈, 웃기다. 너무 사실이거든. 최근에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누가 나의 온몸을 때린 것처럼 아파. 너 말대로, 바로 침대에 누워서 "이불공"이 되고 싶어져. 하지만 집에 와서도 보통 새벽까지 할 일이 있어.


정말 긴 음성 메시지네. :) 그렇지만 긴 문자 메시지도 난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보내도 돼. 요즘 주변에 생일이나 내가 챙겨야 하는 가족 일이 많아서 그것도 요즘에 나를 더 힘들게 했었어. 그래서 아픈 것도 나아지지는 않았어. 하지만 저녁이 되면 조금은 나아지곤 해. 항상 그렇듯이.


아직도 널 신경 써. 같은 마음이야. 그리고 지금 내가 너의 옆에 있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해. 그래서 사과했던 거야. 내가 부족한 것 같아서.. 꿈에서 내 디저트를 훔쳤다고 용서될 일은 아닌 것 같아.


너 선 넘는 거 아니야. 그러니 내 에너지에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어. 속도는 맞춰도 되지만, 에너지를 맞추는 건 너에게 건강한 일이 아닌 것 같아. 잠도 잘 자고, 잘 쉬고, 너 몸 건강 잘 케어했으면 좋겠어. 너도 알다시피 몇 달 전에 나는 안 좋은 방향으로 스트레스가 많았어. 그리고 지금은, 스트레스가 많지만 너무 흥분돼. 내 신체와 시간에는 부담이 많이 되지만 정신적으로는 이 일을 즐기고 있어. 하지만 길게 보면, 더 바빠질 뿐일 것 같아. 새로운 프로젝트가 론칭을 하면, 그때는 정말 제대로 된 큰 사업이 시작되는 거니까. 그래도 첫 번째 제품 만들고 나면, 나도 좀 쉬고, 휴가 내서 여행도 갈 생각이야.


나 이제 진짜 이불공이다. 좋은 아침 보내, 00야. :-*"


이 메시지를 받고 나는 생각했다.

이 정도면 B+은 되겠네. ㅎㅎ;


완벽함을 바란 적은 없으니 나는 그 정도로 만족했고, 그가 신경 쓰고 나를 아낀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쓸 수 없는 몇 가지 디테일한 부분이 문자에 있었는데, 지금 그는 4월 봄에 나와 보냈던 시간을 기억하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문자에 대해 고맙다는 답장을 했다.

그리고 몇 달 전 안 좋은 방향으로 스트레스가 많을 때도 난 널 좋아했고, 지금 신나는 일로 스트레스가 많은 너도 난 변함없이 좋아한다고 말해줬다.

그래도 걱정되니 몸 잘 챙기라고 했고, 그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줬다.

보고 싶지만 넌 부족하지 않다고 말해줬다.

여기 없어도 거의 매일 밤 너는 어차피 나와 함께하고 있으니.

그리고 한 번만 더 이기적으로 얘기하자면, 휴가를 나랑 조금 가까운 곳으로 오는 걸 생각해 달라고 했다.




정말 중요한 건 이 대화 이후의 그의 변화이다.

나는 음성메시지에서 나에게 중요한 부분을 확실히, 그러나 부드럽게 이야기하고자 노력했다.

네가 신경 쓰고 있다는 말을 직접 듣는 게 나에겐 중요하지만, 그게 너에게도 중요한지는 너의 선택이라고.

그리고 "앞으로는 너의 에너지에 나도 속도를 맞출 거야."는 더 이상 화답 없는 무작정 추구는 없을 테니, 그걸 원한다면 너도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 전달되길 바라며 한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저런 말들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차분히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나도 마음이 정리되고, 건강한 무심함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본래 로맨틱한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말을 약간은 낯간지러워하고, 어려워한다.

차라리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말은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할 때는 그게 전혀 문제가 없지만, 함께하지 못하는 지금은 그게 내 불안을 키우게 된다는 내 마음을 나는 솔직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고백을 한 것이다.

힘든 고백이었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어른스러운 관계가 가능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본래 그의 모습이 전혀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이해하니 방법을 알 수 있었다.


내 말의 요지는 "너 그렇게 하는 거 잘못됐어. 날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해"라는 감정 던짐이 아니라, "만약 나를 너의 인생에 두고 싶다면 변화하라"는 제안이었으면 했다.

그럴 필요는 없지만, 변화하지 않는다면 나는 멀어질 것이라는 경계와 기대를 확실히 설정하고자 한 것이었다.

나도 그를 위해서 나의 길과 성격과 습관을 어느 정도 변화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그를 위해 맞출 의향이 충분히 있는 데다가, 어떤 관계든 그런 노력이 꾸준히 있어야 건강하게 오래 이어진다고 믿으니까.

하지만, 그런 노력을 더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누구 하나가 틀렸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냥 서로 맞지 않은 사람이었을 뿐, 관계 포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이걸 정말 그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변화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단지 우리 관계 지속을 위해서는 새로운 변화와 액션을 그 스스로 취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나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협박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만약 서로를 잃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변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내가 메시지에서 "너는 틀렸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니까.

우린 그냥 관계에서 원하는 게 다른 사람이라고 결론 맺고 끝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생길 경우, 그와 나는 인연이 아니었을 뿐이지, 우리 둘 모두 본래 틀린 것은 아니라는 것.

그걸 나도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 문자를 보내는 것이 그렇게 무서웠던 것이다.

관계가 끝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보다, 좋은 관계를 위해 나에게 개인적으로 꼭 필요한 것들을 우선시해야 가능한 행동이었고, 이걸 그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정말 이걸로 우리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물론, 그가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어느 정도 확신하긴 했다.

내가 그에게 그 정도의 의미가 있다는 것과, 그가 나의 말을 이해할 정도의 공감지능은 가진 성숙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니, 이런 모든 단계가 하나하나 두렵고, 어렵고, 망설여진다.

그래도 해냈다.


한 번의 진심 어린 문자로 끝나지 않고, 음성 메시지 속 나의 제안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는 달라질 수 있을까?


지금은 손 잡을 수도, 눈을 마주칠 수도 없는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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