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어. 라는 말이 무슨 의미를 가질까? 나의 말과 행동을 오해한 타인에게 그런 말로 적극 어필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물론 가볍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려면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불편하게 했던 나의 행동과 말에 대한 사과"의 말을 해야 한다.
의도가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감정은 언제나 옳다. 내 안에 상대에 대한 질투나 분노 같은 것들이 있었을 수도 있고, 정말 선의로 가득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감정에 대한 표현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의도와 별개로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진정으로 악의에 차서 행동하는 상황은 세상살이 중 드물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인류애를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고(나는 성선설을 믿는 쪽이긴 하지만) 그게 보편적으로 사실이라고 본다. 대부분 표현 방식이 서투른 탓에 우리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이다. 선의였다는 변명은 멈추고 일단 사과를 해야 한다.
물론, "악의"...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화가 나든, 질투가 나든, 공감능력이 뛰어나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그런 감정을 강하게 가지고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법도 의도만 가지고 처벌하지 않는다. 의도가 처벌이나 죄목을 가중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행동을 처벌하지 생각을 처벌하지는 않으니까.
똑같은 말을 뒤집어서 나의 행동에 상처를 받은 타인이라고 해도 나의 의도를 마음대로 예상하고 나에게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사실 좋아하지 않는다. "너의 그런 행동은 '뭐뭐' 하자는 것으로 밖에 안 들려." "그런 말은 하는 건 너의 마음이 '뭐뭐' 하다는 거 아니야?" 이런 질문은 단정 짓는다는 면에서 "왜?"라고 단순히 이유를 묻는 것과 다르다. 내 의도를 미리 단정한 후 확인하고자 하는 이런 질문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싸움만 될 거, "어, 너 말이 맞아. '뭐뭐' 해서 그랬다"고 말할 리도 없는데.
'뭐뭐'가 맞고 아니고를 떠나서 나의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할 마음이 나는 언제나 있다. 하지만 의도까지 변명하게 하는 것은 관심 없다. 실제로 내 의도가 악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변명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대방의 속마음을 단정 짓고 그것 때문에 더 속상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를 미워해서 대단한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에 어떤 행동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 행동에 대해서 상처받고, 그 부분에 대한 사과를 바라는 일로 충분하다. 속마음을 (특히 부정적으로) 단정 짓는 것은 관계를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할 뿐만 아니라 내 정신에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다.
상대 의도에 대한 나의 상상력 가득한 마음을 버리기로 결심한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도 항상 연습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하다 보면 정말 쉬워진다. 간단한 진리를 깨닫고 나서 틈틈이 기억하며 살아가면 내 일상에 그것이 단단히 뿌리내리기 전에 이미 큰 위로를 준다.
마셜 B.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