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서나 육아서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단어 중 하나가 ‘공감’이다. 엄마들은 아이에게 공감을 주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정작 공감을 어떻게 주는 게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엄마들은 스스로 “나는 아이에게 공감을 잘해주고 있는 것 같은데, 아이는 그걸 잘 못 느끼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 아이에게 대답해주며 받아주고 있는 것 같지만 아이가 무반응을 보이거나 오히려 화를 내는 아이를 보면서 답답해한다. 아이가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마가 교사였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엄마에게 말대꾸와 말싸움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이런 습관을 학교까지 들고 와서 교사인 나에게도 말대꾸를 하곤 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에도 이 아이는 입만 열면 말싸움이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어렸을 때부터 지도하고 가르치려고 했다. 잘못된 생각이나 말을 하거나 행동을 보이면 엄마는 아이에게 고칠 점을 주목하게 하고 이를 고치도록 하였다. 어렸을 때에는 이런 방법이 아이에게 통했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는 아이 었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고 사춘기가 오면서 아이는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 반발이 지속되면서 엄마가 말만 걸어도 말대꾸를 하고 싸움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
엄마는 아이의 ‘안전 기지’로 항상 작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안전 기지’란 용어는 영국의 심리학자 존 볼비의 애착 이론에서 나온 말이다. 영국에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많은 전쟁고아가 생겨났다. 이 고아들은 나중에 크면서 여러 문제를 일으켰는데, 존 볼비는 어렸을 때 이 ‘안전 기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엄마와 같은 존재는 아이가 자유롭게 행동하고 경험하다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안전한 기지 같은 곳이 되어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다가 힘든 일이 생기고 문제가 생겼을 때 엄마를 쳐다본다. 그때 엄마는 아이가 안심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정의 공간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 ‘안전 기지’를 제공해주는 엄마와 애착을 형성한다. 즉, 이러한 애착을 갖고 엄마가 ‘안전 기지’가 되려면 아이에 대한 공감이 필수이다. 공감이란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상태와 기분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것이다. 엄마에게 매일 지적과 꾸지람을 듣는 아이는 사람을 믿지 않게 된다. 타인은 나를 아무도 이해하지 않고 꾸짖기만 한다고 생각해버린다. 그렇게 자라면서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에 힘들어하고 문제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평소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다. 울고 싶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눈물이 흐르는 이유는 그 장면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감이란 상대방의 상황과 기분을 이해하고 같이 느끼는 능력이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아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해서 같이 느껴주는 것이 아이에 대한 공감인 것이다. 엄마들은 보통 아이들에게 잘 반응했다고 생각하지만 공감 없는 반응만 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보면 아이에게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엄마들도 있다. 아이가 떼를 쓰거나 사달라는 것을 사달라는 말,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게 아이에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엄마들이 있는 것이다. 아이가 원하는 해달라는 것을 모두 받아들여줄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아이의 감정만큼은 받아들여주어야 한다.
대형마트의 장난감 코너 같은 곳에 가 보면 울면서 원하는 것을 사달라며 떼를 쓰는 아이들이 많다. 그럴 때 엄마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아이가 울던 말던지 신경 쓰지 않고 장을 보는 엄마도 있고, 아이를 때리면서 울지 말라고 혼내는 엄마도 있다. 많은 엄마들은 아이가 일시적인 떼쓰기라는 생각과 어차피 장난감을 사 줘도 며칠 가지고 놀다가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을 알기에 장난감을 사 주지 않으려고 한다. 떼를 쓰는 아이에게 원하는 것을 사줘 버릇하면 아이는 떼를 쓰면 원하는 것이 생긴다는 학습이 되어버린다. 이럴 때에는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주면서 아이에게 ‘만족 지연 능력’을 키우도록 가르쳐야 한다. ‘만족 지연 능력’이란 미래의 큰 가치를 위해서 지금의 욕구나 만족을 참아내는 능력을 말한다. 이 용어는 호아킴데 포사의 저서 《마시멜로 이야기》에서도 잘 나와 있다. 책에는 미국의 월터 미셀 박사의 만족 지연 실험이 소개되어 있다. 아이들을 방으로 데려가서 책상 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시멜로 과자를 올려놓고 돌아올 때까지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으면 두 배로 주겠다며 말하고 아이를 혼자 방에 둔다. 그 결과 10명 중 3명의 아이는 유혹을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어버렸다. 나머지 7명은 잘 참고 기다렸는데, 이 아이들은 ‘만족 지연 능력’이 큰 아이들이었다. 그러면 사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능력을 키워주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까지도 이와 관련해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이를 ‘공감’ 해 주면서 아이가 보상보다는 즐거운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아이에게 공감을 표현하는 방법은 아이의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가 장난감 코너에서 무언가를 사고 싶어서 움직이지 않고 있을 때에는 이렇게 한 번 말해줘 보자.
“이 거 갖고 싶은가 보구나? 엄마가 오늘 장 봐야 할 것에 돈을 딱 맞춰 와서 어쩌지? 대신 엄마가 마음껏 보도록 허락해줄게. 네가 보고 싶을 때까지 봐봐.”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아이의 감정을 이해해주고 이야기하면 아이는 한참을 서서 장난감을 쳐다보다가 “엄마, 이제 가자.”라고 말한다. 물론 이런 결핍이 너무 잦아서는 안 된다. 어쩌다 한 번씩 겪는 결핍에서 아이는 자제력과 만족 지연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 외의 상황에서도 아이의 감정을 헤아리고 반응해주는 것은 중요하다. 결국 아이에게 반응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은 아이 자신의 감정과 의도를 스스로에게 비춰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과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아이의 공감 능력을 키워준다. 공감 능력이 자란 아이들은 엄마를 공감해주고, 친구를 공감해주게 된다. 공감하는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기술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아이가 어떤 말과 행동을 보였을 때 진심으로 반응해주고 아이의 감정을 한 번 들여다봐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힘들어 보일 때에는
“힘들구나?”
하고 말해주고, 짜증 나 보일 때에는
“짜증 나지? 엄마도 그럴 때에는 진짜 짜증 나겠다.”
라고 한 번 말해줘 보자.
나는 학교에서 힘들어하는 표정의 아이가 있으면 가끔 마음속으로 대화하기도 한다.
‘힘들구나. 언제든지 힘들 때에는 선생님한테 와서 이야기해. 선생님이 다 들어줄게.’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말로 공감해주기 어려울 때에는 아이 눈을 자세히 쳐다보고 아이 눈동자에 비친 내 표정을 한 번 바라보는 것도 좋다. 아이는 도와달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아이 눈에 비친 내 표정이 화가 난 표정이라면 그 표정을 바꿔보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새 아이는 엄마에게 다가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아이에 대한 사랑은 공감에서 시작한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주어 아이가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안전 기지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의 말과 행동에 반응해주고 공감해줄 때 아이는 만족 지연 능력도 커지고 공감 능력도 성장한다. 아이의 공감 능력은 롤모델이 필요하다. 엄마가 먼저 아이에게 공감해주는 것이 가장 빠르게 아이의 공감 능력을 발달시켜 주는 방법이다. 거창하고 어려운 방법이 아니다. 아이를 달라지게 하는 힘은 작은 공감에서 나온다.