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함보다 불안함이 좋은 사람들
3. 과학의 핵심
내가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은 과학 실험 키트였다. 내 몸만큼이나 컸던 그 키트 상자를 나는 매일 밤 내 옆에 두고 잤다. 학교 방학 숙제 중 가장 즐거웠던 것은 과학 실험 노트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병아리가 왜 노란지, 내가 보는 빨간색이 다른 사람들의 빨간색과 같은지, 화성에 미생물을 살고 있는데 인간이 화성을 식민화한다면 그 미생물을 말살해야 하는 건지, 지하철에 있는 수많은 나와 다른 사람들은 정말 존재하는 건지, 나와 다른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등등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을 살펴보는 것을 좋아했다. 노란 병아리나 지하철의 사람들 같은 어떤 질문들은 내 앞의 현실이라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신기해서 잠을 설쳤다.
이렇게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과학이 새로운 종교가 되어가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과학을 종교로 보는지 이해할 수 있지만 나에게 과학은 절대 종교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그래서 이 글에서 나는 과학의 대표적이고 필수적인 조건 또는 특성 세 가지를 적으며 왜 과학이 종교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과학의 조건
부정적인 마음으로 과학 가설 생성 사멸의 역사를 바라보면 과학에는 영원불멸한 진리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극단적으로 받아들여 과학의 과정은 믿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 내린 채 실망한다면 아마도 신앙을 찾기가 쉬울 것이다. 종교는 답을 알고 있다고 확언하며 불안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과학에는 그런 안정감으로 위로를 주는 성질 따위는 없다.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 과학은 그 특유의 자정능력으로 실수와 실패의 모습을 당당히 보여주며 발전해왔다. 하지만 신화와 함께 진화해온 인류에게 이것이 주는 불안함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확신을 좋아한다. 그 확신 뒤에 있거나 없을 수 있는 증거와 증명 과정은 솔직히 인간에게 시간을 들여 조사하기 너무 귀찮은 것들이다. 하지만 과학은 이것을 귀찮아하지 않고 즐긴다.
1. 증거기반
과학은 경험적 학문이다. 그래서 과학은 종교가 아니다. 과학은 플라세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느낌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것조차도 의심하며 여러 번 반복 확인하고 검증해야 한다. 관측과 측정 가능하고, 반복적으로 확인 가능하고, 정량적인 증거에 기반한다. 반대로 말하면 과학은 관찰되지 않는 것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는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과학에서 관찰되지 않는 것은 증명될 수 없거나 아직 증명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 관찰이라는 것이 인간의 오감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과학은 인간 특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기계들이 과학 발전에 다시 기여하기도 한다. 어쨌든 신체로든 기계로든 감각되지 않고 관찰되지 않는 문제는 과학으로 결론 내릴 수가 없다. 그건 과학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하다.
반면 이전 글에서 말한 것처럼 종교의 핵심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제안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명백하게 감각되고 일상에 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매일 떠오르는 태양에 대한 원리를 정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것보다는 잘 보이지 않고 사람들에게 쉽게 느껴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이는 우리의 오감으로 감각되거나 관찰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 통찰에 이른 소수의 위인들이 보통 사람들을 위해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다. 감각되지 않고 관찰되지 않는 문제는 과학으로 결론 내릴 수가 없고, 과학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금껏 과학은 신의 존재나 부재를 증명할 수 없었다. 종교가 단언한 신화적 이야기들에 모순되는 많은 과학적 발견들은 이런 탐구과정에서 자연히 얻게 된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종교를 부정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노력한 결과가 아니었다.
2. 보편성
과학에서 보편성은 매우 중요하다. 이 보편성 때문에 새로운 이론 탄생과 검증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어떨 때는 해당되고 어떨 때는 해당되지 않는 과학적 법칙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 법칙은 자연의 모든 면에 두루 미치는 성질이어야 하고 게다가 이전의 모든 과학 법칙에도 위배되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가설이 이전 과학 법칙에 위배된다면 위에 적은 과학의 첫 번째 특성인 증거를 바탕으로 하여 둘 중 하나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 현존하는 과학 법칙과 이론이 아직 완벽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있을 수 있겠지만 서로 모순되고 대치되는 두 가지 과학 법칙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는 없다. 과학자는 그것이 설사 자신의 소중한 아이디어라도 해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흔히 과학이 오만해 보이는 것은 의견에 대한 고집 때문이 아니라 이미 밝혀진 법칙/이론에 대한 설득을 할 때 나타난다. 과학의 입장에서는 수없이 많은 검증과 관찰을 반복해서 명백해진 하나의 법칙이나 이론을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이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목소리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3. 잠정성
과학은 잠정적이며 변동성이 있고 끊임없이 진화한다. 칼 세이건의 말처럼 과학의 힘은 그 자정능력에 있다. 반면 종교는 자정을 매우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학 역사를 보면 과학 스스로 틀렸다는 것을 계속 확인하며 스스로 교정하고 수정하며 우리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자연에 대한 더 나은 설명을 내놓는다. 과학은 종교뿐 아니라 선대 수많은 과학자들의 생각도 틀렸음을 끊임없이 증명해왔다. 과학은 이전 과학이 틀렸다는 것도 자주 증명하게 되고 한 과학자가 자신의 추측과 가설이 틀렸다는 현실을 마주하는 일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과학의 본성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집부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정리해서 논문으로 적어내야 한다. 과학에서 가설의 교대는 언제나 이해의 진척과 진리로의 진보를 의미한다. 가설의 죽음이 과학을 후퇴시키는 일은 없으며 과학에서 후퇴란 오히려 과학 가설 생성 사멸의 완전한 멈춤에서 비롯될 것이다. 우리는 가설의 탄생과 죽음을 통해 이 세상을 설명하는 더 설득력 있는 과학의 진화 과정을 목격하는 중이다.
과학은 진리에 안주하지 않는다. 완전하고 절대적 진리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과학이 불안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아직 설명되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 무조건 과학은 판단 보류의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잠정적이고 변동적인 과학을 믿을 수 있다. 아직 모르는 부분에 대한 확언을 회피함으로써 오히려 지금 과학이 하는 말들은 신뢰성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어떤 것에 대해 정확한 증거와 보편성 없이 판단하고 확신하며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한다면 그건 “가짜 과학”이라고 자신감 있게 말해도 된다.
2022년의 첫날이 끝나가고 있다. 인간이 만든 날짜 개념에 따른 새해 첫날 떠오르는 태양은 왠지 모두가 집중한다. 매일 똑같이 떠오르는 태양인데도 이 날의 태양은 한번 더 바라보게 되고, 그때 인간은 어제와 같았던 일출을 보며 뭔가 특별한 감동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매일 태양이 떠오르고, 물이 절벽 아래를 흐르고, 폭포가 무지개를 만들고, 검은 밤에 별이 빛을 내고,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상에서 아름다움과 경외감을 느낀다. 과학에게 미궁은 답답함과 불편함이 제거된 순수한 아이 같은 궁금증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천진난만하다. 과학은 무지를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즐긴다. 무지의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복잡하고 이해가 불가능해 보였던 현상들이 단순하게 설명되는 자연의 시적 능력에 감탄하고자 한다. 과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자연의 상상력과 간결함은 실제로 정말 놀랍기 때문이다. 자연의 법칙은 소박하면서도 장엄하다. 그래서 눈앞에 안개가 아직도 끝없이 짙지만 그 깊은 무지 속 탐험을 모든 과학자들은 기꺼이 만끽한다.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추측과 관찰과 증명을 반복해서 끈질기게 답을 찾고자 한다. 이것은 정말 지루한 작업이다. 과학은 그 지루한 과정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교정되고 발전한다. 즉 과학은 무지의 상태를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종교는 무지를 견디지 못해 자연현상에 대한 성급한 설명을 답인 것처럼 결정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그것이 수천 년 전 인류의 오만한 확신 때문이 아니라 윤리 도덕적 설득을 위해 잘 디자인된 신화적 이야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종교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현대의 종교 문제는 종교가 제안한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보다 종이에 묻은 잉크에 대해 쓸데없이 맹목적인 믿음과 집착을 가진 데서 시작됐다.
과학은 우리에게 불확실성과 무지의 가치를 가르쳐준다. 자연현상에 대한 종교적 확언의 안락함보다 이 불확실성과 무지의 기쁨이 더 큰 사람이라면 당신은 무조건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 종교적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신을 믿는 사람도 무지의 바다를 탐험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과학자가 될 수 있다. 과학은 당신의 이름도 성도 학벌도 나이도 성별도 신경 쓰지 않고 밤하늘 별처럼 어딘가 콕콕 박혀있는 진리들로 가득한 이 깊은 바다에 온몸을 던져 뛰어든 당신을 진심으로 품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